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불꽃페미액션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회원들이 여성이 피해자인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수사당국의 미온적 대응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5월 1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불꽃페미액션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회원들이 여성이 피해자인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수사당국의 미온적 대응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남성 모델 불법촬영·유포한 여성

11일 만에 구속돼 포토라인 서고

1심서 ‘징역 10월’ 선고받아

재판부 “피해자 성별 따른 처벌 차이 없다”지만

남성 가해·여성 피해 대부분인 불법촬영 범죄

1심서 90% 벌금형·집유 선고

“남성 피해 발생에 이례적 대응” 비난 나와

홍익대 미대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을 몰래 촬영해 온라인에 사진을 올린 여성 모델이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이은희 판사는 13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구속기소 된 안모(25)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인격적 피해를 줬고, 파급력을 고려하면 처벌이 필요하다”며 “남성혐오 사이트에 피해자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게 해 심각한 확대재생산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는 고립감, 절망감, 우울감 등으로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어 누드모델 직업의 수행이 어려워 보인다”며 “피고인은 게시 다음 날 사진을 삭제했지만 이미 여러 사이트에 유포돼 추가 피해가 발생했고 완전한 삭제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법원에 제출한 반성문에서 피해자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에 반성과 용서를 구하고 있어 스스로 변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7차례에 걸쳐 피해자에게 사죄의 편지를 전달하고 싶어하는 등 진심으로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면서도 “반성만으로 책임을 다할 수는 없다”며 “처벌과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 피해자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처벌의 강도가 달라질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수사부터 1심 판결에 이르기까지 ‘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불법촬영 사건 가해자가 남성일 때와 여성일 때 수사·사법 처리 과정에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 여성 가해자는 사건 발생 11일 만인 지난 5월 12일 경찰에 구속됐고, 구속 전 포토라인에 서서 취재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받았으며,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카메라 등 이용 촬영으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1심 재판 결과, 피의자가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유예 등으로 풀려난 비율이 90%에 육박하는(대법원, 2017) 현실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판결이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 불법촬영 범죄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8.7%(457명) 뿐이었다.

지난 5년간 불법촬영으로 검거된 인원은 1만9600여명이며 남성이 절대다수(97.5%)다. 하지만 이중 구속된 인원은 493명(남성 490명, 여성 3명)에 그친다. 불법촬영 범죄자에 대한 검찰의 기소율도 해마다 감소 추세다. 2010년 72.6%에서 2016년 31.5%로, 6년간 불법촬영 범죄 기소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관련기사▶ 지하철·화장실·집에서까지 ‘불법촬영’ 공포, 당신은 겪어보셨습니까? www.womennews.co.kr/news/142132)

여성들이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인 불법촬영 범죄 수사에는 미온적이던 수사·사법기관이 남성이 피해자가 되자 이례적으로 신속·적극 대응했다”며 분노한 이유다. 지난 5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5일 만에 40만명 이상이 동참했고, 19일에는 서울 혜화역에서 첫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가 열려 1만여 명이 거리에 나섰다. 지난 4일 광화문에서 열린 4차 시위에도 수만 명이 모였다.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4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근 경찰이 ‘워마드’ 운영자를 음란물 유포죄로 체포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30여 여성단체는 지난 10일 경찰의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십수년간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웹하드를 처벌하지 않는 경찰이 진짜 방조자”라고 비판했다. SNS에서 #동일범죄_동일처벌 해시태그 운동 등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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