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만남] ‘양성평등 교육’ 넘어 ‘페미니즘 교육’으로
[여성신문-만남] ‘양성평등 교육’ 넘어 ‘페미니즘 교육’으로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8.10.03 15:34
  • 수정 2018-10-09 1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남]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20년 넘게 성평등교육

연구·실행한 전문가

연령·직군·상황 등 

다양한 맥락 고려한

프로그램 개발 집중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은 “연령별, 직군별, 상황별 다양한 사람들의 맥락을 고려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해 양평원이 ‘성인지 교육 프로그램 허브’로 자리매김하는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은 “연령별, 직군별, 상황별 다양한 사람들의 맥락을 고려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해 양평원이 ‘성인지 교육 프로그램 허브’로 자리매김하는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나임윤경’. 호주제 폐지를 위해 ‘부모 성 함께쓰기’ 운동에 동참하며 쓰기 시작한 이름이다. 성평등교육 전문가인 그는 이름에서부터 페미니스트 임을 드러낸다. 강단과 인권 현장을 오가며 여성학자로서 활동해온 그는 지난 6월 공무원 성평등 교육을 책임지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하 양평원) 원장에 임명됐다. 20년 넘게 몸담은 교직을 잠시 내려 놓고 공무원 성평등 교육과 성희롱·성폭력 등을 가르치는 강사를 양성하는 공공기관의 수장을 선택한 것이다. 공직자가 되면서 법적 이름인 ‘나윤경’을 사용하지만, 그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성평등 교육’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갖는 무게감 때문이다.

“지난 2월 ‘초중고등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에 20만명이 넘게 참여했어요. 저는 이 청원은 젠더 모순만이 아니라 노사 문제와 직장 내 상하 관계 문제, 부서 간의 위계 등 사회구조적으로 비민주적인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평등하게 공존하는 방안을 교육적으로 개입하자는 취지의 청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양평원이 해야 할 역할을 요구받은 셈이죠.”

나 원장은 시민들이 요구하는 ‘페미니즘 교육’은 ‘양성평등 교육’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양성평등 교육은 구조는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 변화를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면, 페미니즘 교육은 자본주의의 구조와 모순도 함께 가르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령, 페미니즘 교육을 한다면 성희롱·성폭력만 다루는 게 아니라 비민주적 의식 속에 있는 실천을 모두 교육할 수 있다. 위계의 문제인 ‘왕따’를 성인지라는 이름으로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고, 뜰에 배추와 당근을 심는 생태 교육도 페미니즘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원장은 “그런 면에서 양평원은 양성평등 교육을 해왔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비혼·비연애·비출산·비섹스를 일컫는 이른바 4B를 실천하고 남성을 배제해야 ‘진정한 페미니스트’라고 추앙받는 흐름이 존재한다. 이른바 ‘혜화역 시위’라 불리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는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이들의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다. 하지만 나 원장은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에게 완벽하게 동의하지 않지만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그들이 남성을 배제하는 식의 운동을 하는 것이 전혀 근거가 없거나 허무맹랑하진 않다는 것이에요. 그들의 맥락에선 그 주장이 타당하다고 봐요. 다른 맥락을 볼 수 없을 만큼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열악하다는게 문제 아닐까요. 그녀들의 그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거죠. 사유는 늘 변하잖아요. 저도 30년 전과 50대가 된 지금 사유 체계는 달라요. 누구나 사유 체계의 변천을 겪잖아요. 그들도 다양한 맥락에 대해 알아가면서 사유가 변화할 것이라고 봅니다.”

 

나 원장은 인터뷰 중 여러차례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맥락을 무시하고 만들어진 성평등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성희롱을 예방할 수도 성평등 인식을 확산시킬 수도 없다는 게 것이다.

“아직 성평등은 요원한데 사람들은 ‘성인지’, ‘성평등’ 소리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요. 원인은 성평등 교육이 맥락적으로 이뤄지지 않아서입니다.”

“국어, 영어, 수학은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용과 난이도가 달라지는데, 왜 성인지 교육만 해가 바뀌어도 똑같은가요?” 나 원장은 어느 여고생의 이 지적을 임기 내내 거울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성평등은 요원한데도 사회 전체에는 성평등에 대한 피로함이 만연해 있습니다. 일부일지라도 강력하고 과격한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혐오와 반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초등 남학생의 여성혐오 발화는 섬뜩함 그 이상의 감정을 갖게 합니다. 이렇듯 단순하지 않은 맥락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어떤 내용의 성평등 교육을 진흥해야 하는가 하는 매우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합니다.”

나 원장은 취임사에서 이 같은 고민을 토로했다. 고심 끝에 꺼낸 해법은 ‘기본’이다. 성평등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그 프로그램을 실행할 우수한 강사를 양성하는 양평원의 정체성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계획이다.

그는 우선 표준적이되 교육 맥락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과제로 삼았다. 구체적으로 “연령별, 직군별, 상황별 다양한 사람들의 맥락을 고려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해 양평원이 ‘성인지 교육 프로그램 허브’로 자리매김하는데 집중하겠다”는 각오다.

“공무원 인식을 개선을 위해 공을 많이 들이고 있지만 공무원 성인지 교육을 의무화하더라도, 양평원이 만나는 공무원의 전체의 1% 정도로 미미해요. 그렇기 때문에 각 지자체와 기관이 양평원에 교육을 외주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일상적으로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양평원은 양성평등담당관 등 각 조직 담당자와 소통하며 이들에게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나 원장은 “오래 전부터 양평원 내부에서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먼저 양평원의 질적 성장을 위해 성과 중심의 양적 업무 평가 대신 기본에 충실할 수 있도록 업무 환경을 만들고 직원 만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바꿔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성인여성교육 석사 학위와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세대 젠더연구소 소장, 성평등센터 소장, 청년문화원 원장 등을 지냈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