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동화책 ‘거북선(The Turtle SHip)’을 쓴 작가 헬레나 구 리(Helena Ku Rhee).
영문 동화책 ‘거북선(The Turtle SHip)’을 쓴 작가 헬레나 구 리(Helena Ku Rhee).

[인터뷰] 동화작가 헬레나 구 리 

소니픽쳐스 비즈니스 파트 부사장 

“소년 이순신의 이야기는 ‘작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제 이야기이기도 해요.”

최초의 영문 동화책 ‘거북선(The Turtle SHip)’을 쓴 작가 헬레나 구 리(Helena Ku Rhee)는 “15년 전 처음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고, 이후 다양한 출판사로부터 50번이 넘는 거절을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정말 이루고 싶은 간절한 꿈이 있다면 계속해서 도전하라”고 말했다. 그가 살아온 인생 궤적을 따라가 보면 흔히 들을 수 있는 이 표현은 어느새 진정성 있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미주한인 2세인 그는 LA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예일대 영문과와 UC버클리 법대를 졸업했으며 로펌 변호사를 거쳐 현재는 소니픽쳐스 비즈니스 파트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변호사로 맺어진 소니픽쳐스와의 인연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식들을 위해 힘들게 빌딩청소를 하시는 부모님을 지켜보면서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어요. 저의 원래 꿈은 제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일이었지만 가족이라는 나의 또 다른 꿈을 위해 변호사를 선택한 거죠.”

“먼 옛날, 이순신이라는 소년은 애완동물 거북이와 전 세계를 누비며 항해를 하는 꿈을 꾸었어요. 가난한 소년에게는 불가능한 꿈이었지만 말이죠. 그러던 어느 날 왕은 침략자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전함 설계 경연’을 열겠다고 했어요. 우승자는 군함을 이끌고 항해를 할 수 있었지요.”

그의 데뷔작인 ‘거북선’은 16세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이순신 장군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 그린 소설이다. 소년 이순신이 임진왜란에서 활약하는 장군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겼다. 지난 6월 출판된 이 책은 아마존 ‘아시아 동화책 분야’에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미국에서 작가라는 꿈을 이룬 그가 지난주 다시 찾은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

 

거북선(The Turtle Ship) 표지. Collen Kong-Savage가 일러스트를 맡았다. 헬레나 구 리는 “출판사와 따로 일러스트레이터를 찾았지만 놀랍게도 같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Helena Ku Rhee
거북선(The Turtle Ship) 표지. Collen Kong-Savage가 일러스트를 맡았다. 헬레나 구 리는 “출판사와 따로 일러스트레이터를 찾았지만 놀랍게도 같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Helena Ku Rhee

그는 “결혼 후 남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미국에서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1년 동안 원어민 선생님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때 이순신과 거북선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한국에 머물며 서울의 한 외국어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책과 꿈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했다. 

평소 동물을 좋아하는 그는 작은 거북이를 보며 침략자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전함을 떠올린 이순신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거북선’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외세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는 스토리 자체가 역동성 있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세상에 선보이기까진 긴 시간이 걸렸다. 출판사들이 처음부터 그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던 것도 아니다.

“원래 주인공은 이순신이 아닌 왕이었어요. 숱한 거절에 몇 년 동안은 아예 글을 쓰지도 않았어요. 이후 이야기를 가다듬어 나가면서 소년 이순신으로 주인공을 바꿨어요. 처음 거절 메일은 ‘Not for us’ ‘No thankyou’ 정도로 짧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답변이 길어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죠. 처음 책이 출간됐을 땐 눈물부터 나왔어요.”

 

헬레나 구 리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헬레나 구 리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그는 독서와 여러 여행의 경험 속에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편이다. 퇴근 후 시간이 남은 주중엔 책을 읽고, 주말엔 글을 쓰는 작업에 몰두한다. 스키, 스노보드 등 활동적인 취미를 가지고 평소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7년 전부턴 오로지 책 쓰는 일에 시간을 집중하고 있다. 그의 컴퓨터엔 아직도 아이디어를 저장해 놓은 파일들이 수북하다. 그 결과, 그의 두 번째 동화 ‘종이왕국(The Paper Kingdom)’도 2020년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는 “종이왕국의 주인공인 어린 소년 또한 사실 제 유년시절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됐다”며 “부모님께서 저녁 때 빌딩 사무실이나 화장실을 청소해주시는 일을 하셨다. 그때 일하는 사무실로 저를 데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다른 나라로 이민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경험을 담았다. 또 어린이들이 엄마 아빠가 힘들게 일하는 걸 어떻게 느끼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항상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제게 많은 영향을 주는 책 중 하나예요. 동화책을 쓰는 이유도 비슷하다고 봐요. 제가 독서를 통해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어린이들이 제 책을 읽고 꿈과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작가라는 직업이 메인 잡(Main Job)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글을 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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