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뉴시스·여성신문
결혼식 ⓒ뉴시스·여성신문

“남성이 집을 마련하는

관행은 여성이 시댁으로

‘들어가는’ 결혼의 상징적

변형으로 남아있다”

 

결혼을 ‘거래’로 보는 온갖 속물적 현상을 재기 넘치는 문장으로 날카롭게 묘파한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 그가 2018년 가을 한국에서 결혼 풍속도를 소설로 쓴다면 아마도 이게 제일 짜릿한 주제일 것 같다. 반반 결혼.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런 뜻이다.

결혼하는 여성과 남성이 반반 씩 부담해서 결혼식과 신혼살림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네** 초록상자에 반반결혼을 쳐보라.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을 뜻한다)와 결혼식, 피로연, 꽃값부터 신혼집 마련, 가구가전 등 신혼살림 구입 리스트를 깨알같이 정리해 총액-예약금-잔금으로 수식을 만든 반반결혼 엑셀표도 공유할 수 있다. 공동경비 지출용 통장을 준비하기도 한다. 신랑 부모가 신혼 집 마련해주고 신부 집에서는 가구와 가전, 이불, 그릇 같은 혼수와 시댁에 선물할 예단을 준비해주던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당당하고 멋진가! 게다가 신랑은 집, 신부는 혼수라는 ‘기울어진 예산’ 구조에서도 벗어나있다. 자기주장 뚜렷하고 계산이 명확한 요즘 젊은 세대의 합리적인 결혼 풍속도로 진짜 멋져 보인다.

그런데, 그 멋진 ‘반반 결혼’의 실상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 보면, 우리가 아직도 ‘조선여인잔혹사’를 끝내지 못했다는 데 깜짝 놀라게 된다. ‘반반’의 균형을 맞추는 데 작용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변수들 혹은 ‘균형 보완 장치’에 담긴 성차별과 가부장주의, 학벌주의, 물질주의에 숨이 멎을 지경이다.

지난 9월 반반결혼 원칙을 놓고 양가가 다투다 결혼이 깨진 김찬옥(가명‧32)씨 사례를 보자. 직장 생활 7년 만에 9000만원을 모은 김씨는 한 살 위 남자친구와 8000만원 씩 내서 1억6000만원을 만들고 직장 생활 경력이 길어 신용도가 좀 더 높은 자기 이름으로 1억 원을 대출받아 2억6000만원 짜리 전세를 얻을 예정이었다. 가구와 가전도 꼭 필요한 것만 남자 친구와 반반 비용을 내서 구입키로 했다. 문제는 예단에서 터졌다. 시댁에서 예단으로 집값의 10%인 2600만원을 요구한 것이다. “남의 눈도 있으니” 그만큼 보내주면 절반은 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김씨 생각은 달랐다. 집을 반반 내서 하는데 왜 예단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100보 양보한다 해도, 신랑이 부담하는 전세값은 8,000만원이니 그 10%라면 800만원이지, 왜 2,400만원인가. 1억원 대출은 우리가 갚을 돈인데….” 시댁 쪽에서는 김씨의 계산법이 너무 계산적이라고 화를 냈다. 가구나 가전, 이불, 그릇 같은 신혼살림은 ‘원래’ 신부가 해오는 것인데 그걸 왜 신랑과 ‘반반’ 부담하느냐는 데까지 논란이 번졌다. 어디 신랑이 기죽어서 살겠느냐는 말이 나오면서 결혼은 깨졌다. 3년 넘게 만난 남자 친구가 ‘신랑 기죽는다’는 말에 태도를 바꾼 게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반반이 반반이 아닌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결혼에서 남성과 여성이 한 인간으로서 정확히 반반의 비중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위 ‘골드 미스’로 불리는 경제력 있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여성들은 경제력에서 가점이 있는 대신 나이에서 감점을 받는다. 경제력 있고 나이든 남성은 두말할 것 없이 가점에 가점이다. 여성이 직업이 없거나 남성보다 월수입이 낮으면, 혹은 수입이 같거나 높아도 남성보다 사회적 위세가 낮은 직업이면 가차 없이 감점이 이뤄진다. 감점은 반반의 균형을 맞추는 보완 장치로 메워진다.

남성이 집을 마련하는 관행은 여성이 시댁으로 ‘들어가는’ 결혼의 상징적 변형으로 남아있다. 단칸방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하던 시절에는 방값과 혼수‧예단 비용이 그럭저럭 균형을 맞췄다. 이 균형이 깨진 것은 전반적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최소한 원룸, 적어도 방 두 칸 아파트에서 시작하려는 세태가 확산되면서 부터다. 서울에서 방 두 칸 짜리 전세 아파트를 억대 이하로는 구할 수가 없다. 게다가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면서 경제력도 커졌다. 자연스레 집값을 반반 내는 양상이 나타났고 혼수도 반반하자는 것으로 발전했다. 문제는 신부 쪽에서 준비하는 예단이다. 명품 가방이니 모피 코트니 고가품 선물에 더해, 실속 있게 현금으로 예단을 보내면 그 중 일부를 돌려보낸다(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밀당이다). 예단의 기준은 통상 집값의 10%라고 한다(이 기준 역시 근거를 모르겠다.) 여성 쪽이 학력이 낮거나 학벌이 떨어지는 경우, 수입이나 사회적 위세가 남성 쪽 보다 못한 경우 등 ‘감점’ 요소가 많으면 예단 비용이 20%로 올라간다는 것은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제인 오스틴이 2018년 한국에 산다면 눈이 번쩍 뜨일 소재 아닌가? 물론 단호하게 거절하는 시부모도 있다지만, 반반 결혼을 한 여성들이 겪는 부조리는 지금도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다.

“반반이라면서 여자는 시댁 쪽에 뭐 할 게 그리 많은지 모르겠어요. 안 하자니 찜찜하고 하자니 열 받는… 친척들 예단 이불이나 폐백 음식, 한복 등 조금씩 모여서 큰돈이 되더라고요.”

“반반씩 내서 집을 샀는데, 시댁에서 그래도 집은 남자이름으로 해야 한다고 남편 이름으로 등기하래요.” 최근 한국 인구 중 20대 여성의 90%가 결혼을 안했고 30대 여성의 40%가 혼자라고 한다. 반반 결혼의 이면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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