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상 ⓒ뉴시스·여성신문
추석 차례상 ⓒ뉴시스·여성신문

한가위가 매년 돌아옵니다. 이번 한가위에도, 변함없는 풍경이 보일 것 같습니다. 집안의 제사가 있지요. 조상의 넋을 기리고 은혜를 다시금 새기는 일종의 가내 종교의식입니다. 제사장은, 남자입니다. 남성인 제사장이 복색을 갖춰 입고 술과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며 예를 갖춥니다. 집안의 여성들은 정성들여 음식을 만들어 올립니다. 여성은, 제사장이 되지 못하는 종교의식이 바로 제사이고 차례입니다. 그 모습이 가정에서부터 견고하게 유지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성은 그 집안의 성씨를 같이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성씨를 씁니다. 자신의 아버지의 성씨를 쓰지요, 그런데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의 제사의 제사장도 되지 못하고, 자신이 자식을 낳아준 집안의 제사장도 되지 못합니다. 그저 음식만 만들어 올릴 뿐이지요.

그런데 이런 풍경들이, 그닥 낯설지가 않고 익숙합니다. 아낙들이 만세운동을 하고, 여학교 학생들이 시위를 하다 붙잡혀가고 하는 구한말 독립운동이, 임시정부를 만들어냈습니다. 임시정부에, 여성이 단 1인. 먼 과거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이 분연히 항거해 국정농단을 밝혀낼 시초가 마련되고, 촛불시위까지 번져나갔습니다. 그 이후 많은 여성들이 촛불시위에 참여했습니다. 그런 뒤 새 정부의 여성인사 비율은 30퍼센트입니다. 아마도, 여성들이 촛불을 30퍼센트 들었던 모양입니다. 상은 같이 차리되, 멀찍이서 구경을 해야 하는 불문율이 있는가봅니다.그런데 이보다도 더 여성의 자리가 제한되는 대표적인 제사의 공간, “종교”가 있습니다. 개신교의 경우, 여성목사를 인정하고 여성장로도 인정하는 분위기로 전환이 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엎드려 조아리고 돈내는 사람은 여성이고, 장로,목사,등의 지위에는 남성이 우세한 숫자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와중에, 잊을만하면 터지는 목회자 성추문에도 불구하고 여성목회자 비율을 끌어올려 균형이 깨진 성평등 의식을 바로잡자는 얘기는 아직 안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톨릭의 여성사제 배제는, 이미 교황께서 천명하신 터라 더 말할 것도 없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여성에게 사제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으신 겁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새로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그간, 조계종에서는 은처 문제, 술과 도박 문제, 성매매, 재산착복의 문제가 계속 드러나고 있었고, 아직 대중들이 조계종을 향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이 상황에서, 여전히 계속되는 것은, “비구니가 배제된” 총무원장 선거입니다. 혹시, 비구니가 비구보다 일을 적게 하거나, 본사에 내는 분담금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일까요, 의무가 적어서 권리가 적게 따라오는 것입니까? 여성사제, 비구니가 포함되면 혹시, 조계종의 성추문이나 재산착복문제가 더 커질 위험성이 있기라도 한 것입니까.조계종은, 정말로 부처님의 손바닥 위에 사부대중이 평등한 것인지, 이제는 화답할 때가 되었습니다. 온갖 사찰에 보살들이 주로 모여 부처를 따르는 이 시절에, 비구니의 자질이 못미덥고 부족하십니까. 비구니는 여전히 본사 주지가 될 수가 없고, 총무원장이 되지 못하는 것인지, 어째서 그런것인지 인간 입장이 아니라 부처 입장에서 설명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어째서 대중들이 서로 갈등하고 혐오하는 이 극단적인 상황을, 나라의 어른 역할을 하는 분들께서 모범을 보여 해소하지 못하시고 불평등을 더 극명하게 드러내는 자태를 유지하시는지, 어째서 여성은 상만 차리고 온갖 상차림뒤의 주인은 되지 못하는지 여쭤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이며, 이것이 하느님 혹은, 하나님의 뜻이고, 부처의 평등입니까.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