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보호

법제화 방안 모색 국제 세미나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보호 법제화 방안 모색 국제 세미나’가 열려 2부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보호 법제화 방안 모색 국제 세미나’가 열려 2부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채팅앱을 통해 성인 남성과 대화를 나누다가 꼬임에 넘어가 성폭행을 당한 10대 여성이 있다. 피해자는 범행을 돕는 대가로 가해자에게 돈을 받은 친구가 신고를 막을 목적으로 나눠준 돈을 받았고, 이 때문에 경찰 조사에서 ‘성폭력이 아니라 성매매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8월 28일 국회에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보호 법제화 방안 모색 국제 세미나’가 열렸다.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더욱 교묘해진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 실태를 짚어보고, 성착취 피해자를 구제하지 못하는 현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의 한계를 논하며 법 개정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채팅앱·개인방송 등 악용한

아동청소년 성착취 심각…규제 없어

IT 환경의 빠른 변화는 아동·청소년을 성폭력, 성착취 현장으로 유인하는 통로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꿔놓았다. 한국 아동 성착취의 95% 이상이 인터넷 상에서 이뤄졌다. 지난 5년간 하루 평균 3건꼴로 신고된 총 5104건의 아동 성학대 사건 중 94.1%가 13세 미만 아동과 관련된 사건이었다(경찰청, 2018). 

특히 스마트폰 채팅앱이 아동·청소년 성착취의 온상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지난 2015년 3월 서울 관악구 한 모텔에서 성구매자가 채팅앱으로 만난 10대 여성을 살해해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2016년 만 13세 지적장애 여아가 가출한 후 성인 남성 6명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성매매에 이용된 사건도 채팅앱을 통해 발생했다.

달라진 것은 없다. 채팅앱은 여전히 아동·청소년 성매매 유인, 조장, 알선 등에 흔히 사용되고 있다. 가입 시 성인인증절차는커녕 나이나 신상 정보를 확인하는 절차도 없다. 대화 내용도 쉽게 삭제할 수 있으며 보관 기간도 짧다. 채팅앱 운영자들은 “우리는 대화에는 관여하지 않고 플랫폼만 제공할 뿐”이라며 손을 놓고 있다. 오히려 앱을 켜면 화면 캡처 기능, 대화내용 저장 기능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해 신고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채팅앱을 넘어 영상 채팅, 개인 방송 등 형식도 다변화하고 있다. 성구매자들이 신분을 숨기기 위해 현금 대신 문화상품권이나 기프티콘 등을 대가로 지급하기도 하고, 신체 사진이나 영상, 음성 파일, 속옷이 거래되는 것과 맞물린 현상이다. 아프리카TV 등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청소년에게 성적 행위를 시킨 후 ‘별풍선’을 대가로 지급하는 식의 성매매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날 아동·청소년 전문가들은 ▲성매매 유입 통로가 채팅 앱과 사이트 등 사이버상 규제책 마련 ▲아동·청소년 성매수범과 채팅앱 운영자 등 알선업자 단속·처벌 강화 ▲성착취 피해 청소년 조기 발견·구조·보호를 위한 종합지원센터 설치 등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아동·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성을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아무런 제지 없이 끌려들어가고 있다”며 “그러나 채팅앱 등은 이들을 성착취로 유인하는 초기 경로가 되고 있어서 더는 개인의 자유로운 사업이라는 미명하에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사이버 성매매 환경을 광범위하게 규제하고 처벌할 관련 법안을 제정하고 ▲이 법을 실행하고 중장기적인 정책을 수립·시행할 수 있는 전담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팅앱이나 개인방송 운영자 등은 단순히 ‘플랫폼’ 제공자가 아니라 성매매 알선과 성착취 조장, 방관, 중간 이익 획득 등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 성구매자, 알선업자와 ‘공범’으로 보고 단속·수사·처벌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IT 기술 발달과 함께 아동·청소년을 위한 사이버상 안전망을 설치하는 차원에서 기술적 지원이 가능한 전문 영역을 포함한 전담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현아 변호사도 “변화하는 사이버 성매매 환경을 광범위하게 규제하고 처벌할 수 있는 관련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며 “법이 개정돼야만 아동 청소년 성매매 정책도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연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상시적인 섹스팅 등 사이버 성매매 환경 모니터링과 규제·단속, 제도개선을 강화해야 한다. 규제·단속만으로는 선제적 대응이 어려우니, 정부가 채팅앱의 부작용을 개선하는 기술적인 조치(성인인증 포함)를 포함해 표준화된 플랫폼을 개발하고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하면, 사업주나 정보제공자가 운영 내용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 부추기는 현 아청법 개정해야

현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은 성매매를 한 아동·청소년을 피해자가 아닌 ‘성매매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규정해, 이들로 하여금 보호처분이 두려워 신고를 주저하게 만들고, 성착취에 더욱 취약하게 한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됐다. 만 13세 지적장애 여아가 가출한 후 채팅앱으로 만난 성인 남성 6명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성매매에 이용된 사건에 대해, 경찰은 아이가 채팅앱에 ‘가출함 재워줄 사람’이라는 방을 개설했고, 떡볶이나 치킨 등을 얻어먹었다고 해서 성폭력이 아닌 성매매 사건으로 수사에 나섰다. 성폭행을 당한 후, 억울하고도 무기력한 기분에 가해자에게 ‘밥이나 사달라’고 했다가 ‘밥을 얻어먹었다’는 이유로 성폭행을 당했음을 인정받지 못한 10대 피해 여성도 있다. 

현행법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면서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이 제20대 국회에서 성매매를 한 아동·청소년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내용의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발의했다. 현재 두 건 모두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계류 중인 법안이 신속히 통과돼 성착취 피해아동·청소년이 피해청소년들의 특성에 맞는 상담·교육·보호·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여성가족부도 “현행법상 성매매를 한 아동·청소년을 범법자로 규정하기보다 피해자로 봐야 한다”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개정안은 보완이 필요하다”며 “성매매를 한 아동·청소년에게 보호처분 대신 어떤 프로그램을 적용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대안이 있다면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날 세미나는 국회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한국여성변호사회, 사단법인 두루, 한국YWCA연합회, 엑팟코리아, 십대여성인권센터가 공동 주최했고, 여가부와 주한 유럽연합 대표부의 후원으로 열렸다. 1부 주제 발표 시간에는 유럽연합 사례(조엘 이보네 주한유럽연합대표부 대리대사), 스웨덴 사례(페르-안데르센 수네손 스웨덴 무임소대사), 영국 사례(세라 챔피언 영국 노동당 국회의원)에 이어 한국 사례(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가 소개됐다. 2부 토론 시간에는 김현아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 김지연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강정은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안수경 한국YWCA연합회 Y-틴위원회 위원장, 이현숙 ECPAT Korea 탁틴내일 대표,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이금순 여가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장, 신희영 검사(법무부 형사법제과)가 토론을 벌였다. 강지원 변호사가 좌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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