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김현주/ 천리안 여성학동호회 부시삽

몇 년 전부터 조기교육 열풍(차라리 광풍이라고 할까)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어느 나라 부모인들 제 자식 교육에 관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만, 우리나라처럼 자신의 노후생활도 포기하고 수입의 대부분을 교육비에 쏟아붓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제 나이에 앞선 커리큘럼으로 공부하는 분위기가 이렇듯 만연해 있으니, 제 아무리 교육전문가가 입에 거품 물고 부작용을 설명해도 지금으로선 소 귀에 경 읽기이다. 한술 더 떠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교육열을 치맛바람이라 하면서 엄마들에게 원죄를 뒤집어 씌우는 행태도 종종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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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육학자의 이름을 따거나 영재나 천재같이 부모가 좋아할 만한 이름도 이미 다 상표등록이 되어 있는 형편이고 말이다.

조기교육은 입학 전 아이들이 절정이고, 초등학생들도 이에 뒤질세라 중학교 공부를 선행학습 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취학 전 아동들의 조기교육은 해가 갈수록 그 대상 연령이 점점 내려가고 있다.

조기교육도 몇가지로 분류된다. 값비싼(정말 비싸다!) 교구를 구입해서 방문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 경우도 있고, 일반 유치원 대신 영어유치원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경우라면 방문 학습지를 시키거나 학원을 보내기도 하고, 심지어 몇 십만원짜리 개인과외를 받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인터넷 대중화 시대답게 웹사이트도 교육컨텐츠는 여전히 강세다. 그뿐인가. 차라리 내가 손발 걷고 나서서 가르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늘고 있는 추세이고, 외국의 커리큘럼과 교과서를 그대로 갖다가 쓰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안들으려고 해도 들리는 이러한 이야기는 불안감 조성에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많이 쏟아 붓고 있다. 하나라도 더 아이들 머리에 무엇인가 꼭꼭 넣어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상업적 마케팅 전략과 맞물려 많은 것을 교육시켰다고 안심하는 사이에 놓치고 지나가는 것은 없을까...

가사를 전혀 분담하지 않던 아빠가, 자기 딸에게는 남녀 평등한 삶을 살라고 얘기한다? 남편의 부당한 폭력 앞에 엄마는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고 말한다?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없는 부모가 자식에게 책읽기를 강요한다? 타율학습에 길들여진 아이에게 창의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을 요구한다? 부모는 맨날 싸우면서 자식들에게는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한다? 이 모두가 아이러니가 아닌지.

백과사전에 다 나와 있는 지식을 머리에 넣느라고 생고생할 이유가 없다.

아이들은 가르친 것을 배우지 않고 본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딸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아빠인 당신은 설거지 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며, 성분담 고정관념을 몸으로 깨야 한다. 남편의 부당한 폭력에 아내인 내가 어떻게 저항하고 해결해 가는지, 그 과정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부부싸움 뒤 화해하는 모습까지 아이들은 배우고 있다. 싸우는 모습을 감추는 것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딸에게 너는 나같은 삶을 살지 말라고 백 번 얘기하느니, 엄마가 이 남성중심 가부장제 사회에서 인생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바로 그 모습이 훨씬 생생한 교육인 것이다.

가르치느라고 너무 애쓰지 말자. 과열된 교육시장에서 한발 물러서서 담담해보자. 아이들은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 아닌, 보여준 것을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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