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을 바꾼 30대 사건] ⑧ 내각 여성 비율 30% 달성  

1948년 1호 여성 장관 임영신

참여정부 역대 최다 4명 임명

‘아줌마’ ‘울보장관’ 비하·조롱도

 

참여정부 조각에서 당시 역대 최다로 여성 장관 4명이 탄생했다. 2003년3월7일, 716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참여정부 조각에서 당시 역대 최다로 여성 장관 4명이 탄생했다. 2003년3월7일, 716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7년 여성 장관 30% 시대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문재인 정부 첫 내각부터 여성 장관 5명과 장관급 여성 수장 1명이 발탁, 관행적으로 여성 몫으로 돌렸던 여성가족부 외에 국토교통부와 외교부, 고용노동부와 환경부까지 여성 장관이 임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남녀 동수내각’을 향한 첫 걸음이자 성평등 내각을 위한 본격적인 시동이었다.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의 여성 장관 비율은 31.6%다. 18부·5처·17청의 장관급 기관장 19자리 가운데 여성은 강경화 외교부, 김은경 환경부, 정현백 여성가족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함께 장관급이 되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까지 6명이다. 세부적으로 따지면 이 비율에 이견이 없진 않다.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국민권익위원장, 국무조정실장, 방송통신위원장 등도 장관급이라는 점에서 이들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피 처장을 제외하고 장관으로만 한정해도 27.8%로, 역대 정부의 초대내각과 비교해 가장 높은 비율이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남녀 동수내각을 공언한 바 있어 임기 중 여성 장관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현재 문재인 정부 2기 내각도 2명의 여성 장관이 새롭게 지명되면서 장관급 여성 비율 30%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에서 임명된 여성 장관 ⓒ여성신문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에서 임명된 여성 장관 ⓒ여성신문

페모크라트의 실험

<여성신문>은 여성정치세력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여성 장관 임명 소식과 행보를 심도 깊게 다뤄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장관은 1948년 임명된 임영신 상공부 장관이다. 임영신 장관은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에서 공부했고 1945년 ‘대한여자국민당’을 창당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상공부 직원들은 “서서 오줌 누는 사람이 어떻게 앉아서 오줌 누는 사람에게 결재를 받느냐”며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임 장관을 비하했다. 이에 맞서 임 장관은 “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서서 오줌 누는 사람 이상으로 활동했다. 내게 결재 받으러 오기 싫은 사람은 사표내라”며 직원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임 장관에 이어 김활란 공보처장(1950년 임명), 박현숙 무임소장관(1952년 임명)으로 ‘홍일점’ 장관이 이어졌다. 그 뒤 박정희 대통령 시절 25년 간 단 한 명의 여성 장관도 나오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첫 내각에 여성 장관 4명(21%)을 동시에 기용했다. 특히 그동안 여성이 임명된 적이 없는 법무부 장관에 40대 강금실씨를 임명해 ‘파격’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여성신문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기용이 “법무부와 검찰 내부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단행된 것으로 가장 획기적인 인사”라 평했다(2003년3월7일, 716호). 강 장관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여성이어서 일을 제대로 못할 것이란 우려를 이해할 수 없다” “성차별적 법령을 찾아 개선할 생각이다” 등의 주장을 전함으로써 페모크라트(femocrats : 여성주의 관료)의 탄생을 알렸다. “여성장관 4인방, 그들을 믿는다”(2003년3월14일, 717호) 기사에서는 4명의 여성 장관의 경력과 특징을 자세히 분석해 여성 장관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여성이란 이유로 반발하는 수구파의 딴죽에도 아랑곳없이 ‘갈 길을 간다’는 당당함이 눈길을 끈다고 평가, 지은희 여성부 장관은 ‘현장’에서 다진 탁월한 기획력을 지닌 전략가, ‘참여 복지’를 강조한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과 ‘녹색 국가’를 목표로 한 한명숙 환경부 장관 등에 여성계의 당부를 전했다.

 

4명의 여성 장관의 경력과 특징을 자세히 분석해 여성 장관에 대한 이해를 도운 2003년3월14일자 717호 기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4명의 여성 장관의 경력과 특징을 자세히 분석해 여성 장관에 대한 이해를 도운 2003년3월14일자 717호 기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 장관 향해 열렬한 지지

김영삼 정부가 초대 내각에 장관 16명 중 3명을 여성으로 임명했고, 김대중 대통령 조각 때는 여성 장관은 2명, 장관급 1명이었다. 이명박 정부 첫 내각 때는 15명 중 여성은 2명, 박근혜 정부는 장관 17명 중 여성은 2명으로 1기 내각을 시작했다.

이후 <여성신문> 기사들은 “새 여성 장관들이 일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지원하겠다”는 큰 맥을 따라간다. “여성 장관 4인방, 그들을 믿는다”(2003년3월14일 717호) 기사를 비롯해 “여성 정치인 경호본부 ‘맹활약 중’”(2003년4월18일, 722호), “‘여성 장관 서포터스’ 게시판 우수 서포터스 선정”(2003년5월9일, 725호) 등 일련의 기사들에서 여성 장관들에 대한 섣부른 공격은 꿈도 못 꿀 만큼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담아냈다. 여성 장관에 대한 각별한 지지는 여러 행사들로도 구체화됐다. 2003년 6월 2일 여성계 인사들을 모아 여성신문이 주최한 ‘강금실과 만납시다’, 2005년 1월 26일 여성신문이 주관한 ‘장하진 여성부 장관과 김선욱 법제처장의 취임 축하모임’ 등이 대표적 사례다.

남성 정치 관행과 성차별적 문화에 밀려 낙마하거나 단명하는 여성 장관들의 수난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홀대받는 문민정부의 여성 장관들”(1993년6월4일 227호) 기사를 보면 당시 여성 장관들은 눈물을 흘리면 “울보 장관”이라 조롱 받았고, 울지 않으면 “독한 여자”라는 비아냥을 견뎌야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금도 남아있다. 언론도 여성 장관의 실력보다는 외모와 옷차림을 기사화하며 “얼짱 女장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거나, ‘아저씨 장관’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으면서 여성 장관에게는 ‘아줌마’라는 호칭을 쉽게 붙이기도 한다.

남성 중심 조직에서 여성 장관이 여성의 눈으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으려면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여성신문은 여성계 인사의 말을 인용해 “조직과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최소 비율인 30%의 크리티컬 메스(임계질량·critical mass)를 달성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숫자가 다는 아니다”라며 “‘페미니스트 대통령’과 ‘성평등 정부’가 선언적인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성평등을 국정의 중심에 세우고 여성 장관들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2017년7월26일, 14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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