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박사가 공연 중 “여성을 잘못 사귀면 미투로 인생을 망칠 수 있다”고 발언해 구설에 올랐다.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가수 이박사가 공연 중 “여성을 잘못 사귀면 미투로 인생을 망칠 수 있다”고 발언해 구설에 올랐다.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10일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연 중 발언

“미투운동 폄훼·조롱 불쾌” 일부 관객 퇴장도

영화제 측 “상황 파악 중…출연진에 주의 당부할 것”

“영화제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노력 필요” 지적도

가수 이박사(65·본명 이용석)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연 중 “여자를 잘못 사귀면 ‘미투’로 인생을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객들은 “미투 운동을 폄훼하고 조롱하는 발언이라 불쾌하다”며 영화제의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영화제 측은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며, 다른 출연진에게 재차 주의를 당부하겠다고 밝혔다 

이박사는 지난 10일 밤 충북 제천 의림지 파크랜드에서 열린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공연 프로그램 ‘쿨 나이트’ 무대에 올랐다. 130여 명이 공연을 관람했다. 이박사는 청중에게 노래를 소개하며 “이 노래 들으면서 마음대로 춤을 추되, 요즘에 여자들 잘 사귀어야 돼. 잘못하면 ‘미투’에 인생 조져”라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기는커녕, 농담거리로 삼은 셈이다. 이박사는 ‘테크노 뽕짝’ 장르를 개척한 뮤지션으로 독특한 음색과 추임새,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공연으로 잘 알려졌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여성 관객 G씨와 친구들은 항의하는 의미로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G씨는 “이박사의 발언을 듣고 너무 놀라서 바로 나왔다. 대부분은 그냥 하하 웃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라며 “첫 영화제 때부터 꾸준히 참여해온 제천 시민으로서 출연진의 성차별적 발언을 그냥 넘길 수 없다. 영화제 측에 항의했고 적절한 피드백을 기대한다”고 했다. 시나리오 작가 C씨도 “어렵게 미투를 외친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이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특히 남성들의 인식이 참 창피한 수준이라는 것을 확인한 기분이었다”라며 영화제 측의 적절한 조처를 촉구했다.

 

가수 이박사가 지난 10일 밤 충북 제천 의림지 파크랜드에서 열린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공연프로그램 ‘쿨 나이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가수 이박사가 지난 10일 밤 충북 제천 의림지 파크랜드에서 열린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공연프로그램 ‘쿨 나이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연팀 관계자는 11일 “출연진에게 공연 전 ‘문제 될 만한 발언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는데 이런 발언이 나와 유감이다. 다른 출연진에게는 미리 주의해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사전에 ‘부적절한 언행 자제 서약서’를 쓰는 방안도 내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영화제 차원의 공식 사과 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페미니스트 문화평론가인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은 “제천음악영화제 측이 ‘문제의 발언은 명백히 영화제가 지향하는 가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사과하고, ‘이러한 발언을 하는 출연자와는 앞으로 함께할 수 없다’는 입장 표명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발언부터 상품 마케팅까지, 미투 운동을 농담거리로 삼은 사례는 적지 않다. 배스킨라빈스는 지난 3월 피해자의 ‘미투’ 폭로 내용을 광고에 삽입했다가 비난을 받고 사과 후 영상을 삭제했다.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의 저자 하일지(63·본명 임종주)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도 강의 중 미투 운동과 성폭력 피해자를 조롱하는 발언을 해 비난받았다. 그는 제자 성추행 혐의로 최근 검찰 수사 대상이 됐다.

이는 ‘성폭력 2차 가해’가 될 우려가 높으니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 프로그램과 인터넷 게시글·영상물에서 성폭력 사건 관련 ▲피해 상황에 대한 자극적 재연·묘사 ▲인적사항 공개로 인권 침해 ▲성범죄 희화화 등이 발생한다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정보통신심의에 관한 규정’에 따라 신속하고 엄중히 제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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