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11월 16일 미국에서 개봉첫날 3,130만달러(약 400억원)의 수입을 올려 사상 최고액을 경신하는 것으로 다시 한번 세계적 화제가 되고 있다.

해리포터의 문화산업 기록깨기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단 4일간에 1억달러 수입을 돌파. <쥬라기 공원>과 <스타워즈>를 추월했고, 북미지역 3,600여 극장, 8,200개 스크린에 동시 상영, 총 스크린의 20%를 넘은 것으로도 이어졌다.

한 연구보고서는 AOL타임워너가 영화에서만 순익 6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영화에서도 대박을 맞은 작가 조앤 롤링 역시 사상 최초의 ‘10억 달러’ 작가가 될 것 같다. 아이에게 우유 한잔 사먹일 돈이 없었던 이혼녀의 재산은 이미 6천5백만 파운드(약 1300억원)이지만 앞으로 영화·캐릭터·게임·애니메이션·테마파크등으로 이어질 그의 소득이 10억 달러대를 넘어설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문학사상 셰익스피어 이후 최대의 유명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는 조앤 롤링과 해리 포터는 아직 7권으로 예정된 책중 4권 밖에는 나오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러나 해리포터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 기록들에 있지 않다. 그간에 있어왔던 논평중 ‘책을 떠났던 아이들에게 다시 책을 읽게 하고 있다’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이 무엇보다 의미 있어 보인다.

이번 영화개봉에서도 나의 주의를 끌었던 것은 영화를 보고 나온 영국 아이들이 ‘책과 거의 똑같이 만들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문자로 쓰여진 작품이 영화로 갔을때 그것은 늘 영상적 표현에 의해 새로운 창조품으로 전환되어 왔고, 또 그것이 당연한 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조앤 롤링은 이번 영화제작때 영화적 상상력을 전혀 추가하지 말것을 계약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아이들도 책과 똑같은 영화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가장 의미 있는 기록일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많은 기사들중 <뉴스위크>의 영화평을 하나보자. 데이비드 앤센기자는 이렇게 쓴다. ① 빗자루를 타고 공중에서 벌이는 퀴디치 경기는 책에서는 명확히 묘사됐지만 화면에서는 어수선하고 뭐가 뭔지 혼동스럽다. ②이 영화 시리즈가 모든이의 바람대로 멋진 작품이 되려면 몇가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원작 팬들의 분노를 감수하고 영화로 만들기 좋게 원작의 일부 장면을 희생해야 한다.

①은 영상시대 파워게임에 쇠퇴양상을 거듭해 오던 문자와 인쇄시대 불안에, 그러나 희망을 버릴수 없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글쓰기와 글 읽기가 그렇게 간단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임을 밑받침 해주는 부분이다.

②는 영상은 영상대로의 표현방법이며, 책은 책의 고유한 영역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아이들을 책읽기로 되돌아오게 하고 있다는 해리포터의 역할을 생각해 보게 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2월 9일자에 미국 젊은이들이 책 읽기를 회복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최근 3년간 젊은층 독서인구는 급증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25세 이하에서 10%이상 증가했으며, 이들의 25%가 자기취미를 독서라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이 조사에는 해리포터류 아동물은 제외됐다.

세상은 그렇게 빨리 변하는게 아닌것 같다. 해리포터 신드롬에 대해 우리 언론이 반응하듯이 해리포터는 ‘돈나와라 뚝딱!’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디지털 문화산업의 신기록을 깨는 것도 영상에서가 아니라 문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출발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슨 기록인가를 깨려면 여전히 읽기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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