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올해 마흔일곱의 김정순씨. 내년 2월 양원주부학교 중등반 졸업을 앞두고 있다. 더불어 4월에는 고입 검정고시 시험을 앞두고 있다. 이미 지난 8월 8과목 중 6과목을 통과했고 아들을 특별 과외교사로 초빙해 요즘 영어와 수학 정복하기에 나섰다. 두 과목만 통과하면 고교입학 자격을 얻게 된다.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어설픈 생각에서 시작했다면 반도 못 이뤘을 것이다”라는 김씨가 해보자는 굳은 각오를 다지게 된 이유는 “증이 필요해서”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20년 넘게 해온 동양자수며, KBS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판소리 실력도 남다르지만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그의 학력은 한국사회에서 전문가라는 인정을 받기가 힘들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김씨는 요즘 새롭게 맞은 제2의 인생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놓고 무척 망설이던 그가 인터뷰 자리에서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그동안 마음 속에 쌓여있던 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4-2.jpg

“나는 희망을 좋아합니다. 희망이 있었으니까 이 일을 시작했지요.”

양원주부학교 졸업생들의 얘기가 매스컴을 많이 탔지만 눈물샘을 자극하는 동정어린 기사에 그친 때문인지 그는 지나간 얘기보다 희망을 얘기하고 싶어했다.

대학교 1학년인 큰아들과 올해 수능시험을 본 작은아들, 공직에 있는 남편은 그에게는 든든한 후원자이다.

3년 전 김씨가 판소리 공부를 다시 시작할 때였다. 가족들을 모아놓고 공부의 뜻을 밝히자 놀란 아들이 한번 해보라고 했다. 아들 앞에서 판소리 한 대목을 불러주자 하는 말 “엄마는 참 바보다. 왜 여태까지 시작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고.

“그 때가 큰아들이 고3으로 올라갈 때였죠. 남들은 하던 일도 접고 수험생 뒷바라지 할 때 저는 공부를 시작한다고 했는데도 불만 한 번 없이 공부해 대학에 합격했지요.”

작년에 국악경연대회에 나간다고 하자 남편은 휴가를 내고 대회가 열리는 목포까지 동행해 주었다. 대상을 수상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두 아들이 동시에 “엄마는 대단한 아줌마야”라고 외치며 좋아했단다. 남편 역시 “공직생활을 오래 한 나도 여태 상 한번 못 탔는데 판소리 공부한 지 2년 만에 대상을 탔으니 이건 가문의 영광”이라며 기뻐했다.

3일만 지나면 까먹는 통에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해도 10번이면 10번 얼굴색 한번 안 변하고 “엄마 슬퍼하지 마세요. 여기 준비된 아들이 뒤에서 든든히 받치고 있잖아요”라며 엄마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는 아들 자랑이 끝이 없다.

“아마 학교에 계속 다녔다면 지금쯤 화가가 돼 있을 거예요. 어려서 그림을 곧잘 그렸거든요. 크레파스 하나 갖고 언니랑 돌려쓰느라 미술시간이면 아래위층을 오르내려야 했지만 내 그림은 언제나 뒷 칠판에 붙여졌으니까요.”

교복을 입혀주지 못하는 걸 미안해 하던 김씨의 어머니가 그나마 보낸 곳이 판소리를 잘 하는 동네 언니가 있는 국악학원이었다. 어려서부터 목청도 크고 노래를 잘 하던 재능만은 키워주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신동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재능을 인정받던 그가 명창의 꿈을 덮은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였다. 친구들이 다니는 한 고등학교에 민속놀이 공연의 선소리를 맡아 연습을 하러 갔다가 “쟤는 기생”이라는 소리를 듣고 27년 동안 소리를 접었다.

그가 다시 판소리에 눈을 돌린 이유는 노인봉사를 위해서였다. 건강이 안좋아 동양자수도 그만두고 초등학교 6학년 된 아들 손을 잡고 양로원과 노인정을 방문해 안마도 해드리고 말벗도 돼 드리면서 떠올린 것이 노인들에게 판소리를 들려주면 더 기뻐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가야금과 판소리를 다시 시작했다. “소리 계속 했으면 아마 국악계가 뒤집어졌을 것이다”라는 스승의 말이 그에겐 항상 힘이 되어주곤 한다. 완창을 하려면 5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춘향가를 2년 째 배우고 있는 그는 쑥대머리를 즐겨부른다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앞으로 한 10년 잡았어요. 판소리 공부도 한 10년 잡았지요. 급할 것 없잖아요. 그리곤 대학 강단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맥을 이을 후학 양성에 힘써야지요.”

그래서 김씨는 임오년이 더욱더 기다려진다.

박정희경 기자chkyung@womennews.co.kr

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