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조의 어쨌든 경제]

오래도록 다양한 현장 경제를 경험해온 김동조대표가, 우리 생활에 너무 중요한 그러나 어려운 경제를, 여성신문 독자를 위해 쉽게 정리해 드립니다. 이 글은 재능기부이며 여성신문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편집자 주>   

 

Q: 얼마 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얘기는 제가 지금까지 공직생활하며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경제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경제는 언제 좋아지나요?

A: 이해찬 대표의 기억이 참 정확하네요. 한국 경제는 1963년부터 1979년까지 17년 동안 연평균 10.6% 성장했습니다. 유례가 없는 고속 성장이었습니다. 1980년의 경제위기를 잘 극복하고 1997년까지 18년 동안 연평균 8.5%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199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눈에 띄게 감소합니다. 1998년 이후 2017년까지 연평균 4% 성장하는 데 그칩니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변동성이 꽤 큰 지표였다. 하지만 1998년 이후 변동성은 감소하고 추세는 하락 중이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변동성이 꽤 큰 지표였다. 하지만 1998년 이후 변동성은 감소하고 추세는 하락 중이다.

4% 성장도 선진국들에 비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성장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겁니다. 김대중 정부의 연평균 성장률은 5.3%였지만 노무현 정부에서는 4.5%로 떨어지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3.2%로 하락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연평균 성장률은 2.98%. 처음으로 2%대 성장률을 기록합니다. 20년간 경제가 잘 돌아간 적이 없는데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죠.

한국 경제의 문제는 성장률의 하락, 청년실업의 증가, 그리고 불평등의 악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가 겪는 문제입니다. 저는 ‘세계화’와 ‘기술진보’가 이 문제들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 겁니다. 세계화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자유무역을 의미하고 기술진보는 생산성의 향상을 의미할 텐데 왜 경제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

세계화와 기술진보가 경제에 주는 장점은 단점보다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그 장점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애플의 아이폰은 미국에서 디자인되지만 중국에서 만들어집니다. 중국의 일자리는 늘어나지만 미국의 일자리는 줄어듭니다. 애플은 돈을 벌고 미국 전체로 보면 더 부자가 된 게 맞지만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고 가난해집니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과 인도는 이전의 혹독한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일자리를 잃게 된 나라들의 불평등은 오히려 심해졌습니다.

한국의 경제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 심각해졌기 때문에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구조 변화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외환위기 해법은 채권 은행들이 자금을 빼가는 대신 외채의 상환 기한을 연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한국은 고금리 정책과 광범위한 구조 개혁 그리고 자본시장의 완전한 개방을 약속해야만 했습니다. IMF가 요구한 재벌 개혁도 실행해야 했습니다. 기업들은 대규모로 자산을 매각해 부채 비율을 줄여야 했고 근로자를 대량 해고했습니다. 정리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바꾸었지만 동시에 노조의 정치 활동을 허용하고, 공무원과 교원 노조를 허용하고, 파업에 제3자가 개입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었습니다.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했고 자본시장도 개방했습니다. 이제 대기업들은 예전에 했던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투자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높은 편이지만 이전에 비하면 확연히 떨어졌습니다. 투자율이 감소하면 성장률이 떨어집니다.

폴 크루그먼 (미국의 경제학자.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은 “한 나라를 가난하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생산성 향상이 유일하다”고 말했습니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인적 자본을 포함한 다양한 자본의 양과 질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감소한 대기업 투자를 대체할 투자 주체를 아직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인구가 감소하며 일할 사람이 빠르게 줄고 있고, 일주일에 52시간 이상 일할 수 없게끔 노동 시간도 줄이고 있습니다. 투자의 감소로 자본 투입 증가율이 떨어진 상황에서 노동 공급 증가율을 떨어뜨리는 정책이 사용되고,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총요소 생산성의 증가가 없다면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문제는 혁신을 통해 총요소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것은 선진국에서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란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경제가 좋아질 것이란 기대는 당분간 접는 게 좋겠습니다.

 

김동조

투자회사 벨로서티인베스터 대표.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로, 시티은행 트레이더로 일했다.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썼다. <한겨레신문> <조선일보> <에스콰이어> 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했다. 경제 블로그인 kimdongjo.com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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