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단거리경주 아닌 마라톤, 함께 달리자”
“페미니즘은 단거리경주 아닌 마라톤, 함께 달리자”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8.09.04 09:03
  • 수정 2018-09-04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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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재단 2018 여성회의

‘페미니즘 함께 달리기’

1세대부터 ‘메갈세대’까지

페미니스트 100여명 한자리

온라인 성폭력 등 논의

다양한 세대·관심 영역

교차해 ‘연결감’ 확인

 

‘2018 여성회의 : 페미니즘 함께 달리기’가 8월31∼9월1일 1박2일간 강원도 강릉시 한국여성수련원에서 열렸다. 한국여성재단(이혜경 이사장)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참여자 모두 주인공이 돼 페미니스트로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함께 걸어갈 길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다. ⓒ정운 사진작가
‘2018 여성회의 : 페미니즘 함께 달리기’가 8월31∼9월1일 1박2일간 강원도 강릉시 한국여성수련원에서 열렸다. 한국여성재단(이혜경 이사장)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참여자 모두 주인공이 돼 페미니스트로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함께 걸어갈 길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다. ⓒ정운 사진작가

1세대 페미니스트부터 1990년대 등장한 ‘영페미’, ‘메갈 세대’로 호명되는 20대까지 페미니스트 10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다양한 세대와 정체성, 관심 영역을 교차해 ‘페미니스트 연결감’을 확인하고 최근 쏟아진 페미니즘 이슈에 관해 치열하게 논의했다.

‘2018 여성회의 : 페미니즘 함께 달리기’가 8월31∼9월1일 1박2일간 강원도 강릉시 한국여성수련원에서 열렸다. 한국여성재단(이혜경 이사장)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참여자 모두 주인공이 돼 페미니스트로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함께 걸어갈 길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다. 2011년부터 격년으로 열려 올해로 4회를 맞았다.

첫날 오전 8시30분 서울을 출발한 참가자들은 오후 3시부터 본격적인 ‘대화’에 돌입했다. 첫 세션 주제는 ‘우리,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까?’. 1세대 페미니스트 장필화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명예교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대학 안에서 여성운동을 했던 김보명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 활동을 시작한 이가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가 페미니스트로서의 연대와 지속가능한 삶을 주제로 논의의 문을 열었다.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는 “페미니즘은 가장 간단히 말하면 ‘여자도 사람’이라는 주장을 담은 인간관, 사회관, 세계관이며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기 위해 비폭력 소통과 대화의 문화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정운 사진작가
장필화 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는 “페미니즘은 가장 간단히 말하면 ‘여자도 사람’이라는 주장을 담은 인간관, 사회관, 세계관이며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기 위해 비폭력 소통과 대화의 문화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정운 사진작가

끼어들기와 새판짜기

한국에 처음 여성학 강좌를 개설한 장필화 교수는 ‘끼어들기’에 성공한 여성들과의 연대, 단절됐던 세대 간 소통을 통해 ‘함께 새판짜기’를 제안했다. 장 교수는 “지난 수십 년간 여성들은 남성들의 영역으로 간주돼 온 영역에 끼어들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점점 끼어들기의 한계를 체감하고 있다”며 “특히 여성주의자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끼어들기에 성공한 여성들이 기존 제도나 기득권에 포섭된 것은 아닌가 성찰하고 비판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 교수는 “공적 영역에 진출한 여성들이 소속 기관의 남성중심적 구조에 적응, 동화되지 않고 ‘새판짜기’를 위한 조건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지며 “변화를 추동하는 영향력을 가지려면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과 여성 일반이 겪는 상황에 대해 깨어 있는 여성들이 변화의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임계지수에 도달해야 한다”고 짚었다.

장 교수는 또 “페미니즘은 가장 간단히 말하면 ‘여자도 사람’이라는 주장을 담은 인간관, 사회관, 세계관이며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기 위해 비폭력 소통과 대화의 문화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비폭력 소통이나 대화, 평화와 같은 가치가 기존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남성문화에 대적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여성운동과 전략, 다른 길이 있을 수 있지만 여성주의자가 지향하는 가치체계 자체가 다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보명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불법촬영 규탄 집회를 지켜보며 “디지털 공간을 경유해 거리로 나온 이 페미니스트 정치학은 87세대 운동과 구별되고 90년대 대학 여성주의와도 다르다”고 분석했다. ⓒ정운 사진작가
김보명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불법촬영 규탄 집회를 지켜보며 “디지털 공간을 경유해 거리로 나온 이 페미니스트 정치학은 87세대 운동과 구별되고 90년대 대학 여성주의와도 다르다”고 분석했다. ⓒ정운 사진작가

90년대 등장한 이른바 ‘영페미니스트’인 김보명 연구원은 최근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불법촬영 규탄 집회를 지켜보며 “디지털 공간을 경유해 거리로 나온 이 페미니스트 정치학은 87세대 운동과 구별되고 90년대 대학 여성주의와도 다르다”고 분석했다. “디지털 매체의 연결성을 통해 확산되는 새로운 페미니스트 실천은 경험적이고 직관적인 언어로 대중적이고 전투적인 저항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페미니스트 실천을 만들어내는 주체로서 여성들의 삶의 경험이 다양하고 그 경험이 의미와 내용을 조건 짓는 각 시대와 문화의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 정치학은 너무도 다양한 모습을 나타난다”면서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실천하고 논쟁하는 페미니스트 정치학도 한국사회의 특정한 시대적, 문화적 상황의 반영이자 그러한 상황을 거슬러 목소리를 내고 젠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저항적 행위성이 만나면서 생겨나는 갈등과 변화의 장면들이자 효과들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메갈세대’와 ‘꿘충’ 사이

이가현 활동가는 메갈리아를 계기로 페미니즘에 눈 뜬, 이른바 ‘메갈세대’ 호명되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다. 활동 3년차에 접어든 요즘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위치잡기의 어려움이다. 이 활동가는 “불꽃페미액션과 페미당당 등 이름을 가진 신생 페미니즘 단체들은 적극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페미니즘이 실체가 있는 여성들의 외침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한편, 외모품평으로 조리돌림을 당하거나 생계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는 공포 때문에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대규모 페미니즘 시위를 진행하는 불편한용기와 비웨이브도 있다”면서 “두 갈래로 나눠진 이 집단들은 여러 사건을 거치며 갈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여성단체들은 ‘여성이슈에 다른 이슈를 물타기’하고 ‘시위와 공적을 뺏어가’려는 ‘꿘충’(운동권을 비하하는 말)이라는 비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활동가는 “오해와 의심은 할 수 있지만 해명이나 열린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문제적”이라며 “남성들의 악플은 무시할 수 있지만 같은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낙인찍히고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절망감과 의욕상실로 다가온다”고 토로했다.

 

이가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는 “페미니즘이 단거리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믿고 이제 막 마라톤에 합류해 함께 달리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마치 경주 중에 마시는 파워에이드와 같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운 사진작가
이가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는 “페미니즘이 단거리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믿고 이제 막 마라톤에 합류해 함께 달리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마치 경주 중에 마시는 파워에이드와 같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운 사진작가

또 다른 고민으로는 운동 전략의 방향을 꺼내들었다. 이 활동가는 “미러링 전략을 통해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면서 ‘한남은 도태시켜야 한다’는 것이 유머코드에서 점점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남성들을 도태시키는 것이 과연 답인가?’라는 전체 운동 전략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혼·비연애·비출산·비섹스’를 일컫는 이른바 4B를 실천해야 ‘진정한 페미니스트’라고 각광받는 흐름 속에서 남성을 어떻게 바꿀지, 어떻게 페미니즘 운동에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남자 못 잃는’ ‘남성혐오가 문제라고 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 두렵다”고 털어놨다.

또한 20대 페미니스트로서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어려움도 털어놨다. 이 활동가는 “여성단체에서 활동가로 살거나 대학원에서 학위를 따 연구소에 들어가거나 강연하는 것 외에 다들 어떻게 페미니스트로 버티면서 살아가는지,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페미니즘을 계속할 수 있게 되는 승리의 경험을 듣고 싶다”면서 “페미니즘이 단거리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믿고 이제 막 마라톤에 합류해 함께 달리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마치 경주 중에 마시는 파워에이드와 같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우리의 힘 모으기-우리를 지속하게 하는 힘’이란 주제 아래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김민지 초록상상 활동가,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이 발제자로 나서 이야기를 이끌었고, 뒤 이어 온라인 성폭력, 여성정치세력화, 메갈세대 따라잡기 A to Z, 동네페미니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모듬 토론이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100여명의 참가자 중 한 명도 빠짐없이 의견을 말하고 대화하는 수평적인 방식으로 토론이 진행됐다. 

 

여성회의 마지막 날인 1일 오전 참가자들이 옥계해변에서 서클댄스를 추고 있다. ⓒ정운 사진작가
여성회의 마지막 날인 1일 오전 참가자들이 옥계해변에서 서클댄스를 추고 있다. ⓒ정운 사진작가

다음날인 1일은 전날 모듬 토론 내용을 발표하고 소감을 나누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상화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여성주의는 피해와 차별에 대한 저항이라는 네거티브(negative, 부정적)한 것으로 힘을 합쳐 극복하려는 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적, 창조적인 긍정적인 것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긍정적인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해 아쉽다”며 “격년으로 열리는 여성회의를 매년 열어 더 자주, 더 많이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50대지만 메갈리안으로 활동한 ‘메갈세대’”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한려일 페미니즘 카페 두잉 대표는 “제 또래 세대가 메갈세대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속가능에 대한 걱정, ‘꿘충’이라는 비판과 낙인으로 겪는 어려움을 겪는 메갈세대에게 우리 세대가 더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경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한국의 여성운동은 여성학 학위 과정을 통해 학문적으로 분석하는 자세와 고학력의 인적자원이라는 자산을 갖고 있다”며 “이런 자산을 바탕으로 우리는 절대 지치지 않고 계속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이사장은 “지금 페미니즘은 연령, 계층과 관계없이 자기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면서 “우리 각자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부터 연대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8 여성회의는 페미니즘 운동의 새 흐름에 관해 논의하는 자리이자 서로에 대한 거리감을 허물고 연결을 확인하며 연대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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