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반성폭력 시민감시단 『새로고침』

3년간 기사 307건 모니터링

장애인, 지나치게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로 표현해

‘OO판 도가니’ ‘△△ 노예’ 등

자극적인 이름 붙이기 여전

범행 수법 선정적으로 쓰기도

 

장애인 성폭력 범죄를 보도하는 기사에는 범죄가 발생한 맥락은 삭제되고 ‘장애’만 남는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장애인 성폭력 범죄를 보도하는 기사에는 범죄가 발생한 맥락은 삭제되고 ‘장애’만 남는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폭력 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은 흔히 사건 경위와 원인, 처벌 내용에 초점을 맞춰 다룬다. 그런데 피해자가 장애여성이면 기사 내용은 좀 달라진다. ‘장애특성’을 근거로 내세워 장애여성을 지나치게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로 강조해 표현하고, ‘범행 경위’라며 자극적인 범행 수법을 여과없이 내보낸다. 성폭력 범죄가 발생한 맥락은 삭제되고 기사에는 ‘장애’만 남는다.

장애와 반성폭력 시민감시단 『새로고침』(이하 시민감시단)이 지난 2016~2018년까지 3년간 언론사 108곳, 기사 307건을 모니터링하고 내논 비평이다. 시민감시단은 장애여성공감 부설 성폭력상담소가 장애인 성폭력전문상담원 양성교육을 이수한 시민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나무는 ‘언론보도 및 일상생활 모니터링 쟁점 분석 및 제언’ 발표문을 통해 장애인 성폭력과 학대, 미담을 다룬 기사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분석해 발표했다.

먼저 장애인을 무능력하고 취약한 존재로 극대화해 표현한 기사들이 많았다.

‘B씨는 사리 분별력과 인지 능력이 현저히 낮아 신고할 생각을 못 했고’ (2017년3월3일 A방송사)

‘발달장애인들은 판단력 부족에 의사표현 능력이 떨어져 성범죄를 비롯한 각종 범죄에 쉽게 노출, 의사소통이 문제’ (2017년4월19일자 B신문사)

‘지적장애가 있으면 성폭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2018년5월5일자 C신문사)

나무 활동가는 “이 같은 서술은 범죄 피해가 인지능력이 부족한, 대처능력이 미숙한 장애특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된다는 편견을 강화하게 된다”며 “장애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로 고정돼 각인되기 쉽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개인이 무능력해 범죄 피해를 입었다는 식으로 책임을 돌리는 위험한 사고를 강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사고는 성폭력 범죄의 원인을 ‘피해자가 제대로 저항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는 피해자 책임론으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상당수 언론에선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고위험군’이라는 표현한 지역 경찰청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기도 했다.

‘성범죄에 취약한 국내 고위험 재가 지적장애인이 5700명에 달하는 것’ (2016년12월2일자 XX일보)

‘고위험군인 지적 장애를 가진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2017년5월12일자 OO신문)

해당 경찰청은 ‘지적장애여성이 성폭력 범죄에 노출될 위험성이 매우높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CCTV를 설치하고, 가정방문을 간다’고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해 홍보했다. 나무 활동가는 이는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장애여성을 언제든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낙인, 차별, 통제의 기제로 작동된다”고 비판했다. 한 언론사는 “고위험군을 ‘엄격’하게 심사해 ‘공정’하게 선정하겠다는 경찰서장의 인터뷰도 실었다”. ‘보호’를 위해 지적장애여성의 개인정보다 사생활은 공개돼야 한다는 인권침해적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언론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여과없이 경찰청 사업을 홍보했다.

언론은 장애인 학대 성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 자극적인 이름 붙이기로 독자들의 ‘클릭’을 유도한다.

‘소녀가 떡볶이를 얻어 먹고 닷샛 동안 6명의 남성에게 성폭행 당한 하은이 사건(떡볶이 화대사건)’ (2017년3월7일자 △△일보)

‘12세 소녀와 아동복지교사의 동거… 현대판 민며느리 논란’ (2017년8월4일자 □□일보)

‘토마토 노예 50대 마을이장 항소심서 집유로 감형’ (2017년6월5일자 ◇◇뉴스)

‘도가니’는 광주의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발생한 장애인 학대·성폭력 사건을 가리킨다. ‘도가니’라는 제목의 소설·영화이 화제가 되면서 이 사건은 해결의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이후 장애인 시설에서 학대나 성폭력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지역 이름을 붙여 ‘도가니’라 불린다. 2014년 전남 신안의 한 염전에서 발생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은 언론이 ‘염전 노예’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발생하는 장애인 학대 사건 기사는 대부분 ‘노예’라는 별칭을 쓴다. 나무 활동가는 “기자들은 대중의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자극적 네이밍 방식보다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제목을 선정해 심도 깊게 고민해야 한다”며 “자극적 네이밍 방식이 피해자들의 삶을 낙인화하고 있지 않은지, 또 다른 2차 피해가 되지 않는지 신중하게 판단해 제목을 선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 상황을 지나치게 자세히,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사례도 많았다. 시민감시단이 문제 기사를 쓴 기자에게 항의를 하자 기자는 “범행 수법이 아닌 경위를 쓴 것이며, 공개된 정보이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수정할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슬아 사무국장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보도 태도는 해당 언론이 ‘성폭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회적 책임을 갖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라며 “하지만 국내 언론보도 현실은 사건의 본질은 사라진 채 자극적으로 삽화와 불필요하게 피해정황을 상세히 다루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는 “언론의 표현은 ‘바른 표현’에 있기보다 사회가 인권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소식과 분석, 입장을 전하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예’라는 비유 자체도 문제지만 ‘노예처럼 부린 못된 이웃·악덕 주인’이라는 식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만 사건에 등장시키는 것이 문제”라며 “장애인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게 만드는 구조는 사라져버리고, 장애인은 못된 이웃이나 악덕 주인을 피하는 것 외에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을 찾을 수 없다”고 짚었다.

나무 활동가는 언론이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 사실 보도를 넘어 범죄를 유발하고 확산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국가와 사회에서 공론화되고 있는 대안과 정책은 실효성은 있는지에 주목해 비판적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장애인 성폭력 사건 보도지침 (제공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 장애여성을 무성적인 존재로 표현하지 않는다. 성적인 존재로서 존중받고 자신의 선택권과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 지나치게 무능하고 무력한 존재로 표현하지 않는다. 장애로 인해 능력에 제한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무능력함으로 그려지는 것은 옳지 않다.

·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서 비인격화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장애여성의 장애를 이용해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짐승이나 악마로 표현하지 않는다. 이는 가해자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 장애여성에게 가해진 성폭력 피해를 축소하지 않는다. 가해자들이 한 행동을 ‘못쓸 짓’ 정도로 축소하는 것은 범죄행위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 장애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모두가 안전한 사회이지 장애여성만 보호라는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다.

· 범죄자가 장애인인 경우 장애만을 강조하거나 지나치게 일반화하지 않는다. 범죄행위의 원인을 오로지 개인의 장애에서만 찾다보면 그 개인을 둘러싼 사회구조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된다.

· 장애여성 피해자에 대해 극단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다. 장애가 있는 피해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인격적인 존재로 대상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장애와 관련된 용어를 사용할 때 정확하고 인권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장애유형에 따른 정확한 명칭을 사용하고, 장애를 병적인 것(‘장애를 앓는’), 비정상적인 것(‘정상인보다 지능이 낮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일반인에 비해’)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차별의 언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 보도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시각 이미지는 사용하지 않는다. 선정적인 이미지로 장애여성의 피해를 더욱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은 도리어 장애여성 성폭력의 일상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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