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미혼모 정희씨. 뇌병변 장애 1급 아들 건우는 시력과 청력을 거의 상실해 급히 수술을 해야 하지만 이미 의료비를 많이 지출하면서 빚을 져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부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미혼모 정희씨. 뇌병변 장애 1급 아들 건우는 시력과 청력을 거의 상실해 급히 수술을 해야 하지만 이미 의료비를 많이 지출하면서 빚을 져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미혼모는 ‘시민’이다] 장애아이 홀로 키우는 정희씨

남자친구에게 임신 사실 말하자 폭행 후 떠나

100일 무렵 첫 수술...입원 반복에 생계 위협

“부족한 생활비... 라면 하나로 하루 견뎌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양육 미혼모의 삶은 그 자체로도 버겁지만, 아이가 장애와 질병을 갖고 더 많은 돌봄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 생계를 위협받을 수 있다.

미혼모 정희(가명·22세)씨는 뇌병변장애 1급을 비롯해 각종 장애를 가진 37개월 된 아들 건우(가명)를 키우면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

정희씨가 고3 때 태어난 건우는 100일이 지나도 몸을 가누지 못했다. 태어날 당시 이상이 없었기에 나아지길 기다렸지만 차도가 않았고, 결국 대학병원에서 뇌병변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걷지도, 제대로 앉지도, 잡지도 못해 주로 누워있거나 굴러다닌다. 뇌에 이상이 오면서 시력에도 장애가 생겨 수술을 했지만 거의 형체만 알아보는 정도다. 특수안경을 껴야 하지만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청력은 일상 속 비행기 소음 정도의 굉음만 감지할 수 있다. 수술을 해야 하지만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은 높지 않다. 들리지 않으니 말도 못한다. 목에 혹이 생겨 일찌감치 수술을 했고 자폐증도 있어 자기 머리를 때리고, 엄마를 깨물어서 팔 곳곳에 상처를 냈다. 면역력이 약해 수시로 아프고 한번 아프면 중환자실 가야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

정희씨는 “아이가 귀나 눈 중에 하나라도 정상이면 좋겠다. 이왕이면 눈이 보이면 더 좋겠다. 얼마나 답답할까”라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정희씨는 현재 생활비가 부족해 당장 끼니를 잇는 것조차 어렵다고 했다. 쌀도 없고, 반찬도 없어 하루에 라면 1개를 먹고 버틴다고 했다. 이미 병원비로 여러 곳에 빚을 진데다, 한 달에 몇 번씩 병원을 다니고 입원을 반복하면서 받는 장애비, 양육비를 포함해 정부에서 받는 140만원보다 지출이 더 크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보증금 없는 월세 40만원짜리 단칸방이다. 가족과 함께 살면 기초생활수급 자격이 안 된다고 해서 건우와 둘이서 산다. 월세를 줄이기 위해 LH임대 아파트를 신청해 당첨됐지만 보증금 200만원도 없고, 살림살이도 없어 엄두를 못내고 있다고 했다.

정희씨는 “병원비가 들지 않았다면 모아서 이사를 갔을 것”이라고 했다. 수술비는 100만원이 넘고 입원하고 검사하고 나면 70~80만원 씩 들어간다. 또 병원을 오가는데 드는 차비도 만만찮다. 당장 병원비가 급해 동주민센터에 물어봤지만 더 이상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현재 병원 사회사업팀에서 재활치료비는 지원받고 있다.

앞으로 들어갈 수술비도 정희 씨는 엄두도 못낼 금액이다. 청각수술비가 귀 한쪽 당 1천 만원이 든다고 했다. 수술 전 먼저 보청기를 껴야 하는데 150만원 하는 보청기를 살 돈이 없다보니 수술은 요원하다. 다행히 최근 동아대학교병원에서 보청기를 지원해주겠다고 연락을 받았다.

입양 놓고 엄마·언니와 갈등 심각, 자살 시도

아픈 아이와 경제적 어려움 외에 가족과의 갈등으로 정희씨는 무척 힘들어하고 있다. 팔을 돌려 손목의 흉터를 드러냈다.

“엄마는 입양 보내라고 했는데 말을 안 들어 아이가 이렇게 됐다며 저를 비난하고, 언니는 나가 죽으라며 욕을 해요. 계속 그런 얘기를 듣다보니 나는 살길이 없는건가 생각만 들어서 가족들 보는 앞에서 그었어요.”

정희씨는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몸 곳곳이 아프고 혹이 나서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수술할 동안 아이를 맡기길 곳도 없다고 했다.

희망이 없진 않다. 현재 민간단체를 통해 진행 중인 후원 모금은 정희씨에게 경제적인 도움 못지않게 정신적으로 힘이 되고 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 후원금을 내면서 힘내라는 말을 남긴 것을 보고 정말 감사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왕따를 당했고 이후에 성폭행, 폭행 등을 겪었어요. 엄마한테 학교 가기 싫다고 했는데 졸업해야 한다며 참으라고 했고요. 나는 항상 참고만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자살 시도를) 후회해요. 내가 죽으면 애가 누굴 의지하고 살겠나 싶어 미안해요.”

아이의 친부는 정희 씨가 임신 직후 떠났다. 그의 집도, 연락처도 알지 못한다. 임신 했다고 하자 축하는커녕 정희 씨를 때렸다. 정희씨는 유산 될까봐 온몸으로 배를 막았다. 낙태는 생각도 안했다고 했다. 배 안에서 아이가 꿈틀거리는데 어떻게 죽일 수 있을까 싶었다. 엄마에게는 시키는 대로 입양 보낼테니 낳게만 해달라고 했지만 결국 보내지 못했다.

“입양 보내는 조건으로 한 달 간 같이 지냈는데 아기가 너무 이쁜 거예요. 이런 애가 내 뱃속에서 나온 게 너무 고마웠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입양 보내지 않겠다고 했고, 엄마와 사이가 더 나빠졌어요.”

“미혼모시설 돌아가고 싶지 않아”

출산 1달 전 미혼모시설에 입소해 출산 후 1개월이 되지 않아 퇴소해야 했다. 정희 씨는 미혼모시설 생활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출산 날짜가 다가오니 자궁 문이 열리게 해야 한다며 오리걸음을 시켰어요. 또 주방 당번날 설거지 하는데 산통이 와 너무 아파서 못하겠다고 했더니 괜찮아 보인다면서 병원을 안보내주는 거예요. 마침 병원 가는 언니가 있어 따라갔더니 다음날 제왕절개수술해야 한다고 했어요. 출산 후엔 아이가 울어서 달랜다고 혼자 애를 쓰는데, 시설 선생님이 아이 달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는커녕 저를 야단치고 다그쳤어요.”

정희 씨는 아이가 건강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미용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미용학원에 다닌 후 취직하고 싶지만 장애아를 봐주는 돌봄시설에서는 4~5세 정도가 돼야 이용할 수 있고 시설도 많지 않다. 아이가 걸을 수 있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손잡고 맛있는 음식 먹고 여행다니고 싶다. 아이와 좋은 추억 만들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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