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력’을 남성의 전유물로 간주해온 신화 앞에서 ‘펜은 곧 페니스인가?’라는 질문을 거듭해야 했던 여성의 역사는 길다.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누가, 무엇을 예술이라고 규정하는가’라는 권력에 대한 물음으로 고쳐 써야 한다는 항변도 이미 존재한다. 이 코너에서는 ‘여성-창작-새로움’의 의미망을 확장·갱신하기 위해 도전하는 동시대 젊은 여성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과 여성신문이 공동 기획한 이 인터뷰는 문화연구자 오혜진과 만화평론가 조경숙이 함께 총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 여성신문 공동기획

[‘여성-창작’을 말하다] ④ 페미니스트 드랙 아티스트 ‘드랙킹 아장맨’

드랙킹 아장맨은 한여름에 날렵한 힐을 신고 큰 가방을 든 채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말주변이 없다고 걱정하면서도 카메라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유일한 인터뷰이였다. 분장 과정을 촬영하고 싶다는 우리의 요청에, 아장맨은 흔쾌히 가방을 열어 분장도구들을 꺼냈다. 그리고는 작은 거울에 얼굴 여기저기를 비추며 아주 오-랫 동안 천천히 분장을 했다. 반 시간 후. 시종일관 웃으며 나와 수다 떨던 인터뷰이는 사라지고, 시커먼 기운을 내뿜는 기괴하고 근엄한 표정의 사제 한 분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지난 7월 7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8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신부복을 입은 아장맨. 그는 “제 몸이 ‘불온한 것, 성적인 것’으로 인식돼지 않고 ‘기본형’으로 인지되는 순간, 자신감, 당당함, 해방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7월 7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8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신부복을 입은 아장맨. 그는 “제 몸이 ‘불온한 것, 성적인 것’으로 인식돼지 않고 ‘기본형’으로 인지되는 순간, 자신감, 당당함, 해방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들의 ‘킹’, 아장아장 아장맨

오혜진(이하 ‘오): 아장맨 님이 생각하시는 드랙 퍼포먼스의 철학이 궁금합니다.

아장맨(이하 ‘맨’): 보통 ‘생물학적’ 성별에 근거해 사회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퍼포먼스들이 있잖아요. ‘여자는 여자다운, 남자는 남자다운 행동을 해야 한다’라는 규범들. ‘드랙’은 그런 규범적 인식에 반대한다는 것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쇼’의 형태로 표현해요. 그 ‘쇼’가 꼭 물리적인 무대에서 펼쳐질 필요는 없습니다. SNS에 올리는 사진이나 영상을 통한 드랙 실천도 가능하죠. 중요한 것은 목적과 방법이에요. 코스프레나 이성복장 도착의 이유로 크로스드레싱을 하는 사람들, 일상적으로 남성복을 선호하는 레즈비언들을 ‘드랙’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성별규범에 저항한다는 정치적 목적, 그것을 ‘쇼’라는 인위적 장치를 통해 구현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오: 자신의 드랙 자아를 ‘킹’이나 ‘퀸’으로 확정하지 않는 퍼포머들도 있던데요. 그건 ‘킹/퀸’이라는 구분 자체가 성별이분법을 승인・강화한다는 생각 때문인가요? 혹은 자신의 성을 ‘남성/여성’으로 정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 반대의 성도 확정할 수 없어서인가요?

맨: 그런 구분을 크게 의식하지 않은 채 그냥 수염 난 퀸, 근육질의 몸을 한 퀸, 저처럼 ‘여성적인’ 몸을 숨기지 않는 킹, 여성 란제리를 입는 킹도 있어요. 이들 역시 ‘남성/여성’에게 주어진 사회적 의무들이 허구임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드랙의 철학에 충실한 문화실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아장맨’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맨: ‘아장’은 ‘아장아장’ 아기처럼 걷는 모양을 뜻하고, ‘–맨’은 슈퍼맨, 배트맨 등의 히어로물에서 따왔어요. 보통 드랙 퍼포머들은 ‘패밀리 네임’이 있어서 이름이 긴데, 저는 사람들이 쉽게 기억하도록 짧게 정했죠. 여성들의 ‘킹’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아트’가 된 주사(酒邪)

오: 드랙 퍼포먼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맨: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한국에 오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아서, 머리가 짧아서, 화장을 안 해서’ 비난을 받았죠.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제가 클럽에서 놀 때 윗옷을 벗는 등의 과시적 행동을 하더라고요. 그러던 중, 작년 10월에 ‘여성괴물’이라는 페미니스트 단체에서 드랙 퍼포머를 모은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제 여자친구가 말하길, ‘네가 클럽에서 자주 하는 행동을 무대 위에서 드랙 퍼포먼스의 형태로 하면 안전하다’라는 거예요. 그 전에 드랙 퍼포먼스를 해본 적은 없었지만, 그 말을 듣고는 ‘아 그건 내가 잘하는 거지!’ 싶었어요.

오: ‘여성괴물’의 페미니즘적 함의와 드랙의 철학이 만나는 게 흥미롭네요. 바바라 크리드의 책 <여성괴물>에서 분석하는 영화들은 생리, 출산 같은 피가 낭자한(!) 여성(성)의 표상을 극대화해서 그걸 남성의 공포의 대상이 되는 ‘기괴한 것’, ‘괴물적인 것’으로 묘사하잖아요. 드랙킹이 연기하는 여성(성) 역시 규범화된 여성(성)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기괴한’ 미학을 선사한다고 판단했을 것 같아요. 혹시 다른 계기도 있나요? 1990년대 한국 클럽문화에도 드랙킹이 있었고, 최근 다큐멘터리 <파리 이즈 버닝>, TV쇼 <루폴의 드랙 레이스> 같은 대중문화를 통해 드랙을 접한 분도 많은데요.

맨: 제가 영국에서 예술사를 전공했는데, 한 여성 교수님이 수염을 달고 남성 성기 모형을 착장한 자화상 시리즈를 보여주셨어요.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게 ‘드랙’이라는 걸 알게 됐죠. 2011년 런던 퀴어퍼레이드에서 드랙킹을 본 것도 강렬했어요. 그 전까지 저는 드로잉 퍼포먼스를 주로 해왔는데, 결국 ‘드로잉’ 대신 ‘드랙’을 하게 됐죠.

99%의 섹시함, 1%의 찝찝함

오: 드랙 퍼포먼스의 할 때의 ‘쾌감’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맨: 일상에서는 브래지어만 안 해도 비난을 받으니 여성들은 끊임없이 자기검열에 시달리잖아요. 그런데 드랙 퍼포먼스를 할 때는 제가 가슴을 노출해도, 그게 성적인 의미로 읽히지 않고, 그저 ‘벗은 몸’으로 간주돼요. 제 몸이 ‘불온한 것, 성적인 것’으로 인식돼지 않고 ‘기본형’으로 인지되는 순간, 저는 자신감, 당당함, 해방감을 느끼죠. 그리고 제가 드랙킹을 연기할 때 선택하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평소에 제가 무서워하는 남성상이에요. 마초적인 남자, 나이 든 남자…. 저는 그런 남자들이 등장하는 노래를 골라 그 남자를 연기하면서 저의 공포를 극복해요. 심호흡하듯.

오: 아장맨 님은 서구 백인 남성, 대단한 부자, 광인 등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남자보다는 예외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캐릭터를 선호하시는 듯해요.

맨: 광기어린 남자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예술가의 광기나 천재성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잖아요. 여성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하고 ‘미친 여자’라는 비난을 받기 쉽지만, 남성은 성격적 결함이 있어도 그게 다 ‘재능’이라는 식이죠. 이처럼 여성이 ‘가질 수 없다’고 생각돼온 가치들을 배타적으로 점유해온 남성상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관객이 무대 위의 저를 섹시하다고 느꼈으면 좋겠지만, 공연이 끝나면 그분들이 본 것에 대해 약간 찝찝하다는 느낌도 갖게 하고 싶었어요.

오: 제가 정확히 그렇게 본 것 같네요. 아장맨 님의 쇼를 보면 화려한 연기와 스펙터클에 빠져 환호를 보내다가도,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뭐에 박수를 친 거지?’ 하는 당혹감이 생기더라고요. 저의 환호는 이런 ‘뒤틀린’ 남성성을 연기하는 아장맨 님의 퍼포먼스에 보낸 것이기도 하지만, 여성을 억압해온 여성혐오적 관행과 가부장적 규범들을 우리의 쾌락을 위한 ‘볼거리’로 만들었다는 데서 오는 쾌감 같기도 했어요.

맨: 저의 거만하고 자기애가 충만한 남성 연기를 본 관객은 환호해요. 반면 평소의 저는 아주 조신하죠. 그 ‘갭’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오: 아장맨 님의 퍼포먼스에 대해 ‘예술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는 분들이 많아요.

맨: ‘쇼’니까, 일상에서 보기 힘든 걸 시각적으로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무대를 ‘예술적’이라고 보신 건 제가 연극적인 요소를 많이 차용했기 때문일 거예요. 제가 체구가 작으니 몸을 노출해도 근육이 없어서 처음엔 좀 망설였어요. 그때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연극적인 소품을 썼죠. 이제는 쇼의 재미를 위해 연극적인 소품을 써요. 제 몸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거든요. ‘이런’ 드랙킹도 있는 거니까.

오: 드랙 퍼포먼스를 하시면서 생긴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를 듣고 싶습니다.

맨: 제가 무대에서 벌레스크(여성적 매력을 강조한 춤이 포함된 쇼)를 했을 때 동료 남성 드랙 퍼포머가 제게 섹시하다고 말해주니 기분이 묘하게 좋았어요. 드랙을 하지 않은 상태의 제게 그분은 성애적 대상이 전혀 아닌데, 드랙으로서 그런 말을 들으니 제가 ‘남자 중에 남자가 된 느낌’을 받았어요.

 

지난 7월 7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8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신부복을 입은 아장맨. 그는 “제 몸이 ‘불온한 것, 성적인 것’으로 인식돼지 않고 ‘기본형’으로 인지되는 순간, 자신감, 당당함, 해방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7월 7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8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신부복을 입은 아장맨. 그는 “제 몸이 ‘불온한 것, 성적인 것’으로 인식돼지 않고 ‘기본형’으로 인지되는 순간, 자신감, 당당함, 해방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킹’의 유두 노출을 허하라

오: 드랙킹이 드랙퀸보다 드문 이유는 뭘까요?

맨: 드랙킹들에게 더 많은 제약이 있어요. 이를테면 ‘유두 노출 안 된다’는 조건. 시스젠더 남성 퍼포머들은 유두를 노출해도 괜찮죠. 그들이 연기하는 건 ‘퀸’인데도요. 드랙킹에 대한 선입견도 여기서 발생해요. 많은 분들이 ‘드랙킹이 남성복을 선호하는 부치와 다를 게 뭐냐’라고 의아해 하거나, ‘드랙퀸은 여성을 연기하니까 의상이나 화장을 통해 화려한 시각효과를 연출할 수 있는데, 드랙킹은 남자를 따라하는 거니까 기껏해야 수염 붙이는 게 다일 뿐 쇼로서의 매력이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성 퍼포머들에게 안전한 무대가 많아지면, 통념을 깨는 다양한 드랙킹들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오: 현장에서 퍼포머와 관객들이 지켜야 하는 룰이 있다면요?

맨: 그 룰이 뚜렷하지 않아서 문제였어요. 퍼포머들이 성희롱을 당하고, 협의 없이 퍼포머를 촬영한 사진을 SNS에 올려서 수많은 악플들이 달린 사례도 있죠. 현장에서 팁을 주는 관객에게 퍼포머가 관객의 손을 잡아주는 문화도 있는데요. 그때 관객이 손잡는 걸 넘어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퍼포머가 관객을 지나치게 만지는 일도 생겨요.

오: 그래서 드랙킹들의 새로운 무대를 기획하고 계신 거군요.

맨: 여성 퍼포머들이 무대에서 안전해야 퍼포먼스의 질도 높아져요. 10월 9일 오후 7시 클럽 명월관에서 페미니스트 관객과 퍼포머들이 만드는 ‘제1회 드랙킹 콘테스트 ALL HAIL’이 열립니다. 페미니스트라면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어요.

오: 아장맨 님의 퍼포먼스는 아티스트로서의 ‘예술적 실천’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운동’이기도 할 텐데, 가장 강력한 동기는 뭔가요?

맨: 저는 무대에서, ‘여성인 저의 현실’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것들에 도전해요. 가슴 노출, 폭력적이지만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 언행들. 무대에서는 ‘남성’이기 때문에 그 행위를 한다기보다는 거꾸로 ‘왜 남성일 때는 이 모든 게 다 되는 거냐?’라고 질문하고 싶어요. 이게 제 나름의 페미니스트 의식이자 운동입니다. 판단은 보는 이들의 몫이겠지만요.

 

‘드랙쇼를 하는 마음’에 대해 물어보려 했다. 화려한 분장과 의상, 시끌벅적한 음악과 쇼의 인상 탓에 그 마음은 축제의 희열로 충만할 거라고 짐작했다. 성별규범에 저항하는 급진적이고 강력한 정치적 의지의 언어들이 난무하리라고도 예상했다. 다만, “드랙킹 연기를 통해 현실에서 만나는 남성에 대한 공포를 조금씩 극복한다. 심호흡하듯”이라고 말할 줄은 몰랐다. ‘심호흡하는 마음’일 줄이야. 10월 9일 드랙킹 콘테스트에 가서 봐야 할 게 늘었다.

* 드랙킹 아장맨 드랙킹 퍼포머. 정은영의 <유예극장>(2018), 오현경의 단편영화 <드랙킹 아장맨>(2018)에 출연했다. 제1회 드랙킹 콘테스트 ‘ALL HAIL’을 기획 중이다.

►[‘여성-창작’을 말하다] ① 웹툰 <먹는 존재>, <족하>, <홍녀>의 작가 ‘들개이빨’

www.womennews.co.kr/news/144017

►[‘여성-창작’을 말하다] ② 소설집 『쇼코의 미소『내게 무해한 사람』의 작가 최은영www.womennews.co.kr/news/144347

►[‘여성-창작’을 말하다] ③ 영화 <소공녀>,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영화감독 전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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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진 문화연구자.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 『그런 남자는 없다』(공저),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 등의 책과 평론을 썼다.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했고,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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