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조직생활·여성운동 경험 갖춘

‘여성주의 관료’로 성평등정책 총괄

#미투 지원·디지털 성폭력 근절 앞장

집회 현장서 여성들 목소리 경청도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재인 정부 1기 성평등정책을 총괄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약 1년2개월 간의 임기를 끝으로 곧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다. 문재인 정부가 내각 30%를 여성으로 채우며 ‘페모크라트(femocrat·여성주의 관료) 실험’에 나선 가운데 정 장관은 임기 동안 전문성과 여성운동 경험을 갖춘 페모크라트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장관은 성균관대 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역사학자이자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와 한국여성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여성운동계 ‘대모’다. 참여연대 공동대표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을 지내는 등 시민사회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지난해 6월 문재인 정부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그가 지명되자 “성평등사회로의 발전을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와 함께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장관 내정 직후부터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 했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의 왜곡된 여성관이 담긴 출판물 논란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장관이 되면 적극적으로 제 의견을 전달하고 탁 행정관의 사직 결단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성인권 주무부처 수장으로서 취할 수 있는 당연한 입장이었으나, 일부 반대 여론에 부딪쳐야 했다. 정 장관은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했으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인사권이 존중돼야 하는 문제”라고 밝히며 탁 행정관을 경질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인사권에 개입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권한 내지 합당한 역할인 양 호도하면서, 근본적으로 사안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망동을 수 차례 거듭하고 있다”는 이유로 정 장관을 해임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정 장관은 임기 내내 #미투 운동 지원과 디지털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 마련에 집중했다.

먼저 #미투가 제기하고 있는 성폭력에 직장 내 성폭력 문제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직장 내 성희롱 실태 파악 및 상황진단을 위한 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2월 성희롱 대응 매뉴얼 상시 게시 등 내용을 담은 ‘성희롱・성폭력 예방지침 표준안’을 개정하고, 3월에는 ‘공공부문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이어 4월에는 국가기관, 공공기관에 대한 특별점검을 벌이고 6월에는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 사건대응을 위한 가이드라인 만들어 배포했다. 실태조사와 가이드라인 배포를 통해 더 이상 직장에서 미투를 외치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체계적으로 마련했다.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의 수장으로서 미투 운동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 장관은 “미투 운동을 멈추지 말아야 또 다른 피해를 막고 사회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 “강간 범주를 넓게 규정해 범죄로 봐야 한다”는 소신을 밝혀왔다. 여가부는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무죄 판결이 나온 직후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여가부는 “향후 진행될 재판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여가부는 피해자의 용기와 결단을 끝까지 지지할 것”이라며 “관련 단체를 통해 소송 등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정 장관 역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무죄 판결 이후)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미투 운동이 폄훼되지 않고 계속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을 하는 것이 여성가족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8월 2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단역배우 자매’ 빈소에서 조문 후 어머니를 안고 위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8월 2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단역배우 자매’ 빈소에서 조문 후 어머니를 안고 위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 장관은 지난 4월부터는 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마련해 피해 상담부터 불법촬영물 삭제, 소송 지원까지 피해자를 돕고 있다. 지난 8월까지 100여일 동안 1040명의 피해자가 센터에서 지원을 받았다. 하반기부터는 불법촬영물 삭제 지원에 소요된 비용을 가해자에게 청구하는 구상권도 추진될 예정이다. #미투를 외친 최영미 시인과 성폭력 2차 피해로 세상을 떠난 ‘단역배우 자매’의 어머니도 여가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지원 받고 있다. 정 장관은 세상을 떠난지 9년 만에 열린 ‘단역배우 자매’의 장례식에서 “이렇게 밖에 못해드려서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또 “두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더 이상 성폭력과 2차 피해로 인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성가족부가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역사학자이자 여가부 수장으로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에도 적극 나섰다. 정 장관은 “서울 시내에 ‘위안부 박물관’ 짓겠다”고 약속했고, 여성인권 연구할 일본군‘위안부’ 문제연구소 출범에도 힘을 보탰다.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민간단체 지원도 늘렸다. 여가부 예산을 올해보다 37.4% 늘어난 1조500억원 규모로 편성하는 성과도 냈다.

정 장관은 무엇보다 여성들의 목소리에 ‘몸을 기울여서 듣는’ 사람이었다. 취임 후 첫 현장 일정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 10명이 함께 생활하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피해 할머니들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에는 해고된 홍익대 청소노동자들 농성장도 찾아 여성노동자들의 고충을 듣고 총장에게 저소득 노동계층의 노동을 존중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 장관은 불법촬영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이른바 ‘혜화역 시위’에 대해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법촬영을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여성들의 극심한 불안과 두려움, 분노를 해소시켜 드리고 있지 못하는 데 대해 여성폭력 근절의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대단히 송구스럽다”며 “혜화역 시위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와 문화에 억눌려온 여성들의 분노가 ‘홍대 불법촬영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대책만 강구하기보다는 현장에 직접 나가 여성들의 요구를 경청했다. 지난 7월에는 3차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에 참석해 “여성인권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참으로 송구스럽고 마음이 무거웠다”며 “혜화역에서 외친 생생한 목소리를 잊지 않고, 불법촬영 및 유포 등의 두려움 없이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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