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라 ‘여성 국회의원

출산휴가 90일’ 법 발의

헌정 70년 중장년 남성 국회,

여자 화장실·임신 모두 ‘남일’

여성 늘 지방의회도 바꿔야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이 워킹맘들과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일·가정 양립을 위한 패키지 법안 발의’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이 워킹맘들과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일·가정 양립을 위한 패키지 법안 발의’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국회에서 바지를 입은 여성 의원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여자 화장실을 찾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이미경 전 의원이 국회에 첫 등원하던 모습과, 김정숙 전 의원이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화장실 설치를 요구한 일화로, 불과 20여년 전의 일이다. 민의를 대변해야 하는 국회가 중장년 남성들로만 채워지면서 여성 정치인의 행보는 인간의 당연한 권리를 만들어간 진보의 역사로 남기도 한다.

지난 8일에는 여성 국회의원 출산휴가법이 발의됐다. 오는 9월 출산을 앞둔 임신부인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회법에 국회의원의 출산휴가 규정을 신설한 것이다. 법안 처리 절차가 있는 만큼 아무리 빨리 통과돼도 신 의원이 새 법의 적용을 받기는 어려워보인다. 

신 의원은 “제가 임신을 하고 보니 우리 국회는 여성 의원의 모성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인 출산휴가조차 없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일하는 여성들의 경력이 단절되는 가장 큰 요인이 일·가정양립의 어려움 때문임을 고려할 때 여성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특별히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젊은 여성 의원이 다선으로 향하는 출발지점부터 남성 의원과 달리 높고 큰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이유다. 

현행 국회법과 국가공무원법에는 여성 국회의원이 임신 또는 출산을 이유로 휴가가 가능한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국회의원은 ‘국가공무원법’ 상 정무직 공무원의 신분을 가지며, 공무원의 휴직을 규정하고 있는 제71조제2항제4호에 따라서 임신·출산·육아휴직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는 국가공무원의 출산휴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규정하면서, 공무원 휴가승인의 주체를 ‘행정기관의 장’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국회의원의 경우 휴가를 승인할 행정기관의 장을 누구로 볼 것인지와 관련된 어려움이 있다는 게 국회 입법조사처의 설명이다.

주요국 의회 중에서 여성의원의 출산휴가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례로는 미국과 독일이 대표적이다. 덴마크 의회의 경우 의원이 출산 또는 입양 시에 12개월까지 휴가를 사용할 수 있음을 의사규칙에서 명시하고 있다.

신 의원은 국회법 개정을 택했다. 청가 및 결석과 관련해 ‘의장은 여성의원이 임신 또는 출산으로 인한 휴가를 원하는 경우 이를 허가하여야 한다. 이 경우 휴가기간은 90일로 하되 그 기간의 배정은 출산 후에 45일 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방법이다.

신 의원은 “출산휴가는 여성의 건강과 태아의 발달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여성의 사회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며 여성 국회의원의 임신 및 출산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함과 동시에 국회가 선도적으로 일·가정양립 문화를 확립해 나가는데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국회에 왜 이런 법을 지금에서야 만들게 됐을까. 국회의원 중에 가임기 여성이 활동한 전례가 거의 없다 보니 이러한 법적미비사항에 대한 검토가 부족했었다는 게 신 의원의 생각이다. 지방의회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신 의원이 올 1월 전국 161개 광역시·도의회, 기초시·구의회의 출산휴가 조례 현황을 조사한 결과 부천시와 서울시에만 관련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의회에는 사실상 필요가 없었지만 앞으로 변화를 맞게 될 정치권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민주주의가 더 이상 퇴보하지 않는 한 여성과 청년의 정치 참여는 점차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신 의원은 “앞으로 등원하게 될 많은 여성정치인들이 당당하게 출산휴가의 권리를 누리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을 대표해 의정활동을 해야할 대리자라는 점에서 출산휴가로 발생하는 의정활동의 공백을 한시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제도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한편에서는 나온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덴마크가 12개월 휴가가 가능한 것은 헌법에 의거해 대리의원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스웨덴에서도 대체 후보자 제도(캔디데이트)를 운영해 빈자리를 메우는 시스템이 있다.

신 의원은 국회 아이동반법 발의도 검토하고 있다. 의회에 자녀 데리고 출입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지난 2010년 유럽의회에서 론즐리 의원이 생후 6주된 딸을 안고 표결에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이후 약 3년 가까이 딸을 직접 의회에 데리고 다녔지만 이같은 경우가 통용되는 국가는 많지 않다.

미국에서도 연방 상원의원 재임기간에 처음으로 출산한 태미 덕워스 의원은 지난 3월 관련법을 발의하면서 “나로서는 법안 표결 참여를 포기하거나 아기 동반을 포기해야 한다. 21세기가 아닌 19세기에 살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불합리한 규정들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자화장실도 없었던 국회...무슨 일 있었나

김정숙 전 의원

김 전 의원은 예산결산위원회 위원을 맡던 당시 국회 본청 예결위 회의장 복도에 여자 화장실이 없었고 남자화장실만 2개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때까지 예결위에 여성 위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 전 의원은 국회 사무총장을 3번 찾아가 여자화장실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최영희 의원과 함께 예결위원이 되면서 혼자가 아니었다. 김 전 의원은 “국회가 민주주의 전당이고 양성평등한 시설이 있다는 걸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여성의 수가 몇 안된다고 해서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후 여자화장실을 만들어졌지만 입식소변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전했다.

이미경 전 의원

이 전 의원은 국회에 첫 등원하던 당시 바지 정장을 입었다. 이전까지 여성 의원들은 투피스 치마 정장을 입었다. 이 전 의원은 과거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엄청나게 따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공식적인 제지는 없었다. 그렇게 여성 의원들의 바지 정장이 국회에 통용되기 시작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15대 들어 여성 의원 11명으로 대거 늘면서 변화가 시작했다. 당시 이미경·신낙균·권영자 의원은 바지 정장 입기 운동을 결의함으로써 국회 내의 시대착오적 관행에 반기를 들었다.

반면 임신과 출산으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던 여성 의원들도 있다. 2012년 총선 당시 임신한 몸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당선 후 출산했던 김희정 전 새누리당 의원은 출산휴가를 쓰지 못했다.

장하나 전 의원

장 전 의원은 임기 중 임신을 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청년비례대표 몫으로 2012년 19대 국회에 입성해 2015년 임신과 출산을 모두 경험했지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젊은 여성을 뽑아 놓으니 애 낳고 쉬는 거 아니냐고 할까봐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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