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를 동력 삼은

청년들이 소리치는 현장에서

종교를 방패로 한 한국 사회의

도덕적 공황을 목격했다

 

 

 

지난해에 이어 어김없이 열린 2회 제주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9월 27일, 탑승구에 놓인 신문들 가운데 한겨레신문의 첫 면 머리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동성애 난민 혐오 ‘가짜 뉴스 공장’은 극우 기독교단체 에스더였다” 신문 한 부를 챙겨 자리에서 펼쳐 들었다. 지난 여름 움직씨 출판사에서 어린이의 동성애를 다룬 그림책인 『첫사랑』을 출간한 이후 자신을 시인이자 목사이며 반동성애 운동가라 칭하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이와 추종자들로부터 수백 개의 악성 댓글과 가짜 뉴스 공격에 일찌감치 시달린 터였다. 극우와 기독교 논리를 기묘하게 뒤섞으며 대중의 불안과 공포증을 부추기고 소수자 혐오 문화를 사회 일반의 견해인 냥 확대 재생산하는 그들의 정체가 의아했다.

지면을 넘기자 ‘케이에이치티브이(KHTV)’, ‘지엠더블유(GMW)연합’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상에 자주 등장하는, 결코 낯설지 않은 반동성애 반무슬림 반페미니즘 기독교 유튜브 채널과 블로그 이름들이 드러났다. 놀라운 건 그들이 2007년 이용희 가천대 글로벌경제학과 교수가 만든 극우 기독교단체 ‘에스더기도운동(이하 에스더)’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이어져 하나의 거대 지형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에스더가 앞세운 동성애, 이슬람, 여성/성소수자 혐오 논리는 마치 모세혈관을 타고 림프계 조직마다 퍼지는 악성 종양처럼 유튜브 채널에서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로, 다시 카카오스토리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우리 사회의 포퓰리즘과 낮은 인권 감수성에 기대어 빠르게 번져 나가고 있었다.

 

 

지난 9월 29일 제주퀴어문화축제 현장. 이날 퍼레이드는 경찰의 협조 하에 평화롭게 치러졌다. ⓒ노유다
지난 9월 29일 제주퀴어문화축제 현장. 이날 퍼레이드는 경찰의 협조 하에 평화롭게 치러졌다. ⓒ노유다

 

앞으로 진짜와 가짜는 어떻게 구분될 것인가? 극우 기독교단체가 ‘반종북/반좌파’에서 ‘반동성애/반무슬림/반페미니즘’으로 의제를 갈아탄 것은 그것이 성경에 의거해 바람직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 선동의 대상인 일부 대중이 이를 암암리에 반겼던 까닭이다. 가짜 뉴스가 호감가지 않는 주장과 빈약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소비될 수 있는 이유는 사회 정의보다 자기 실익을 위해 사회적 소수자를 배제하는 것이 낫다고 믿는, 그래서 이단보다 더 광적인 일부 극우 기독교도들의 수상한 종교 활동을 강 건너 불구경으로 방관하거나 좌시할 수 있는 다수의 시민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9월 8일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퀴어 혐오자 그룹에 의해 집단적인 린치와 행사 테러가 발생했을 때 움직씨 역시 경기도 소재의 퀴어 출판사로 그 현장에 있었다. 퀴어 참가자들은 물론 경찰과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까지 극우 기독교도들에게 동인천역 북광장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통행권을 박탈당했다. 타인에게 일방적인 폭언을 퍼붓고 신체 일부를 함부로 만지거나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현세의 지옥을 만드는 일이 ‘천국으로 가는 관문’ 혹은 ‘하나님의 명’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목격하며 과연 이러한 인지 오류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가 궁금했다. 또한 경찰은 스스로 맞고 밀리면서도 무법천지를 무기력하게 방관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충격적인 건 혐오세력 안에 노인층뿐 아니라 젊은 청년들이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신문 통계에 의하면 극우와 극단 언어로 채워진 유튜브 채널의 ‘가짜 뉴스’를 가장 많이 접한 이들도 20대였다.

“쟤들 간다. 잡아!” 가짜 뉴스를 동력으로 삼은 청년들이 마치 놀이하듯 집단 린치를 즐기며 소리치는 현장에서 종교를 방패로 한 한국 사회의 도덕적 공황을 목격했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책을 샀다. 깐깐한 제주 언니들이 꼼꼼히 알려 주는 『진짜 제주』, 제주에서 책방 라이킷을 운영하는 안주희 대표가 게스트하우스 레인보우 인 제주를 운영하는 노송이 대표와 함께 쓴 책이었다. 책 제목이 ‘진짜 제주’라면 ‘가짜 제주’도 있을까? 책을 살펴보니 흔히 여행 정보 책에 소개되는 숙소 맛집 정보가 없고 오래 머무르고 싶은 길과 동네와 자연을 중심으로 제주를 말하고 있었다.

제주 시내에서 예멘인인 듯 추정되는 남성 둘을 봤다.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두 사람은 정보지를 뒤적이며 살아가는 일을 해결하는 데에 분주해 보였다. 이틀 뒤인 29일 제주퀴어문화축제는 촉촉하게 비가 내리는 가운데 평화롭게 시작되었고 퍼레이드 전에 “할렐루야”를 외치며 울부짖는 이들로 인해 한 시간 가량 통행이 가로막혔지만 경찰의 협조 하에 작년처럼 평화롭게 치러졌다. 느리게 움직이는 축제 차량 아래로 한 남성이 슬라이딩하듯 몸을 던졌다가 경찰의 손에 곧장 이끌려 나왔고 이를 의문의 남성이 촬영하는 찰나가 있었으나, 이들 자해 공갈 이 인조는 세간을 술렁이게 할 가짜 뉴스를 남겼다.

“퀴어축제 측 차량이 동성애 축제를 반대하는 시민을 깔고 지나갔다. 이 시민은 아직까지 의식 불명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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