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

성평등문화상 청강문화상 부문 수상자

웹툰 ‘며느라기’ 작가 수신지

“누가 강요하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은 

며느리 역할 하게 되는

이유 궁금해서 시작”

인스타 연재 시작한 이유는

웹툰 기업들에 거절 당해서

이제는 팔로워만 62만명

미혼여성들도 높은 관심

페미니즘 다룬 첫 작품…

부담 커도 인권 관심 

 

웹툰 ‘며느라기’로 지난해 주요 만화상을 휩쓸었던 수신지 작가가 올해 성평등문화상 청강문화상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 20대 여성이 신혼 초 시가에서 겪는 평범한 일상을 통해 가부장제의 민낯을 드러낸 이 작품은 웹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는 젊은 세대의 매체를 통해 공기와 같은 가부장제 가족문화 속에 놓인 평범한 개인들을 호명하면서 파장을 일으켰다.

수신지 작가는 2002년 미대를 졸업 후 줄곧 프리랜서 작가 생활을 하면서 ‘3그램’ ‘스트리트 페인터’ 등을 출간했고 대한민국창작만화공모전 대상 등 크고 작은 상을 꾸준히 수상한 실력파다. 여기에 지난해엔 ‘2017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비롯해 한국만화가협회장상 등도 받았지만 성평등이라는 공로를 인정한 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4일 작가가 자주 찾는다는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수상 소감으로 “지금까지 받았던 상들과는 느낌이 다르다”며 말문을 연 그의 표정에서 각별함이 느껴졌다. 일면식도 없는 정진호 동화작가가 그를 후보로 추천하겠다면서 대뜸 연락해왔는데, 상 이름을 듣자 ‘꼭 받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을 정도였다고. 작가에게는 이 상이 노력과 작품성에 대한 인정에 더해 ‘페미니즘’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 겪었던 마음고생에 대한 보상인 듯 했다.

 

수신지 작가가 그린 자신의 캐리커처 ⓒ수신지 작가
수신지 작가가 그린 자신의 캐리커처 ⓒ수신지 작가

‘며느라기’는 수신지 작가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2016년 5월 시작해 2018년 1월까지 1년 6개월 간 약 100회에 걸쳐 연재한 작품이다. 인스타그램의 이미지 제한 매수인 10컷에 맞춰 그림을 그렸다. 가부장제의 존재 방식과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1000컷의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명절이 아닌데도 며느리와 가부장제를 소재로 다룬 방송이 제작되고 사회적 논의가 이뤄졌다.

웹툰 제목은 ‘며느리’가 아니라 ‘며느라기’다. 웹툰에 나온 정의는 이렇다. “사춘기나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며느라기라는 시기가 있대. 시댁 식구한테 예쁨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그런 시기. 보통 1∼2년이면 끝나는데, 사람에 따라 10년 넘게 걸리기도, 안 끝나기도 한다더라고.”

며느라‘기’는 특정 시기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기운 기(氣)자에 더 가깝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웹툰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주인공 민사린은 꿈속에서 주례 선생을 찾아가 ‘며느라기’가 무슨 뜻인지 묻는다. 꿈 속의 결혼식 당시 주례 선생은 ‘며느라기를 받으시겠습니까’라고 묻고 민사린은 “네”라고 대답했다. 그 기운을 받으면 “자기 부모님 생신에 미역국 한번 안 끓여본 사람이 시부모님 생신상은 손수 차려드려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민사린은 직장에서 곧잘 해외출장을 가는 똑똑한 커리어우먼이다. 결혼 전에는 남자친구에게도 똑부러지게 말을 할 줄 안다. 그런데 결혼을 하자 자기도 모르게 시댁 식구들의 비위를 맞추고 희생하면서 칭찬받기 위해 노력하는 헌신적인 며느리가 된다. 시어머니의 생신 전날 퇴근 후 시가에 가서 잠을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상을 차린다. 정작 남편과 시누이는 평소처럼 일어나 손 하나 대지 않는데 말이다.

작가는 30대 초반부터 작품으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밑작업을 시작했다. 페미니즘 이슈가 사회에서 본격화된 무렵도, 결혼을 예정하고 있던 때보다 한참 전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명절 이야기, 고부 갈등 등 며느리들의 일상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 읽다 보니 문득 의문이 들더라구요. 결혼한 여성이 아무도 강요하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은 며느리 역할을 하게 되는 이유 말이에요. 이야기 거리가 많다는 것도 작가에겐 매력적이고요.”

 

 

 

 

 

인스타 ·페이스북 62만 팔로워

수신지 작가는 SNS 웹툰의 선구자 격이다. 그가 스타 반열에 오른 후 인스타 웹툰은 흔한 콘텐츠가 됐다. ‘며느라기’의 인기는 62만명에 이르는 SNS 팔로워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20~30대 여성들이 동성 친구는 물론, 남자친구를 댓글로 태그해 불러모으면서 구독자가 순식간에 불어났고 매회 마다 ‘좋아요’가 수천 개,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렸다. 며느리를 일꾼 정도로 취급하는 시가 식구들에 대한 분노, 자신은 하지 않는 효도를 아내에게 바라는 남편에 대한 질타, 자신을 중심에 놓고 시집과의 관계를 맺는 형님(남편의 형의 아내)에 대한 응원 등이다. 특히 ‘민사린이 왜 이혼을 하지 않느냐 답답하다’, ‘역시 결혼을 해선 안 된다’는 댓글은 매회 수십 개씩 올라왔다.

수백개 씩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과 뜨겁고 격렬한 반응 자체가 작가에겐 두려움과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시나리오를 쓸 당시에는 기혼여성의 공감만 생각했지, 미혼들이 비혼을 하자고 할 줄은 생각 못 했어요. 문제는, 웹툰을 보고 그들의 남자친구가 집 앞에 찾아와서 해치지 않을까 무서웠어요. 연재를 시작했을 때가 강남역 살해사건 직후였고요. 웹툰을 내릴까, 지방이나 외국으로 갈까 생각도 했어요. 강한 의견을 표출하고 욕을 하는 게 나한테 뭐라 하는 게 아닌데도 겁이 나더라구요.”

작가로서 과격한 댓글이 달리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에 “결코 과격하게 그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보다 너무 순하게 그려졌다는 얘기도 듣는다. 기혼여성들 중엔 ‘무구영(민사린 남편) 정도의 남편이면 업고 다니겠다고들 한다’”면서 웃었다.

 

첫 페미니즘 작품...미흡하지만 최선 다 해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그의 작업은 며느라기가 처음이다. 일부 독자들 사이에서는 ‘며느라기’를 두고 페미니즘이 아니라거나 작가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의 수상소감을 통해 심정을 드러냈다.

“요즘에 힘들다고 할까 그런 게, ‘며느라기’에 대해 이게 무슨 페미니즘이냐, ‘네이트판’(고민 올리는 인터넷 게시판)같다는 얘기도 해요. 이례적이지도 않고, 대안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제자리걸음 뿐이라는 피드백도 있었어요. 완전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고, 독자들 반응도 그럴 수 있다고 이해는 하지만 좀 속상했어요. 미흡한 점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어요. 상을 받으니 인정받은 기분이고 더 기뻤어요.”

댓글에는 지지와 응원도 많지만 거침없는 비판과 지적은 반 년이 지나도록 작가의 마음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듯 했다. 

작품을 구상할 당시 페미니즘이라는 사회적 논쟁에 뛰어든다는 자체에 부담을 느꼈을 법도 했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제 작품에 이렇게 관심가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응 자체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다만 부부 사이에 말 못하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웹툰으로 말문을 틔울 수 있는 수단이 되길 기대했는데 미혼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뜻밖이었다.

“부부 간에 시가 식구들에 대한 이야기는 불편하거나 갈등이 일어날 수 있어 대화 자체를 회피하게 되잖아요. 웹툰으로 부드럽게 물꼬를 텄으면 했어요. 그런데 심지어 20대 여성들 조차 남자친구에게 만화를 애교 섞인 말투로 조심스럽게 권하고 눈치를 살피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어요.”

 

“인기 누렸지만 수입은 별로”

그가 작품을 개인 SNS에 연재한 게 된 계기는 사실 개척자 정신도, 순수한 자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성차별적인 사회 문제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며느라기를 연재하기 위해 웹툰사이트 업체와 포털 등 3곳에 보냈지만 모두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거절 사유를 구체적으로 듣진 못했어요. 다만 기업에서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분들 중에 남성이 많을 테고 공감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더 보내볼 필요도 없겠다 싶었어요.”

의외인 사실은 유명세가 수익으로 거의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원고료나 광고료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혀 아니다”고 설명했다. SNS 연재가 끝낸 후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했지만 현재 판매고는 2만부. 60만 SNS 팔로워 수에 한참 못 미친다. 그나마 올해 안에 웹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다. SBS모비딕과 계약을 한 상태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많았어요. 광고 제의도 많이 받았고요. 그러나 민감한 소재이다 보니 카카오톡 이모티콘 같은 상업적인 콘텐츠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분들이 계셨어요. 연재 당시 수익은 이모티콘 뿐이었고요. 에코백 같은 굿즈도 판매했는데 마찬가지였어요. 주인공에 감정이입하고 있는데 그렇게 사용되길 원치 않았던 것 같아요.”

책은 단지 웹툰의 인쇄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소장가치가 있는 콘텐츠이고 이야기가 담겨있다. 먼저 작가는 크고 작은 많은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직접 독립출판사를 차렸다. 책 디자이너를 섭외하고 홈페이지도 만들고 독립적인 판매 시스템을 갖추고 선주문을 받았다. 책 디자인은 한눈에 봐도 독특하다. 노출제본으로 제본 부분을 본드칠한 책등(세네카) 없이 형광색 끈으로 묶어 속지를 노출시키고 투명 케이스에 담았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을 또 볼 수 있을까. “처음엔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관심이 인권에 관련된 쪽으로 자연스럽게 가더라구요. 이번에 같이 수상하는 장혜영 감독님 책도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그동안 내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장 계획은 없지만 이런 문제를 더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책임감이 들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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