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언니 작업장과 8명의 언니들

 

지난 1월부터 불량언니들은 함께 모여 손뜨개 텀블러 파우치와 수세미 등을 만들고 있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지난 1월부터 불량언니들은 함께 모여 손뜨개 텀블러 파우치와 수세미 등을 만들고 있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도도, 이호, 덤벙이, 공주, 멍퉁이, 내맘대로, 갱상도, 겸둥이. 8명의 ‘불량언니’들은 청량리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 한국의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였던 ‘청량리 588’(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 620번지 일대)이 그들의 일터이자 삶터였다. 지난해부터 재개발이 본격화돼 떠나야 했다.

새로운 삶을 위한 분투

지금 이들은 새로운 삶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불량언니들은 함께 모여 손뜨개 텀블러 파우치와 수세미, 에센셜 오일을 배합해 만든 아로마 롤온(roll-on), 레몬과 자몽 등을 소독해 칼로 저며 담근 과일청 등 여러 물건을 만들어 팔고 있다. 최근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접점을 찾고 운영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실험”이다. 손뜨개 텀블러 파우치, 수제비누, 손뜨개 수세미 등을 내놓았는데 펀딩 하루 만에 100%를 달성했다. 21일 기준 후원금 220만원 이상을 모았다.

‘불량언니 작업장’은 페미니스트 단체인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 이어온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대응 활동의 하나다. 나이와 건강 문제로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여성들, 뿔뿔이 흩어져 빈곤과 차별에 허덕이는 여성들에게 생존과 지지 기반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 시작됐다.

 

생존기반 마련이 관건

이룸이 2005년부터 아웃리치 활동을 통해 만나온 청량리 집결지의 여성들은 수십 년간 성매매를 하며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재개발·폐쇄에 따른 강제 퇴거, 단속 피해에도 속수무책이었다. 집결지 폐쇄로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여성들이 많지만, 정부도 지자체도 해결책이나 지원책을 제시한 적 없다. 대부분 60대 이상인 여성들이 복지·자활 지원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돌고 돌아 결국 다시 성매매를 택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여성들이 성매매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혀가자는 게 이룸의 현재 진단이자 목표입니다. (...) ‘늙고’ ‘병들었다’고 쉽게도 말해지는 여성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물건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유통하는 것입니다.”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 소개글 중)

목표는 좀 더 안정적인 판로와 수익 확보다. 최근 과일청 주문·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3개월 만에 140병을 팔았다. 크라우드 펀딩 성공에 불량언니들은 또다시 자신감을 얻었다.

사실 대단한 수익은 아니다. ‘불량언니 작업장’에서 벌어들인 돈은 밥벌이보다 용돈 벌이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도 여성들은 “올 데가 있어서 우울하지 않다, 할 일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며 작업장을 찾아온다고 달래 이룸 활동가는 말했다. 함께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녀오며 정든 여성들이 서로를 돌본다. 지난 2월 이룸 회원총회를 시작으로 3.8 여성대회, 노동절 집회, 경의선 공유지 마켓, 인권영화제, 여성영화제, 서울퀴어문화축제 등 다양한 행사에도 참여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끈끈한 연대 나누는 공동체

꾸준한 응원과 연대도 작업장의 원동력이다. “손뜨개질을 시작하자 각지에서 실이 들어왔어요. 불량언니들도 놀랐고, 점점 자신감을 갖는 것 같아요.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하자 ‘우리 명예가 걸렸으니 잘 만들어야겠다’고 하세요.”

달래 활동가는 “끈끈한 연대를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 국가가 할 일을 우리가 다 할 순 없지만, 불량언니 작업장 활동이 노인 여성의 복지 실태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룸은 집결지를 비롯 대한민국 성산업의 구조가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빈곤에 의한 성산업의 지속이 바로 여성 빈곤을 지속시키는 가장 주요한 장치임을 폭로하고, 자원 없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는 급진적인 사회의 전환과 변혁을 촉구하는 흐름을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크라우드 펀딩 소개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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