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세상읽기]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
  • 승인 2018.10.03 10:51
  • 수정 2018-10-04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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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곪아 터진 구조 속에서

보아야 할 것은 무대에 홀로

서 있는 여성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억압적 구조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월의 첫날, 달리는 차 안에서 동생과 우연히 한 라디오를 들었다. 국군의 날에 으레 하는 기념식이 이전보다 축소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대규모 열병식이 사라지고 가수 싸이의 공연을 여는 것이 군인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며 논란이 되고 있단다. 한 사회자가 “싸이 씨도 온 국민이 좋아하지만.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뭐니뭐니해도 군 장병들은 여성 아이돌들을 좋아하지 않을까 싶은데요.”라고 사회자가 묻자 패널은 그렇다고 수긍하며 그래도 싸이는 군대를 두 번 다녀와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대답했다.

잠시 황당해하다가 동생에게 혹시 군부대 피트니스 위문공연 사건에 대해 아냐고 물어봤다. 한 군부대에서 위문공연을 열었는데 함께 진행된 피트니스 쇼 영상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된 적 있다. 나는 당시 라디오 방송의 패널로 출연해 그 사건은 군부대에서 여성을 성상품화한 것이라 지적했다. 나와 함께 출연한 다른 남성 패널은 피트니스 모델이 자원봉사로 무대에 선 것인데 이것을 성상품화했다고 하는 것은 모델의 의도를 폄훼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내가 그 무대 위에 있었으면 힘들었을 것 같아. 언니도 알겠지만, 공연자가 뭘 하겠어.”

“그렇지. 뛰쳐나올 수도 없고.”

동생은 여덟 살부터 무용을 한 20년 차 무용수다. 나는 이십대 초반, 4년 동안 연극배우로 밥 벌어먹고 살았다. 난 동생의 ‘내가 그녀라면’의 가정법에 묘한 위안을 얻었다. 일전에 몇 명의 주변 남성들과 군부대 피트니스 위문공연 사건에 수다를 떨었는데 이때의 대화들이 며칠 밤 동안 나를 괴롭히던 참이었다. 그들은 자기 때는 군인들이 짐승 같았는데 인간다워졌다거나, 군대가 원래 그렇다며 자신의 군대 경험담을 늘어놨다. 그리고 여성 모델이 동의한 것이 실수이거나, 동의해서 문제가 없다고 판결지었다.

연극의 3요소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배우, 관객, 무대. 보통 공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을 배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관객이 제일 중요하다. 무대나 배우가 없는 텅 빈 공간을 관객이 공연이라 인식한다면 그 자체로 공연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공연은 관객이 어떻게 인식하고 느끼냐에 달려있다.

당시 행사 기록 영상을 보면 사회자는 포즈를 마치고 나가려는 여성 모델을 불러세운다. 그리고 그녀의 나이를 묻는다. 그녀가 “스물한 살”이라고 답하자 행사를 관람하는 군인들이 열화 같은 함성을 지른다. 영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석이 아니라 무대만 찍는데, 거의 유일하게 관객이 등장하는 순간이 이때다. 스물 한살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몇몇은 벌떡 일어나고 몇몇은 주먹을 움켜쥐고 손을 번쩍 드는 것이 영상에 잡힌다.

 

전의경 대원들이 위문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전의경 대원들이 위문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모델이나 주최 측의 의도는 육체미를 보여 군인으로 하여금 신체 훈련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만드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보는 관객들이 피트니스 쇼를 통해 육체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성적 대상화 하는 상황이었다면, 공연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공연은 관객의 의도대로 마무리된다.

이 공연에는 무대도 있었다. 어떤 무대였나? 군대 위문공연 무대였다.

일본군은 제국주의 시절 여성을 가두고 군인의 성욕 해소를 위한 위안소를 운영했다. 90년대 미군은 미군기지와 함께 성매매 캠프를 세우는 것을 비공식적인 정책으로 삼았다. 군인의 성폭력은 당연한 보상처럼 여겨져 전쟁 시 군인의 성폭력은 1995년까지 전쟁범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2007년 MBC 기자의 잠입취재로 육해공 3군 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 영내에 유흥주점을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유흥주점 운영을 맡은 계룡대 근무지원단은 “장교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영내에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 복지 차원에서 유흥주점을 만들었다“고 해명했다. 지금도 군대에서는 헐벗은 여가수가 춤과 노래를 부르며 군인을 위문토록 한다. 군대 곳곳에는 여성을 군사주의 안정화의 도구로 써온 이야기가 서려 있다. 그래서 모델의 동의 여부는 해석의 시작은 될 수 있으나 이야기의 모든 것은 될 수 없다.

여성의 결정은 어느 때는 강조되었다가 어느 때는 흐려진다. 정기적으로 논란이 되는 성매매 문제에서도 성매매 찬성입장 측은 여성의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참여정부 시절 성매매 여성이 나서서 생존권을 주장하며 성매매 근절을 반대하는 집회를 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2014년 성매매 금지를 규정한 법률을 폐지했는데 이때 성매매 노조가 큰 영향을 끼쳤다. “내 몸의 주인은 나”라는 슬로건은 맥락이 삭제된 체 여성이 자신의 육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며 성매매가 문제없다는 근거로 쓰였다. 안희정 사건의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었는데도 행사하지 않았다며 안희정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헌재의 낙태죄 폐지 결정을 앞두고 법무부는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을 성교를 스스로 선택했지만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폄훼한다. 그러나 미투운동에서는 어떤가? 여성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성폭력을 고발할 때 그 결정은 의심받고 공격받는다.

일련의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여성의 동의 여부뿐만이 아니다. 예컨대 성매매 문제의 경우 여성이 결정했냐가 아니라 여성이 함께 즐거움을 즐기는 존재냐, 혹은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하위에 존재하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성매매는 폭력일 수밖에 없다. 여성의 자유로운 결정은 기본이고 궁극적으로 여성이 그를 둘러싼 타자들과 동등한 자율적 주체로 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아우구스트 보아우는 브라질 연극계의 거장이다. 그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이라는 독특한 민중 연극론을 구축했다. 그의 ‘토론 연극’에는 무대, 관객, 배우가 없다. 연극 주제는 대부분 묵직한 사회문제를 담는다. 토론 연극에서 공연은 두 번 진행된다. 통으로 한번 공연된 뒤 두 번째 공연에서는 관객이 개입할 수 있다. 관객은 무대 위로 직접 올라가 억압의 구조를 바꾸고 결말을 바꾼다. 그는 이 기법으로 고대 연극에서 관객이 공연에 참여하며 만들었던 공감과 동참의 문화를 이어나가고 사회를 바꾸고 싶어 했다.

인류 역사 동안 여성은 타인의 필요에 따라 규정돼 왔다. 이 곪아 터진 구조 속에서 보아야 할 것은 무대에 홀로 서 있는 여성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억압적 구조다. 관객들은 무대 위 그녀 옆에 함께 설 수 있을까. 우리는 억압의 무대를 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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