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사이언스북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사이언스북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환갑을 코앞에 둔 나, 건망증과 싸우려고 코스모스 책을 읽게 됐다. 뭔소리? 사실이다. 기억력 감퇴가 심해져, 이런 저런 책들을 보니 뇌를 자꾸 새로운 환경에 노출시키는게 기억력 향상에 필요하단다. 그래서 문과 출신의 편식을 버리려고 우선 교양과학도서 『코스모스』부터 찾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 책을 완독했다 해도 세세한 과학지식은 이해하지 못한게 상당수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게 된 건 저자 칼 세이건이 평생을 통해 과학 대중화에 앞장 선만큼 과학의 기본 정신은 무엇인지, 긴 시간 혁명을 거듭한 과학에서 인류가 얻은 지혜와 그로부터 미래의 과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놀랄만큼 친숙한 주제를 이야기한 덕분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스토리텔링처럼 읽힌다. 지구가 ‘조그만 세계’, 즉 신이 만든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부터 시작해서 보다 더 큰 우주로 확장하는 과정을 술술 이야기하듯 풀어 놓는다(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영화 ‘콘택트’의 원작을 썼던 소설가다).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우주 생명의 푸가,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등 장 제목만 봐도 그렇다. 몇몇 장들은 한 과학자의 드라마틱한 전기로부터 출발해서 자연스럽게 과학 지식으로 넘어가고, 공상 과학소설의 내용들이 이후 실제의 사실들과 얼마나 근접한지 등을 다루니 딱딱한 과학책과는 참 다르다.

칼 세이건은 추상적 무엇이 아닌 구체적 과거에서 인류의 미래를 제시한다. 탈레스가 모든 물질의 근본을 물이라고 한 이래 많은 학자들의 이론이 속출했고 이에 대해서는 학창시절 기계처럼 암기했던 내용이다. 그런데 만물이 ‘신들의 도움없이’ 자연 속에서 물리적 힘의 작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이들의 인식은 당시로서는 사고의 근본을 뒤흔드는 발상의 대 전환이었다고 강조한다. 여기까진 교양 철학 수준에서 들은 내용일 수 있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기원전 3세기에 그런 과학적 세계관이 움튼 것이 그리스 이오니아 지역이 학문에 투자하고 사상의 자유, 사람의 교류가 넘치는 개방적인 사회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이상향이 바로 그곳, 로마시대로 이어진 알렉산드리아의 마케도니아 도서관으로 상징된다

바로 그 마케도니아 도서관을 끝까지 지킨 여성과학자가 ‘히파티아’다. 그녀는 당시 철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로서 유명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위대한 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이교도 문화를 무자비하게 억압하던 시기, 과학과 학문의 상징적 인물로서 빛을 발했다. 도서관이 불타 없어진 마지막까지 과학자로서 맞서다 살이 갈기갈기 찢기는 처참한 죽임을 당했다. 게다가 여자가 남성의 소유물이던 시대, 남의 눈을 게의치 않고 미모에 몰린 숱한 구혼을 물리치고 학문에 정진했던 인물이다.

저자가 수많은 과학자 중에서도 그녀를 크게 주목한 건, 바로 이 시대 인류와 지구를 위해서 번성기의 열린 사회 마케도니아, 최후까지 잃지않은 히파티아의 과학자 정신과 비과학에 맞서는 용기, 그리고 차별과 싸우는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광활한 코스모스의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 지구에서 (기후 변화 등 불확실성이 점증하는 이 시대에) 이리 저리 분열해 차별하고, 광신적 종교주의, 맹신적 국가주의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이제 과학에 투자하고 통합의 지혜를 모아 지구의 멸망에 대비해야 한다는게 그의 결론이다.

올해 역대 3번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여성과학자 도나 스트릭 랜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물리학은 “남성에 의해 발명됐고 만들어졌다”는 망언을 한 남성 물리학자를 직무정지 시킨 지 하루만에 그녀가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됐다. 히파티아가 죽은지 160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여전히 여성 과학자들은 차별적 환경과 성역할 부담 속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여성들에게 히파티아를 호명해 그녀를 알리고 또 누군가 미래의 히파티아를 꿈꾸게 해준, 코스모스! 교양과학도서로서의 많은 미덕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열광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