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여성, 이미지 생산자’ 포럼이 열렸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제공
지난 8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여성, 이미지 생산자’ 포럼이 열렸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제공

모델에 충분한 동의·설명 없이

노출·포즈 요구하는 촬영문화

예술 아닌 성폭력이나

약자인 모델이 거부 어려워

‘예쁜 사진’ ‘개인작업’ 아니라

‘노동’ 인식해야

최소한의 안전망인

표준계약서 보편화 절실

“모델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찍으면 된다’고 통보하고는, 사진촬영 현장에서 갑자기 상의 탈의나 이상한 포즈를 요구해요. 이런 성폭력이 ‘예술’의 이름으로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업계 내 표준계약서 등 안전망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모델 개인이 혼자 짊어질 문제가 돼 버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아무리 부당한 지시여도 스탭 수십 명이 기다리는 현장에서 ‘안 한다’고 말하기가 어렵거든요. ‘왜 그때 뛰쳐나오지 않았느냐’고 손가락질받기도 하고요.” 

프리랜서 모델 김보라 씨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지난 8일 연 ‘여성, 이미지 생산자’ 포럼에서 그간 자신이 겪은 사진계 내 여성 모델 인권 침해와 착취 행위를 고발했다. 여성 사진작가, 모델, 변호사 등이 모여 ‘한일 사진계 여성들의 연대, 여성의 주체성과 이미지’를 논하는 자리였다.

 

(왼쪽부터) 프리랜서 모델 김보라 씨, 사진작가 김소마 씨와 송보경 씨가 지난 8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연 ‘여성, 이미지 생산자’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제공
(왼쪽부터) 프리랜서 모델 김보라 씨, 사진작가 김소마 씨와 송보경 씨가 지난 8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연 ‘여성, 이미지 생산자’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제공

이날 주요 화제는 ‘모델 노동환경 개선 방안’이었다. 참석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모델들은 촬영 기획서 등을 미리 받지 못한 채 촬영에 임하는 일이 많다. 노출 수위를 미리 논의하는 일은 드물고, 계약서나 동의서 작성은 더더욱 드물다. 모델료 한 푼 못 받고 일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아마추어 모델들은 이 모든 권리 침해를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 

송보경 사진작가도 동의했다. “모델이 유명 작가 촬영 요구나 제안을 거부하기란 어렵습니다. 작가의 권위나 영향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는데도 ‘주체적으로 수용했다’고 오해해요. 게다가 현장에서 다들 모델을 쳐다보며 ‘왜 시키는 대로 안하고 저러고 있지’ 하는 상황에서 모델이 쉽게 거부할 수 있을까요. ‘저 모델은 원래 문란하다’ 식의 2차 가해도 빈번하죠. 예술이니 돈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작업의 성과를 모델과 나누지 않고 독차지하는 작가도 많아요. 모델의 기여도가 커도 ‘예쁜 사람이네’ 정도로만 생각하죠.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고정관념도 작용합니다.”

문화예술계 곳곳에서 비슷한 문제 제기가 쏟아지면서, ‘안전장치’로 주목받는 게 표준계약서다. 한국모델협회에서 2014년 표준계약서 양식을 마련해 온라인상 공개하고 있긴 하나, 이러한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는 지적도 나왔다.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는 문화가 자리잡으려면 “사진 촬영이 노동이라는 공동 인식”부터 자리잡아야 한다. 김소마 사진작가는 “아직도 모델 스스로도 모델의 일은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잡지 촬영, 개인 작업을 위한 촬영 등의 경우에는 모델이 촬영료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고, ‘잘 나온 사진’을 얻기 위한 촬영이라고 여긴다”라고 말했다.

 

더보기▶ 아마추어 모델의 권리를 위한 변호사의 조언 (http://www.womennews.co.kr/news/144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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