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노인인권종합보고서’

노인 26% “죽고 싶다는 생각”

‘고독사’ 우려 노인도 23.6%

노인 절반 생계유지 어렵지만

28.9% 가족·지인 도움 못받아

 

통계청 ‘2018 고령자 통계’ ⓒ통계청
통계청 ‘2018 고령자 통계’ ⓒ통계청

나이 먹긴 쉬워도 노인으로 살기엔 버거운 세상, 2018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고 있지만, 노인 4명 중 1명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생계 유지조차 힘든 팍팍한 노후와 ‘경로’는 사라지고 ‘혐로(노인을 혐오함)’가 확산되는 사회 분위기는 노인들을 더 옥죄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18~65세 청·장년층 500명과 65세 이상 노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노인인권종합보고서’를 1일 공개했다. 인권위 차원의 노인인권종합보고서 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 결과, 노인 응답자의 26%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독사’를 걱정하는 노인도 23.6%나 됐다. 실제 한국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2016년 기준 60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53.3명으로 전체 자살율 25.6명보다 두 배나 높다. 자살율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올라간다. 70대 남성 노인 자살률은 90.3명, 80대는 150.5명으로 급증한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다.

이처럼 암울한 상황이 초래된 것은 노인들의 불안한 경제사정과 무관치 않다. 조사 결과, 노인층의 절반 가까운 48.8%가 ‘여생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답했다. 남성(55.8%)보다는 여성 노인(47.9%)이 미래의 경제 여건을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생계유지의 어려움에도 가족이나 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노인이 28.9%나 됐다. 가국가로부터의 생계 지원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노인도 24.1%에 달했다. 부모 부양과 자녀 양육으로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노인이 상당수다. 노인 35.5%는 ‘노후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노후 생활에 필요한 만큼 공적연금을 받지 못한 노인이 30.7%였다. 특히 여성 노인(27.1%)이 남성 노인(44.7%)에 비해 공적연금 가입률이 낮았다.

노후 생활 기반이 열악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노인들도 그만큼 많은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의 ‘2018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70~74세 고용률은 33.1%로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OECD 평균은 15.2%다. 2위인 멕시코(28.3%)보다 4.8%포인트 높고, 미국(18.9%), 영국(11.0%), 독일(7.1%)과는 그 격차가 더 벌어진다.

2016년 중위소득 50%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43.7%로 전년(43.4%)보다 0.3%포인트 높았다. 상대적 빈곤율은 소득수준이 빈곤선(균등화 중위소득의 50%에 해당하는 소득) 미만인 인구의 비율이며 상대적 빈곤율이 높으면 가난한 계층의 인구가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상대적 빈곤율을 EU 28개국과 비교한 결과에서도 상대적 빈곤율이 가장 높은 라트비아(22.9%) 보다도 한국이 더 높았다.

노인들을 괴롭히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 뿐만 아니다. 세대 갈등도 심각한 수준이다. 노인 40.4%, 청장년층의 90%는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노인과 청․장년 사이에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51.5%로 나타났다. 노인의 ‘44.3%’, 청·장년층의 80.4%가 ‘노인과 청·장년 간 갈등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 할매미(시끄럽다고 할머니를 매미에 비유해 비하하는 말) 같은 노인 세대를 비하하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이는 것도 세대 갈등과 불통의 단면을 보여준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노인이 완전한 권리 주체로 인식되고, 존엄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 위원장은 이어 “노인이 되는 것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삶의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낮은 출산율, 청장년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과 세대 간 소통의 문제가 맞물려, 노인세대가 미래세대의 부담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함께 노인혐오라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