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을 바꾼 30대 사건] ‘칠순할머니 이혼소송 기각사건’

40년 결혼생활 내내

경제권 박탈 당하고

폭언 시달리다 이혼소송

판사는 “해로하라” 기각

분노한 여성들 연대해

탄원서 내고 모금운동도

2년여만에 마침내 승소

 

칠순 할머니의 이혼 소송 기각 사건을 여성노인의 인권 관점에서 정면으로 다뤄 큰 반향을 일으킨 여성신문 494호 표지(1998. 10. 2) ⓒ여성신문
칠순 할머니의 이혼 소송 기각 사건을 여성노인의 인권 관점에서 정면으로 다뤄 큰 반향을 일으킨 여성신문 494호 표지(1998. 10. 2) ⓒ여성신문

“해로하라” 1998년 9월11일 서울 가정법원 가사합의3부(담당판사 김선중 부장판사)는 이시형 (70) 할머니가 남편 오현호(90) 할아버지를 상대로 낸 재산분할·위자료 청구 이혼소송을 ‘해로하라’는 단순한 논리로 기각 판결했다. 이 일은 ‘칠순할머니 이혼소송 기각사건’으로 불리며‘황혼이혼’이 사회 쟁점화 되는 계기가 됐다. 여성신문은 이 할머니를 밀착 취재해 이혼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을 알렸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는 제목의 기사는 이혼 기각 판결의 부당성을 입증하고 황혼이혼 문제를 여성노인 인권문제로 확대하시켰다.(1998년10월2일 제494호)

이 할머니는 전쟁에서 남편을 잃고 북에서 내려온 오 할아버지와 만나 29세에 결혼했다. 가부장적인 남편과의 40년 결혼생활은 “창살없는 감옥”이었다. 남편 명의로 된 재산형성에 공로를 세웠음에도 경제권을 박탈당했고, 종교의 자유도 없었다. 아들과 며느리 앞에서 폭언을 듣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무일푼으로 남편에게 쫓겨나 떠돌이 생활을 전전하기도 했다. 95년 첫 이혼 소송을 냈던 할머니는 95년 이혼소송을 혼자 치뤄내며 2000만원의 빚까지 지게 됐다. 담당판사는 할아버지가 할머니 빚을 갚아주고 다시 집에 들어가 살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화해 시켰다. 97년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고려대에 전 재산을 기증해버렸다. 할머니는 두 번째 이혼소송을 감행했으나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재판 결과는 할아버지의 승리였다. 당시 할머니는 미국으로 간 아들과 주변 친지의 도움으로 전세 1800만원의 지하셋방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다. 오 할아버지는 이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70세나 난 사람이 이혼소송을 청구하는 것이 늙은이 노망질 아니고 뭐겠소? 난 이혼 따윈 바라지도 않고 언제라도 화해할 준비가 돼 있소. 더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오”라고 잘라 말했다. (1998년10월2일자 494호)

 

각계 각층 여성들 공분

여성에게 침묵과 순종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억압 속에 최소한의 권리조차 외면당하며 살아온 여성은 비단 이 할머니 뿐만이 아니다. 집안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남편 아래 수 많은 여성들의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 할머니의 이혼소송 기각 사건이 알려지자 여성인권단체와 시민들은 분노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할머니 ‘이혼시켜드리기 운동’이 일어났다. 여성신문도 할머니를 돕기 위해 ‘여성인권보호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본지는 “노년에 가서야 이혼을 제기하게 되는 ‘황혼이혼’은 여성의 마지막 자기주장으로 더 처절한 인권의 외침이다”는 전제 아래 이시형 할머니 돕기 후원구좌를 개설해 모금에 나섰다. 서울여성의전화는 본지와 연대해 이혼소송 문제점을 사회이슈화하고 이 할머니가 승소할 수 있도록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1998년10월23일자 497호)

1심에서 할머니 사건을 무료 변론해온 조배숙 변호사(현 국회의원)에 이어 항소심에서는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현 서울시장)이 하승수‧이상훈 변호사와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해 이 할머니의 항소심을 무료로 도왔다.

이혼 3건 중 1건 황혼이혼

“40년을 같이 살면서 단 한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습니다. 초인종 소리에 ‘나야' 하면, 그때부터 가슴이 분탕질 하고, 뭐 잘못한 거 없나 눈치를 살피게 돼요. 그 영감 앞에 저는 종이고, 하인이었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시형 할머니 항소이유서 중)

사회적 불씨를 일으킨 여성신문의 보도와 전 국민의 뜨거운 관심과 지원은 이어졌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99년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이시형 할머니와 그 보다 앞서 황혼이혼 소송을 제기했던 김창자 할머니를 ‘성평등 디딤돌상’ 수상자로 결정했다. 가부장제 사회의 남편의 부당한 권위로 인한 부당대우와 경제적 속박이 결코 자연스러운 인습이 아니라는 사실과, 행복을 위한 이혼에 대한 결정권은 나이가 많고 적음이나 성별과 무관하게 인정받아야 마땅한 인간의 권리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여성권익을 높였다는 취지였다.(1999년3월12일자 516호)

그리고 마침내 2년여 만인 2000년 9월 재산분할 3분의 1, 위자료 5000만원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첫 황혼이혼 승소 판결이었다. 이 할머니의 사건으로 물꼬를 튼 황혼이혼은 해마다 급증,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해 이혼한 부부 4쌍 중 1쌍이 황혼이혼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2012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이 전체의 26.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2013년5월10일자 1236호).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은 4년 차 이하 부부의 이혼 건수를 추월해, 4년 차 이하 2만 8,200건, 20년 차 이상 3만 200건으로 처음으로 수치가 역전됐다. 특히 혼인 기간 30년 이상 부부의 황혼이혼은 8600건으로 2011년보다 8.8% 늘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남편의 폭언과 폭행, 학대뿐 아니라 의사소통의 단절, 경제권 문제는 황혼이혼의 주된 사유다.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2부장은 “젊어서는 아이를 키우며 참고 살았지만 나이 들어서도 남편이 경제권을 독점하는 데 대해 아내가 반발해 이혼하는 경우도 많다”며 “아내는 평생 같이 노력해서 가정을 일궜는데 남편이 자신이 벌었다는 이유만으로 월세나 연금을 자유롭게 쓰는 것을 도저히 못 참겠다고 한다. 경제권 문제로 황혼이혼을 할 경우 자녀들의 입장도 갈린다”고 말했다.(2013년5월10일자 12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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