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극장]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기울어진 극장]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 남명희 영화학 강사
  • 승인 2018.08.13 10:25
  • 수정 2018-08-22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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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출연진이 아동 성범죄 옹호 트윗 등으로 해고된 제임스 건 감독을 지지한다며 복귀를 요청하는 성명서를 냈다.
지난달 30일,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출연진이 아동 성범죄 옹호 트윗 등으로 해고된 제임스 건 감독을 지지한다며 복귀를 요청하는 성명서를 냈다. ⓒMarvel/인스타그램 캡처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감독 제임스 건에게 놀라게 된 한 계기는 2017년 유나이티드 항공 폭행 사건이다.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사가 정원을 넘겨 탑승권을 팔았다가 좌석이 모자라자, 데이비드 다오라는 베트남계 미국인 승객을 강제로 끌어내리며 폭행한 사건이었다. 당시 제임스 건은 트위터에 레고 유나이티드 그림을 올리며 “이거 웃기는 놀이기구네(What a fun playset)”라고 ‘농담’을 했다. 이에 아시아인 트위터 사용자가 무례를 지적하자 ‘우리 미국인들은 이런 문제를 유머로 표현하거든(Sometimes in US we address issues with humor)’라는 말을 대답이랍시고 한 것이다. 그 트윗 때문에 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편을 다섯 번 대신 두 번 정도만 보기로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자 한 번 본 것도 좀 후회를 하게 됐다.

나에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인상은 유치해도 사랑스러운 것이었는데 2편은 유치하고 폭력적이고 착취적이고 기만적이었다. 감독의 무례한 트윗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쓴 각본 때문이었다. 2편의 불쾌함은 문제 상황을 나중에 웃음이나 감동을 내세워 없던 것처럼 하는 강압에서 온다. 신체적 우위에 있는 자가 언어폭력을 일삼지만 애정에서 나온 것이니 모욕은 없던 일이 되고, 상습 성매수자가 다른 악당보다는 아동학대를 덜 했으니 좋은 아버지인 양 나온다. 옛날 작품에서 남자가 여자를 공격해서 성추행하는 것을 로맨스라 주장하던 것을 주구장창 본 기분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제임스 건이 10년 전 트위터에 인종차별, 유대인 대학살, 9.11 테러, 강간, 아동성도착을 가지고 이른바 농담을 했던 트윗이 발견되어 3편 감독을 맡기로 했다가 해고됐다는 기사를 봤다.

 

 

제임스 건 감독이 과거 올린 부적절한 트윗들 일부 캡처 ⓒ트위터 캡처
제임스 건 감독이 과거 올린 부적절한 트윗들 일부 캡처 ⓒ트위터 캡처

작품과 작가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작품은 인위적으로 만든 허구이기에 작가와 분리되고, 허구의 내용은 그 내용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주제를 파악할 때 본질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작품은 필히 작가를 반영한다. 작가가 인간으로서 자신이 말하던 주제를 얼마나 실천했느냐에 따라 작품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편의 찜찜함은 특정 목적을 위해서 불쾌한 상황을 굳이 보여주는 데서 온다. 등장인물 욘두가 아동학대를 남들보다는 덜 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꼬마 그루트를 우주 조폭들이 괴롭히는 장면이 길게 나오는 것은 좀 과도한 장면이겠지만, 10년 전 아동성도착을 농담거리로 삼은 자가 그 장면을 만들었다면 기분이 싹 달라진다.

문제의 그 10년 전 트윗을 발견한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지지하는 진영의 우익 인사고, 제임스 건이 종종 트럼프를 비판했다는 점 때문에 그가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출연 배우 대부분과 반 트럼프 진영 상당수가 제임스 건 재고용을 요구하는 상황이 됐다. 제임스 건의 재기용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예전 일을 이제 와서 거론하는 부당함’과 ‘사람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선의’에 기대어 그를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강간과 아동학대라는 인권문제에 정치 진영을 들고 나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제임스 건의 트윗은 10년 전에도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인간은 발전하고 개선할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바로 1년 전 제임스 건은 항공사를 풍자하는 자기 자신에 도취돼 사람이 피 흘리며 구타당한 상황을 농담 소재로 삼아도 된다고 봤다. 자기성찰과 변화는 꼭 시간의 흐름에 달려 있지 않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됐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라는 말도 있다. 인간의 개선을 믿는 선의가 인격 모독을 당한 피해자를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 ‘선의’의 행동은 그만둬야 할 것이다. 누구나 창피한 과거가 있고 개선될 수 있지만, 인간의 발전가능성이라는 일반론을 특정 개인의 오점을 감추고 마땅히 치를 대가를 피하는 데 쓴다면 세상은 오히려 후퇴할 것이다. 웃자는 이유로 모든 게 용납되지는 않듯, 반성한다는 말로 봉합이 될 것 역시 따로 있다. 큰 잘못에는 언젠가 상응하는 결과가 따른다는 교훈이 한때 순수한 즐거움을 주었던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인상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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