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력’을 남성의 전유물로 간주해온 신화 앞에서 ‘펜은 곧 페니스인가?’라는 질문을 거듭해야 했던 여성의 역사는 길다.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누가, 무엇을 예술이라고 규정하는가’라는 권력에 대한 물음으로 고쳐 써야 한다는 항변도 이미 존재한다. 이 코너에서는 ‘여성-창작-새로움’의 의미망을 확장·갱신하기 위해 도전하는 동시대 젊은 여성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과 여성신문이 공동 기획한 이 인터뷰는 문화연구자 오혜진과 만화평론가 조경숙이 함께 총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여성신문 공동기획

[‘여성-창작’을 말하다] ② 

소설집 『쇼코의 미소』·『내게 무해한 사람』의 작가 최은영을 만나다

 

‘인간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철학을 가진 소설가 최은영을 소개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은 뭘까. 유명 소설가의 추천사나 수상 이력 따위를 읊는 게 가장 부적절한 방식이라는 건 잘 알겠다. 최은영의 인물들은 늘 과거에 자신이 본 것, 말한 것, 느낀 것을 곱씹고는 이내 부끄러워한다. 오늘 우리의 대화도 언젠가 곱씹히게 되리라는 걸 예감하면서 우리는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최대한 진심을 다해, 천천히 이야기를 나눴다.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이름

오혜진(이하 ‘오’):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남녀 독자들의 고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독자들은 이 소설들을 급진적인 여성주의 소설로 읽은 반면, 또 어떤 독자들은 전통적인 소설계보에서 벗어나지 않는 안전한 작품으로 보더라고요.

최은영(이하 ‘최’): 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여성주의 운동은 ‘진정한’ 진보운동이 아닌 부수적인 운동으로 취급됐어요. 마찬가지로, 어떤 분들은 ‘여성주의 소설’이라고 하면 그 소설의 의미를 축소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 흔히 여성서사에는 남성서사에서와 같은 화려한 액션이나 격동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죠. 그저 감상적이고 멜랑콜리할 거라는 생각…. 그런데 『쇼코의 미소』는 여자들이 형성하는 온갖 관계와 감정들의 스펙트럼을 보여줬어요. 남성서사 일색인 요즘, 첫 소설집을 ‘여자들의 세계’를 전면화하는 데 집중했다는 건 매우 의식적인 기획 같은데요.

최: 저는 옛날에도 ‘친구’ 같은 영화는 보지 않았어요. 그런 이야기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일단 재미가 없어요. 저는 ‘우리 할머니, 이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떻게 살았을까? 이모랑 그 친구는 어떤 관계일까?’ 이런 게 더 궁금해요.

전지적 작가 시점? ‘최은영’ 시점!

오: 자신이 “1세계 백인 남성이 아니고 미국, 영국, 네덜란드 사람도 아닌, 21세기 한국의 1980년대생 여성”임을 생각하며 소설을 쓴다고 말씀하신 적 있죠. 보편문학·세계문학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면서 ‘월경(越境)’이나 ‘트랜스(trans)’의 미학이 강조되는 요즘, 그런 자기인식은 좀 특별하게 여겨져요.

최: ‘중립’이나 ‘보편’이라고 간주되는 것들이 사실은 기득권층의 입장에서 생각한 결과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자신이 한국인인데도 너무 쉽게 백인과 동일시하거나, 자신이 여성인데도 남성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 늘 거슬렸어요. 외국여행을 다녀보면, “저 동네는 아시아인들이 너무 많아.”라며 마치 자신이 백인인 것처럼 말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보게 돼요. 그걸 보면서, 저는 적어도 ‘내가 세계를 볼 때에는 나의 정체성을 통과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오: 그런 의식이 곧 세계의 동시대성과 ‘한국’이라는 시공간의 역사성 모두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혔어요. 『쇼코의 미소』의 동시대 인물들이 외국경험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엄마 세대, 이모 세대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그 때문일 것 같네요.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의 주 배경도 1980년대죠. 저는 이 소설집을 ‘1980년대생이자 현재 30대인 한국 여성작가에 의해 새롭게 시도되는 1980년대에 대한 역사화’라고 봤어요. 작가님은 1980년대를 가정폭력이나 여성차별이 아무렇지도 않게 방조·묵인되던, 인권감수성이 현저히 낮았던 시대로 묘사하셨죠. 이건 586세대가 노스탤지어에 젖어 목가적이거나 신화적으로만 묘사해온 1980년대의 풍경과는 매우 다릅니다.

최: 배수아 작가의 소설 『독학자』에는 정의로운 투쟁을 마친 후 성매매를 하는 운동권 남성들을 보며 환멸을 느끼는 인물이 나와요. 신경숙 작가의 소설 『외딴방』에도 운동권 지식인인 ‘오빠’의 아침상을 차리기 위해 여성인물 ‘나’가 꽝꽝 언 무를 깨는 장면이 나오고요. 그런 선배 여성작가들의 작품들에서 배운 문제의식이 있어요.

 

『쇼코의 미소』·『내게 무해한 사람』 ⓒ문학동네
『쇼코의 미소』·『내게 무해한 사람』 ⓒ문학동네
 

‘여성주의’라는 문학적 자양분

오: 대학에서 여성주의 교지를 만들며 여성주의를 접하셨다고 들었어요. 2002년이면 학내 여성주의 운동의 끝물이죠. 그때 한국문학계도 1990년대를 풍미한 여성문학을 시효만료된 것으로 여기며 청산했고요. 그런 시기에 ‘대학에서 축적한 여성주의 지식이 내 문학적 자양분이 됐다’라고 증언하는 작가가 나타나서 반가웠어요.

최: 여성주의 교지 편집을 3학년 때까지 했어요. 학내 여성주의 운동이 망해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활동하면서도 소외감을 느꼈죠. 교지를 내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거나 외려 조롱거리가 됐어요. 하지만 그때 교지 편집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소설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그 전까지 저는 가부장제가 온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채로 그게 불편한 줄도 모르고 살았어요. 여성주의를 공부하면서 폭력의 구조를 이해하고 분노하게 됐죠. 무엇보다, 제가 여자들에 대해 쉽게 생각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애엄마’ ‘노처녀’ ‘어린 여자’ 이런 식으로…. 제 안의 여성혐오를 반성하게 됐어요.

또 깨달은 것은, 저 또한 누군가에게 기득권일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런 깨달음은 여성주의가 아닌 다른 운동을 했다면 얻기 힘들었을 거예요. 예컨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면서 자신을 늘 ‘약자’ ‘억압받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하지만 여성주의는 제게 ‘내가 약자였구나’라는 것과 동시에 ‘나도 누군가를 억압할 수 있구나’라는 걸 알려줬어요.

오: 교지 편집할 당시 가장 관심 있던 이슈는 뭐였나요?

최: 앞 세대 운동권 성폭력 문제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들은 정희진 선생님의 강의도 인상 깊어서, 정희진 선생님의 책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개정판 『아주 친밀한 폭력』)도 찾아봤어요. 그게 제가 읽은 첫 번째 여성주의 서적이에요. 서구 백인 여성들이 쓴 페미니즘 서적들은 좀 어려웠는데, 한국의 여성주의자들이 쓴 글들을 읽으면 피부에 와 닿는 게 있더라고요. 

‘실수’와 ‘낙인’ 사이

오: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큰 지지 만큼이나 페미니스트들 간의 갈등도 첨예하죠.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질은 늘 의심과 감시의 대상이 되고요.

최: 제가 여성주의를 접하면서 느낀 분노의 대상은 두 가지에요. 절 억압해온 가부장적 질서, 그리고 저와 함께 여성주의 활동을 하거나 혹은 여성주의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여자들. 특히 후자에 대한 분노는 저를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제 안에 어떤 기준을 만들어놓고 모든 사람들을 평가했죠. ‘넌 여성주의자라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넌 아웃이야.’ 이제는 그게 여성혐오적인 행동이었다는 걸 알아요. 지금 여성들 간의 갈등도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좀 관대해졌으면 좋겠어요. 남성의 실수는 그저 실수지만 여성의 실수는 곧 낙인이 돼버려요. 그 일 하나로 그 사람의 진심이나 가치를 깔아뭉개는 일이 많죠. 여성들끼리 지나치게 엄격하게 대하는 태도도 여성혐오 문화에서 생겨난 거라고 생각해요. 여성주의 운동은 오래 할 싸움이니 서로에게, 심지어 반여성주의적인 여성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관대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몰랐던 거 미안해”

오: 작가님 소설에서 ‘과거에 자신이 몰랐던 것에 대한 죄책감’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라는 「씬짜오, 씬짜오」의 사후적인 깨달음이나, ‘나도 모르게 가해자에 일조하고 있었다’라는 「고백」의 성찰들.

최: 제 성격인 것 같아요. 저는 과거에 한 실수를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게 되면 참을 수 없이 부끄럽고 제 자신이 용서가 잘 안 돼요. ‘너에게 상처를 주겠어.’라고 작심하지 않았더라도, 별 뜻 없는 말로 사람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 수 있잖아요. 저는 그게 더 파괴적인 것 같아요.

오: 저는 「씬짜오, 씬짜오」의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라는 말을 이렇게 해석했어요. 한국인 소녀 ‘나’는 늘 ‘한국은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이기에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라고 배워왔죠. 하지만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에 의해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베트남인들은 결코 그 역사를 잊을 수 없잖아요. 강자는 자기가 한 짓의 의미를 궁금해 하지 않지만, 약자는 자기가 당한 것을 기억해야만 과거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으니 계속 그 역사를 알려고 하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모를 수 있다는 것’, 즉 ‘무지야말로 권력’이라는 깨달음 때문에 ‘무지’가 죄책감의 원인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해자’는 (안) 변할 수 있을까?

오: ‘관계의 변화’ 역시 작가님의 주요 테마죠. ‘관계란 변하기 마련’이라고 믿으시잖아요. 그런데 「모래로 지은 집」에서는 “가해자들도 변할 수 있어?”라는 질문을 던지셨어요. 언뜻 생각해보면, ‘관계는 변한다’라는 믿음은 곧 ‘사람은 변하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여야만 가능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왜 유독 가해자에게만은 ‘변할 수 있는가’라고 굳이 물어야 할까요? 저는 그 질문을 ‘누군가의 죄를 원죄화하지 않으면서 가해자가 스스로를 성찰하게 할 수 있을까’라고 바꿔 읽었어요. 저는 지금 ‘문단 내 성폭력과 그 이후’라는 구체적 정황을 떠올리면서 이 질문을 드리고 있습니다.

최: 저는 가해자가 스스로 성찰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가해자에게 갑자기 신 내리듯 깨달음의 순간이 오지도 않겠고, 주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한다고 해서 가해자가 반성하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결국 장기간에 걸친 교육만이 답 아닐까요? 물론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전제돼야죠. 권력을 지닌 가해자에게 법적으로 면죄부를 주며 쉽게 용서하는 문화가 있는 한 희망은 없을 거예요.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더 문제 삼는 사회라면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침묵을 택하게 될까요.

 

교육의 힘을 믿지만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 또한 강조하는 최은영의 답은 최근 권력형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무죄 판결을 얻고 스스로 부활을 다짐한 한 유력 정치인의 사례를 연상케 했다. 과연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최은영은 마치 기도하듯 자신의 소설에 다음과 같이 꼭꼭 눌러 써두었다. “순간이나마 마음을 걸치고 싶었다. 타고난 것은 변하지 않지만 같은 일을 겪어도 극복할 힘이 길러질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에.” 어디선가 아직 침묵하고 있는, 혹은 이미 침묵하기를 거절한 수많은 피해자들이 이 문장을 읽을 것이다. 

* 최은영 소설가. 1984년 경기도 광명에서 태어났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와『내게 무해한 사람』을 썼다.

인터뷰 장소협조: 콘크리트 플랜트

►[‘여성-창작’을 말하다] ① 웹툰 <먹는 존재>, <족하>, <홍녀>의 작가 ‘들개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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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진 문화연구자.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 『그런 남자는 없다』(공저),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 등의 책과 평론을 썼다.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했고,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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