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라지는 여성 디자이너들…우리 함께 살아남아요
홀로 사라지는 여성 디자이너들…우리 함께 살아남아요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8.29 00:53
  • 수정 2018-09-10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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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FDSC를 만든 사람들이자 현 운영진인 디자이너 양민영, 신인아, 김소미, 우유니게 씨를 27일 만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왼쪽부터) FDSC를 만든 사람들이자 현 운영진인 디자이너 양민영, 신인아, 김소미, 우유니게 씨를 27일 만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일상의 성평등’ 만들어가는 사람들

페미니스트 시각 디자이너 모임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디자인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오래된 이야기다. 7:3의 비율로 입학한 그 많던 여학생들은 35세를 전후하여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름이 알려진, 오랫동안 생존하는, 매체에서 조명받는 디자이너 대다수가 남성이다. 이쯤 되면 남성 디자이너가 여성 디자이너에 비해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서라고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린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정책 연구모임 ‘WOO’ 대표가 지난해 4월 여성신문 칼럼(http://www.womennews.co.kr/news/113047)에서 내린 진단이다. 지금도 유효한 얘기다. 

“홀로 사라지지 않고 함께 살아남기 위해” 여성들이 뭉쳤다. 페미니스트 그래픽 디자이너 모임 ‘페미니스트 그래픽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은 “여성 디자이너들이 살아남아 서로의 용기와 힘이 되는 모임”을 표방한다. 여성 디자이너들이 업계 정보와 조언을 나누는 장이자, 일과 삶 모든 면에서 제 역량을 펼치며 행복하게 살 길을 찾으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창립자이자 운영진인 디자이너 김소미, 신인아, 양민영, 우유니게 씨를 27일 만났다. 2015년부터 디자인 업계 내 젠더 문제를 고민하고, ‘WOO’ 등을 통해 각자 활동하던 페미니스트들이다.

적정 연봉·작업 단가·협업 시 주의사항 등

여성이라 소외됐던 업계 정보 공유 초점

다양한 페미니스트 간 협업 연결고리 지향

FDSC의 첫 모임은 7월 15일 서울 성동구 밀리언 아카이브에서 개최됐다. 특별한 홍보 없이 SNS 채널에서만 공지했을 뿐인데 200여 명이 참가 신청했다. 공간이 협소해 모두 올 순 없었지만, 이날 60여 명의 디자이너들이 어울려 정보를 나눴다. 원로 여성 디자이너들이나 익명의 기부자가 모임의 취지에 공감하고 이들을 응원한다는 메시지와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예상보다 높은 호응에 운영진은 큰 감동을 받았다. “페미니스트 동료를 만나고 싶다, 나만 이런 갈증, 고민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니구나...”(신인아) “여성들은 ‘남에게 이런 거 물어보면 실례’라는 생각에 민감한 정보를 잘 공유하지 못하는데, 자리를 만들자 정보 공유가 활발히 이뤄졌어요.”(양민영) “여성들은 지나치게 겸손해서 나를 내세우지 않으려 하죠. FDSC에서는 각자 좀 더 자신있게 자신과 자기 작업을 소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서로 ‘대놓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공간이랄까요.”(김소미)

이들은 지난 26일 ‘디자이너의 수입과 지출’을 주제로 이야기 모임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그래픽 디자이너는 얼마를 벌며, 무엇을 기준으로 적정 단가를 세울지, 협업 시 정당한 단가를 제시하고 있는지, 주의할 점은 무엇일지” 등을 논의했다. 실무자들이 직접 자신의 초봉을 밝히기도 했고, 연봉협상 시 유용한 팁도 공유했다. “결국 명확하고 적절한 기준을 세워 작업 단가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수가 동의했다고 한다. 

“디자인계의 ‘알탕 연대’ 속에서 여성은 제대로 된 정보조차 얻기 어렵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연봉 1800을 받고도 그게 평균치인 줄 아는 사람도 있어요. ‘15년째 업계 초봉이 그대로다’, ‘10년간 작업 단가가 그대로다’라는 여성 디자이너들도 있어요. 디자인학과 졸업생 중 여성 비율이 약 80%고 상당수가 디자인 전문업체에 취직하는데, 과중한 업무와 박봉에 시달리다 업계를 떠나는 여성이 많을 수밖에요.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 디자이너는 훨씬 많이 벌고, 성장할 기회를 쉽게 얻는 걸 보면 좌절스럽죠. ‘디자인은 산업이 아니라 예술’ ‘널 가르쳐 주는데 왜 돈을 줘야 하냐’ 라며 디자이너의 노동력에 제값을 지급하지 않는 분위기도 한 몫을 하죠.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도 적지 않고요.” 

 

FDSC가 진단한 디자인계 내 여성들이 처한 현실. ⓒFDSC 제공
FDSC가 진단한 디자인계 내 여성들이 처한 현실. ⓒFDSC 제공
 

개인의 일상 존중하는 느슨한 연대 지향

“오래오래 살아남자, 돈 벌어보자”

 

FDSC는 페미니스트 노동자들 간 교류와 협업의 장이기도 하다. 지난달부터 FDSC SNS 채널에서 페미니스트 디자이너와 그 작업물을 소개하는 ‘페디소(페미니스트 디자이너를 소개합니다)’를 진행 중이다. 디자인계를 넘어 “다양한 업계의 여성들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발돋움할 계획도 세웠다. 

먼저 업계에 진출한 이들이 취업준비생에게 실무적 조언을 전하는 행사도 열고 있다. 지난 11일엔 실무 디자이너들이 진로를 모색하는 이들을 위해 포트폴리오 리뷰도 진행했다.

평소 회원들은 게시판과 메신저의 기능을 합친 ‘슬랙’이라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툴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서로의 소식과 정보, 질문과 답변을 나눈다. “클라이언트가 작업파일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료 작업을 부탁하는 클라이언트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같은 질문부터, 작업용 노트북 사양이나 프로그램 에러 등 소소한 질문도 오간다. 장시간 앉아 작업하다 보니 허리, 손목 등이 아픈 디자이너들을 위해 전문 강사가 특별 스트레칭을 지도하는 운동 소모임도 운영한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창립자이자 운영진인 (사진 왼쪽부터) 우유니게, 김소미, 신인아, 양민영 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 창립자이자 운영진인 (사진 왼쪽부터) 우유니게, 김소미, 신인아, 양민영 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결국 “함께 오래오래 살아남자. 돈 벌자”가 FDSC의 모토다. 개개인의 일상을 존중하는 느슨한 연대를 지향한다. 

“모임을 운영하지만 전업 활동가가 될 생각은 없어요. 내가 살려고 하는 거니까요. 제가 6년차 디자이너인데, 아직은 주변에 여성 디자이너가 많지만 10년차만 되도 여성이 없어요. 제가 그때까지 살아남는 게 목표예요. 그러려면 부담 없이 각자 실생활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나누는 게 좋겠죠.”(신인아) “우리의 일과 삶이 너무 힘들어서 이 모임을 시작한 건데, 모임을 지속하기 위해 없는 힘을 짜내진 말자는 거죠. 그래도 결국 이런 행동들이 사회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정책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김소미) “운영진도 고정된 게 아니라 여럿이 돌아가면서, 무리하지 않으면서 활동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우유니게) “살아남아서 다른 여성들에게 좋은 레퍼런스가 되는 게 목표예요.”(양민영)

FDSC 내에서는 선후배나 학연 등을 강조하지 않고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교류하며, 차별과 혐오발언, 목적 없는 친목과 파벌형성을 지양한다. 이러한 원칙에 동의하는 이들이라면 FDSC에서 여는 공개 행사에 참여해 회원에 가입할 수 있다. 문의 https://twitter.com/femidesigner 

 

FDSC의 회원 수칙 ⓒFDSC 제공
FDSC의 회원 수칙 ⓒFDS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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