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화앤담픽쳐스 주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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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종영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 화앤담픽쳐스 제작, 이응복 연출, 김은숙 극본) . 400억이라는 제작비와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한 전 세계 방영, 심혈을 기울인 화면,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긴 캐릭터와 그 캐릭터의 얼굴이 되어준 배우들의 촘촘한 연기. 거기다가 높은 시청률까지. <미스터 션샤인>이 이루어낸 성과는 한 둘이 아니다. 그 중 가장 오랜 여운을 남기는 것은 만주 벌판에 휘날리는 태극기 아래 선 고애신(김태리 분)과 다섯 주요 등장인물 중 가장 먼저 쓰러져간 쿠도 히나(김민정 분)다.

 

(c)화앤담픽쳐스 김태리
(c)화앤담픽쳐스 김태리

 

(c)화앤담픽쳐스 김민정
(c)화앤담픽쳐스 김민정

첫번째 여자주인공 고애신은 조선최고 사대부집안의 ‘애기씨’다. 조선땅에서 감히 그녀를 노상에 세워두거나 알아보지 못할 수 없다. 공식적으로 이 애기씨는 양반가 규수의 덕목을 잘 체화하여 ‘그림 같은 것 밖에 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으며, 세상 물정 모른다.’ 하지만 양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면 지붕을 뛰어넘는 최고의 명사수 의병이 된다. 다른 이는 글로리 호텔 사장 쿠도 히나. 부친의 매국 희생물로 일본으로 팔려가듯 결혼 해 엄마도 이름도 잃었다. 젊은 미망인이 되어 호텔 글로리 사장으로 조선에 돌아온 그는 가차없이 상대의 급소를 명중시키는 펜싱 실력을 가졌다. 고애신의 부모는 쿠도 히나의 부친이 죽였으니, 두 여성은 악연이다. 부모대의 악연으로 한 편이 될 수는 없다 했으나, 목표가 같으니 결국은 편이 되고야 만다. 그렇게 둘은 같은 뜻을 품고 각자의 길 위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싸운다. 그리고 그 길에서 자신의 주체적 욕망까지 양보하지 않는다. 악연인 두 여성은 동지가 되어 서로를 돕는다.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이 그린 만화의 한 여성 캐릭터는 3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영화만 본다고 한다. 그 조건이란 1. 이름을 가진 두 명 이상의 여성이 등장하고 2. 그 두 명이 서로 대화를 하며 3. 그들이 하는 대화의 주제는 남성에 대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벡델 테스트라 한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다하여 곧 페미니즘 영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양성평등 지수를 나타내는 출발선은 될 수 있다. 벡델테스트를 통과한 한국영화를 쉽게 찾지 못하는 요즘에 <미스터 션샤인>은 더욱 의미있다. 60분이 넘는 드라마, 24회 내내 이 두 여성은 여백이 아니었다. 유진 초이(이병헌 분)나 구동매(유연석 분), 김희성(변요한 분)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남성을 통해 존재하지 않고, 남자 주인공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소품이 되지도 않는다. 고애신과  쿠도 히나는 스스로 복종하지 않고, 울기보다는 물기를 택한다. 그렇게 조선이 망하는 날을 하루하루 미룬다.

 

2014년 영국의 영화감독 홀리 타퀴니가 총괄 디렉팅을 맡은 배스 영화제(Bath Film Festival)에서는 F등급(F-rated)이 소개된다. 여성 감독이 연출했거나, 여성 작가가 각본을 썼거나, 여성 캐릭터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영화가 그것으로 세가지 조건 모두를 만족시킬 경우 트리플 F등급이 된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한국영화 중 여성이 남성과 같은 크기로 포스터에 등장하는 영화는 단 두 편, <협상>과 <너의 결혼식> 뿐이다. <안시성>, <명당>, <원더풀 고스트>, <물괴>, <신과함께-인과 연> 여성이 없거나 배경처럼 등장한다. 남성들이 각본을 쓰고, 제작비를 대고, 연출을 하는 영화가 대부분이니 그럴 밖에 없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의를 위해 뭉치는 여성을 그려낸 <미스터 션샤인>의 성과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아무개’들이 의병이 되어 역사를 만들었다. 임 역관(조우진 분)이 전사한 의병들의 이름을 고종(이승준 분) 앞에서 부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그렇게 의병들의 이름을 찾아주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었지만 다시 일어서 어린 의병을 훈련시키는 고애신이 거대한 태극기 아래 우뚝 서 있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우리의 역사가 자랑스러워진다. 자랑스러움의 원동력이 한국여성에게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해는 <미스터 션샤인>은 여성에게도 역사의 기여자라는 가치있는 이름을 찾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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