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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와 각종 대중매체에서는 성폭력이나 왜곡된 성문화를 일상적으로 보여주면서 아이들에게만 당당하고 건전한 성문화를 요구하기는 무리인 것 같다. 사정이 이러니 성교육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늘 고민이다.

얼마 전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을 활용해 1학년 성교육 시간에 우리 주변에서 성이 상품화된 실례를 조사하도록 했다. 모둠별로 우리 주변에서 성과 관련된 간판, 노래 가사, 신문·잡지 기사, TV광고, 우리 나라 속담, 포스터 및 광고에서 성상품화 사례를 찾아 사진을 찍고, 발견한 곳과 느낌을 적어오기를 과제로 내주었다.

학생들은 “그런 사진을 찍으면 우리를 불량청소년으로 오해할 것 같다”며 투덜거리면서도 호기심에 눈이 반짝거렸다. 처음에는 눈치만 보며 과제를 제출하지 않더니 한두 학생들이 과제를 내놓기 시작하니 서로 경쟁이나 하듯 사진을 찍거나 광고를 붙이고 그림을 그려 넣어서 다양한 자료를 만들어 냈다.

‘이상한 나’ ‘타락한 그들만의 세상’ ‘출장 마사지’ ‘시집은 다 갔다’ ‘몸으로 느껴요’ ‘너무 민망해요’ ‘순수한 아이들을 지키자’ 등등 과제의 제목부터 요란하다.

어른들의 눈에는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아 무심코 지나친 간판들을 학생들은 용케도 잘 찾아낸다. ‘쭈쭈&찌찌’라는 간판을 찾아서 사진을 찍고 성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적어낸 학생도 있었고, ‘벗고 입고’라는 옷가게 간판은 옷 벗는 장면이 연상되어서 민망하다고 하는 학생도 있었다.

어느 술집의 출입문 손잡이 모양을 여자의 몸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은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낯뜨거웠다. 시장 앞에 돗자리를 깔고 늘어놓은 속옷, 땅바닥에 버려지거나 차에 끼워져 있는 연락방 전화번호, 출장 마사지 전단지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어린 학생들은 몹시 당황하였다.

학생들은 또 마사지를 하는데 왜 옷 벗은 여자가 필요한 것인지, 우리가 흔히 보는 신문의 구인·구직란에는 다방, 호프, 유흥주점 등 모두 여자를 상대로 하는 광고라며 흥분하였으며, 옷 벗고 사진을 찍어서 어떻게 시집을 가느냐고 안타까워하였다.

많은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런 광고는 청소년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성인들만 보는 코너를 만들거나 어른들만 알 수 있게 암호로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상업적 목적으로 제작된 간판이나 광고, 출판물 등이 잘못된 성지식을 제공하거나 불필요하게 성충동을 자극하는 등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정말 자녀를 사랑한다면, 자녀가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고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이런 작은 것부터 바로잡아가야 하지 않을까. 집에서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학생들에게 이처럼 일상화된 성상품화가 미칠 부정적 영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이경희/ 광주북성중학교 양호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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