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돈 값이 우리 경제를 움직이는 이유?

몇 해 전에 도쿄 모터쇼를 취재하러 일본에 들를 일이 있었다. 일본 방문 첫날 요코하마 친지 집을 찾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밤이 너무 늦어 버렸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악명 높은 일본의 택시를 타고 도쿄 숙소까지 가야 했다. 이 때 나온 택시비가 4만엔. 당시 우리 돈으로 무려 50만원이 넘었다.

3박4일 여비를 하룻밤 택시비로 다 써버리고 만 그 날 밤. 일본에서는 우리 돈의 0 하나쯤을 떼고 돈의 가치를 생각하라던 동료들의 충고가 떠올랐다. 택시에서 가슴 졸이면서는, 부자 나라 일본의 가난한 국민들 생각도 떠나지 않았다. 일본 길거리에서 꽃을 팔거나 술집에서 웃음을 팔던 우리나라 여성들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모두 일본 엔화의 통화 가치가 워낙 높은 탓이었다.

원래 환율이라는 것은 두 나라 통화의 구매력 차이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요코하마에서 도쿄까지 심야 할증 요금이 4만엔이고, 우리나라에서 그 비슷한 거리를 택시로 가는데 50만원이 든다고 치자. 그렇다면 엔화 대비 원화의 환율은 1250원(1백엔 대비)이다. 그러나 오늘날 환율은 보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결정된다. 두 나라의 경제 상황과 이를 바라보는 외환 시장의 심리와 기대 등이 해당국 통화의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미친다. 엔화 대비 원화의 환율 역시 단순히 구매력 격차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의 경우 요코하마에서 도쿄에 해당하는 거리를 달려도 결코 50만원의 택시비가 나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80년대 이후 우리 경제와 주가의 흐름과 가장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이 바로 이 엔화의 가치다. 세 가지를 그래프로 옮기면,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원화에 비해 엔화의 가치가 높을 때는 우리 경제나 주가도 좋았고, 엔화의 가치가 낮았을 때는 나빴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경제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수출은 일본 제품과의 비교 우위에 달려 있어서다. 대체적으로 그 동안 우리 경제는 오랫동안 높은 엔화 통화 가치 덕을 봐 왔다. 엔화의 통화 가치가 달러화에 대비해 높다는 얘기는, 국제 시장에서 달러로 환산한 일본 제품의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뜻한다. 40% 가량의 우리 수출상품들이 국제 시장에서 일본 제품들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엔화에 비해 원화의 통화 가치가 낮으면 우리 수출 상품들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상황이 역전됐다. 달러화에 대비해 엔화의 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원화의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 엔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이유는, 물론 일본 경제가 나빠서다. 소비가 침체돼 있는 일본 경제는 수출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일본 정부가 엔화 약세를 조장 혹은 묵인해야 한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소비가 느는 효과도 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수입 제품의 가격이 뛰어 물가가 뛰게 된다. 금리는 사실상 0인 상태에서 물가가 뛰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고 소비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재 1달러에 125엔 가량 하는 엔화는 조만간 130엔대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적인 강세를 보이는 원화는 조만간 1백엔에 9백원 정도까지 떨어지게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연말 우리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가전제품에서 자동차, 선박에 이르기까지 메이드 인 저팬과 경쟁하는 우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의 지도자와 국민들이 강한 나라=강한 통화라는 편견에 사로 잡혀 있다. 일본에서 턱없이 비싼 택시를 탔던 나도 한때 그랬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강한 통화 때문에 걱정한다는 사실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따름이다.

<김방희/경제칼럼니스트MBC<손에 잡히는 경제>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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