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겪는 ‘나이주의’ 폐해

“추석 때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 불꽃놀이를 하려고 갔어요. 근데 거기서 운동을 하고 있던 어른들이 우릴 보자마자 화를 내면서 ‘당장 나가’라는 거예요. 황당했죠. 옆에선 꼬마 애들 여럿이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거든요. 부모랑 같이 놀러와서요. 경찰이 와서 시끄럽다고 했는데 부모들이 맞서 싸우더라고요. 우린 부모들이 대변해줄 나이도 아니고 어른들이 뭐라고 그러면 그냥 그 소리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ㄱ씨는 ‘어중간한 위치에 끼어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며 하소연한다. “83년생이고 생일이 지나면 18세 이상 관람가인 영화를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수능 끝나고 애들이랑 비디오방에 갔는데 주민증이 없어서 안 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날 주민증을 가지고 갔더니 ‘우린 영화관이랑 달라서 19세 이상만 된다’고 하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났어요. 나이는 되게 따지면서 법이 통일성이 없잖아요. 분명하게 제시라도 해주면 우리가 맞추기라도 하겠다니까요.”

나이에 맞추면서 사는 것이 버거운 사람들은 비단 13·18세대만은 아니다. 보육교사인 ㅈ씨(26)는 아이들 돌보다 보면 머리고 옷이고 성할 날이 없지만 그런데도 늘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는다. “편한 차림으로 있으면 엄마들이 싫어해요. 어리게 보이니까 선생님 대우를 안 해주죠.” 이것이 이유다.

십대들은 화장을 하면 찍히지만 반면 20대가 넘어가면 여성들은 화장을 안 하면 찍힌다. “회사에서 ‘화장 안 하냐’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밖에서도 화장을 안 하면 남자들한테 반말 듣죠. 한번은 전철에서 표 사려고 하는데 앞에 아저씨가 새치기를 하길래 ‘새치기하지 마세요’ 했더니 ‘어린 녀석이 어른한테 대드냐!’는 거예요.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었다면 그렇게는 말 안 했겠죠.” (회사원 ㅈ씨·29)

십대, 이십대, 삼십대… 나이에 따라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정해진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다양성의 기회를 빼앗긴 채

‘끼워 맞추기’식 삶 강요받고 있는 건 아닐까

화장 뿐만이 아니다. ㅈ씨는 “내년에 너 서른이다”라는 말을 요즘 수시로 듣고 있다. “왜 결혼을 안 하냐, 남자 소개시켜 준다는데 왜 안 만나느냐는 얘길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30이란 나이는 아기가 있어야 하는 나이라고들 하죠. 내가 아는 강사분은 이제 40에 들어서는데 결혼은 하셨지만 아기는 갖지 않기로 합의를 한 상태거든요. 근데 학교에서 선배교수들이 만나기만 하면 ‘왜 아기를 안 낳느냐’고 참견을 한대요. 사적인 자리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할 수 있는 얘기가 고작 그런 거냐고 화를 많이 내시더군요.” (프리랜서 ㅂ씨·31)

비혼여성인 ㅂ씨는 이제 “결혼해라”“아기는 일찍 낳는 게 좋다”는 말 정도엔 초연해진 상태다. 그러나 청바지와 후드티를 즐겨 입고 정해진 관습에 따라 살기를 거부하는 그도 주위 시선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머리 스타일도 그렇고 좀 점잖고 여성스럽게 보여야 될 것만 같은 분위기죠. 내 나이 또래 여성들이 하는 ‘일반적인 모습’을 하고 사는 게 제일 속 편하겠단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악착같이 살림을 꾸려온 ㅈ씨(48)는 최근 둘째 아들과 함께 백화점에 가서 옷을 골랐다. ㅈ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검정 원피스. 그걸 거울에 대보려하자 아들이 “엄마, 나이를 생각하세요”라고 말했다. 결국 ㅈ씨가 고른 것은 베이지색 투피스였다. “외국에서 나이 들어서도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들 하죠. 하지만 막상 우린 주변에 뭔가 튀는 사람이 있으면 손가락질부터 하잖아요. 언제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젊음이 아쉬워요. 마음은 청춘인데…” ㅈ씨는 아들의 말이 내심 섭섭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십대, 이십대, 삼십대… 나이에 따라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활방식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사회에서 마치 학생들이 같은 색깔, 같은 모양의 교복을 입듯이 모든 사람들이 많은 가능성과 다양성의 기회를 빼앗긴 채 단지 ‘끼워 맞추기’ 식의 삶을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는 ‘뭐 이런 게 다 있어!’하고 불평이라도 많이 했죠. 나이 들면 사회에 적응하느라고 뭐가 부당한 건지, 뭐가 문제인지 그런 감이 더 떨어지는 것 같아요. 내 나이 정도 되면 “그런가 보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보다”하고 수긍하게 되어버리죠. ”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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