배우 김신록 씨가 10월 7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주최 ‘연대의 힘’ 국제 포럼에서 발표한 글을 본인 동의를 얻어 일부 수정해 소개합니다. 의견은 saltnpepa@womennews.co.kr로 부탁드립니다.

 

 

연극·뮤지컬 관객들이 지난 2월 25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연극뮤지컬관객 #With_You 집회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연극·뮤지컬 관객들이 지난 2월 25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연극뮤지컬관객 #With_You 집회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남자와 여자는 무대 또는 영화 촬영장에서 결코 동등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남자들은 항상 더 재능 있고, 재미있고, 더 진지하고 더 관계적이고, 더 천재적이라고 여겨집니다. 여자는 그냥 여자지만, 남자는 사람입니다. 여자들은 여자의 이슈를 가지고 여자의 이야기를 하지만, 남자들은 인류와 인간 존재의 질문들을 그립니다. 이것은 또한 여자들의 가치가 주로 남자들에 의해 결정되어 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얼마나 (남자에게) 매력적인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난 10월 7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주최 ‘연대의 힘’ 국제 포럼에 토론자로 참여했던 필자는, 발제자 수잔나 딜버의 발제문에서 본격적인 성폭력 사례 이전에 다음 내용이 언급되어 있어 기뻤습니다. 미투 운동이 단순히 ‘성폭력 방지 및 대처 운동’처럼 축소돼 인식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에 발췌한 딜버의 발제 내용은 한국 연극계에도 그대로, 심지어 훨씬 더 심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젠더 권력의 불평등이 미투 운동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미투 문제를 권력 문제로 봐야지 젠더 문제로 보려고 하면 싸움만 난다.” “이렇게 남성중심서사가 많은 것은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 연극계 내 ‘권력’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권력은 지원금을 만들고 배분하는 국공립 기관 고위직들에게, 이를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에게, 지원금을 받아 내 배우를 캐스팅하는 연출가들에게, 프로덕션에 참여하는 선생님 혹은 선배님들에게,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여기 나열된 포지션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수적으로 월등히 많습니다. 남성중심 서사에 대한 편중, 여성이 대상화되고 도구적으로만 존재하는 작품들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표현의 자유’, ‘시장의 요구’, ‘나아지고 있지 않느냐’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꽃미남들이 나오는 영화나 연극의 관객 대부분이 이삼십대 여자다. 여자들도 남성중심 서사를 좋아한다’라고도 합니다. 시장은 왜 이렇게 형성됐을까, 누가 사회의 취향을 결정하는가로 논쟁이 이어지면 ‘그렇게 포괄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며 대화가 끝납니다. 

최근 연극계는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한국연극협회, 서울연극협회, 예술인복지재단, 연극인복지재단 등 연극 관련 기관들에게 성폭력예방교육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기관이 이해하는 미투 운동은 ‘성폭력예방운동’이 전부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딜버의 발제문에서 다음 부분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미투) 기사는 작년 11월 8일에 온라인으로 발표되었고, 반응은 즉각적이고 충격과 불신으로 가득찼습니다. 문화민주주의 장관은 같은 날 조치를 취했고, 공공극장들의 경영진들을 소집했습니다. 우리의 노동조합인 공연예술 및 영화조합은 고용주들의 기관인 스웬덴 공연예술 협회와 함께 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의 구성을 즉시 발표했습니다. 그날 이후 TV와 일간지는 연극과 영화의 경영진들로 넘쳐났습니다.” 

 

작금의 문체부 블랙리스트 관련 ‘셀프 면책’ 사태를 보고 있자니 문체부가 미투 운동의 적극적이고 참신한 조력자가 될 것이란 기대는 전혀 들지 않습니다. 최근 불거졌던 연극 관련 각종 ‘협회’들의 실책과 연극인들의 불신, 협회와 현장의 괴리 등을 생각하면 협회라는 곳 역시 마찬가지인 듯 보입니다. 스웨덴 미투 운동을 촉발한 첫 언론 보도 제목인 ‘우리는 성폭력에 충분히 시달렸다’는 식의 진정성 있는 제목을 뽑아 줄 언론사도 언론 매체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 외에 연극인들을 위한 광범위한 노조가 있는 것도 아니니....‘성폭력예방교육’을 넘어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예술생태계의 구조와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연대 이외에는 도리가 없는 것인가 하는 절박한 생각이 듭니다. 

딜버의 발제문 중 다음 부분은 자발적 연대가 실천한 사소하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실제적인 개선의 사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보다 사소한 문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여배우는 자신이 주연으로 참여하는 작품의 포스터에 자신의 이름이 누락된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녀는 우리 그룹에 이러한 사실을 논의하였고, 우리는 즉시 그녀를 도와 담당 프로듀서에게 이를 바로 잡을 것을 요구하였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나는 이러한 그룹의 존재가 우리의 용기를 북돋우며 우리의 권리를 당당히 요청할 기회를 누리도록 돕는다고 믿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최근 대전예술의 전당이 기획, 제작하고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도 공연된 ‘백치’ 포스터가 떠올랐습니다. 포스터에는 두 명의 남자 배우 사진과 두 명의 남자 배우 이름만 올라와 있습니다. 막상 극을 보니 여자 배우가 아주 중요한 캐릭터 중 한 명이어서 놀랐습니다. 몇 년 전인가는 동아연극상 연기상 수상자 중 여자 배우가 없어서 놀랐습니다. 워낙 여자 배우가 연기력을 펼칠만한 작품이 없으니 상을 받을만한 여자 배우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이 이런 편향된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 대신 ‘올해 여자 배우들 중 상을 줄 만큼 연기를 잘 해낸 사람이 없었다’는 선언에 다름없는 결정을 내리고 만 것은 무책임하고 권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대전예술의 전당이 기획, 제작한 연극 ‘백치’ 포스터. 극중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높은데도 포스터에는 두 남성 배우의 사진과 이름만 실렸다. ⓒ국립극단
대전예술의 전당이 기획, 제작한 연극 ‘백치’ 포스터. 극중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높은데도 포스터에는 두 남성 배우의 사진과 이름만 실렸다. ⓒ국립극단

이 예시들은 직접적인 성폭력 및 위계 폭력 문제보다 사소하고 덜 직접적이며, 덜 위험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연극계 내에서 젠더 위계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초적인 부분이며, 우리가 어디까지 꿈꿀 수 있는지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초적인 부분의 개선을 위한 각론으로 들어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지원금 제도에 여성 할당제를 도입할 것이냐, 남성 중심으로 쓰여 있는 희곡들을 수정해야 하느냐,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가 사회적 책무에 앞서는 것 아니냐, 어떤 부분을 어떤 식으로 장려할 것이냐 혹은 강제할 것이냐, 입법이 필요한 부분이 있느냐 등…. 다만 미투 운동을 계기로 혹은 미투 운동의 일환으로 이런 식의 확장된 논의가 일어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가 어디까지 꿈꿀 수 있는가에 달렸습니다.

국내 연극계 내 성폭력에 대한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았으니 실제적인 성폭력에 대한 대응 및 대처가 우선 시급하고 이는 지속적으로 다뤄지고 강조되어야 하는 사안임이 분명합니다. 처음 문제제기를 시작하신 분들, 이에 연대하고 있는 모든 분들과 실무를 담당하고 직접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는 분들께 깊은 존경과 고마움을 느낍니다. 저는 그분들의 노력에 용기 내어 내일의 꿈을 오늘 미리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