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을 바꾼 30대 사건 ⑥ KTX 해고 여승무원 사건

정규직화 약속했던 코레일

2006년 280여명 정리해고

34명 소송 이어가며 ‘투쟁’

성별 분리채용·용모제한 등

성차별 고용구조도 드러나

2008년 시작한 법정 투쟁

1·2심 이겼지만 대법 뒤집어

1억원 빚에 동료까지 사망

노사, 13년 만에 복직 합의

180명 사무영업직으로 특채

이후 승무직으로 전환하기로

 

여성신문 2006년 3월 24일자 870호는  파업을 시작한 KTX 여승무원 사태를 여성 노동자 문제로 보고 성차별적 고용 구조를 지적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신문 2006년 3월 24일자 870호는 파업을 시작한 KTX 여승무원 사태를 여성 노동자 문제로 보고 성차별적 고용 구조를 지적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3년. 서른 세 명의 여성이 거리로 내몰린 채 거대 공기업에 맞서 ‘투쟁’을 벌인 시간이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은 KTX 해고 여승무원 180여명을 특별채용하는 데 철도노조와 7월 21일 최종 합의했다. 2006년 5월 280명이 해고된 뒤 햇수로 13년, 4526일 만이다.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땅 위의 스튜어디스’라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KTX 여승무원들은 2년 만에 불법 파업자가 됐다. 철도공사는 2004년 자회사인 한국철도유통(옛 홍익회)에 위탁해 계약직 승무원을 채용했다. 1기 승무원 351명 모집에 4600여명의 여성이 몰려 경쟁률이 14대 1까지 치솟았다. 승무원들은 채용 당시 “KTX가 성장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정년이 보장될 것”이라는 회사 측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그러나 2년 뒤 철도공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정규직 전환 대신 그들이 요구한 것은 계열사인 KTX관광레저㈜로의 이적이었다. 이에 승무원들이 응하지 않고 2006년 거리로 나서 철도공사에 직접 고용을 요구하자 철도유통은 이들을 2006년 5월 해고했다.

이때부터 KTX 여승무원들은 2년 간 철도공사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식, 점거, 삭발, 30m 철탑고공 투쟁까지 감행했다(897호, 2006년 9월 28일자). 지난한 그들의 싸움에는 철도노조뿐만 아니라 ‘KTX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교수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학계, 법조계, 여성·시민사회단체가 결합해 지지를 보냈다. 특히 조순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의 제안으로 2006년 9월 결성된 ‘여성노동네트워크’가 기자회견과 의견서 제출, 각종 토론회를 통해 KTX 여승무원들의 직접 고용 촉구와 철도공사의 성차별적 고용 행태를 지적했다(894호, 2006년9월8일자).

 

지난 2015년 11월 27일 김승하 KTX 열차승무지부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
지난 2015년 11월 27일 김승하 KTX 열차승무지부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

KTX 여승무원들의 투쟁은 간접고용에 맞선 싸움인 동시에 성차별에 맞선 싸움이었다. 철도공사는(당시 철도청)은 KTX 개통을 앞두고 승무원을 채용할 당시부터 고객서비스업을 ‘여성’의 일로 여기고 ‘서비스 업무에 적합한 용모의 여성’만 채용했다. 신규직원의 경우 21세부터 25세까지로 나이를 제한했고, 키도 162cm 이상으로 정했다. 이는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을 채용기준으로 제시하거나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 제1항 및 제2항에도 위반되는 차별 행위였다.

게다가 여승무원 업무만을 외주화한 것도 사실상 성별을 기준으로 한 성차별적 외주화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실제로 2006년 당시 KTX 승무담당 정규직 여성은 전체 정규직 승무원의 3.6%에 불과했고, KTX 승무원 가운데 정규직인 열차팀장은 거의 남성이었다. 이에 2006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도 성별을 이유로 한 고용차별이라고 판단하고 철도공사에 개선을 권고했다. 당시 <여성신문>은 성차별 고용구조로 인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사건을 ‘KTX 해고 여승무원 사건’으로 명명하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이어진 파업에도 사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승무원들은 서울역 철탑에 올라 20여일간 고공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철도공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2008년 9월 34명의 승무원들은 철도공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청구소송을 시작한다. 2년 뒤인 2010년 8월 2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재판장 최승욱)는 KTX 여승무원들이 철도공사 노동자라고 판결했다(1098호, 2010년9월3일자). 2심에서도 승무원들이 승리했다.

 

2017년 9월 KTX 해고 여승무원들이 투쟁 4000일을 맞아 12년 전 찍은 사진 앞에 섰다. ⓒ이정실 사진기자
2017년 9월 KTX 해고 여승무원들이 투쟁 4000일을 맞아 12년 전 찍은 사진 앞에 섰다. ⓒ이정실 사진기자

하지만 2015년 2월 26일 대법원은 1·2심 결과를 뒤집고 승무업무 위탁을 합법도급으로 판결,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1367호, 2015년11월27일자). 대법원은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의 업무와 자회사 소속 여승무원의 업무가 각각 안전 업무와 고객서비스 업무로 구분된다고 보았다. 투쟁 10년, 4번째 소송이었지만 끝내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1인당 4년치 임금 8640만원도 코레일에 되돌려 줘야 했다.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된 한 해고 승무원은 세 살 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조합원도 34명에서 33명으로 줄었다. 그 사이 빚은 지연이자까지 붙어 1억원이 넘어갔다. 다행히 지난 1월 이 ‘임금 반환’ 문제가 원금의 5%(1인당 432만원)만을 코레일에 지급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4대 종단의 중재와 법원의 조정 덕분이었다.

‘봄’을 기다리던 여승무원들은 지난 5월24일 서울역 앞에 다시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이튿날인 5월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조사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졌다. 10여명의 승무원들은 5월29일 대법정에 진입해 “내 친구를 살려내라”고 울부짖으며 김명수 대법원장의 면담을 요구했다. <여성신문>은 KTX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연대의 의미로 승무원들의 인터뷰를 매호 실어왔다(1494호, 2018년6월11일). 사회초년생이던 승무원들은 20대를 거리에서 보내고 30대 중후반이 됐다. 그 사이 엄마가 된 이들도 있었다. 인터뷰에서 이들이 13년 가까이 투쟁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로 모아졌다. ‘자매애.’ 제민경씨는 “끝까지 함께 싸우는 동료들이 있고, 예전처럼 일하고 싶다는 소망도 이뤄내지 못했다”고 했고, 옥유미씨는 “함께해 온 동료 생각하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문은효씨도 “함께하던 동료가 점점 줄어드는 걸 볼 때마다 불안할 때도 많았다”면서도 “한 명이라도 힘이 된다면 같이 버텨야한다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2018년 7월 21일 한국철도공사와 정규직 복직에 합의한 KTX해고 여승무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여성신문
2018년 7월 21일 한국철도공사와 정규직 복직에 합의한 KTX해고 여승무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여성신문

끝날 듯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싸움은 4447일 만인 7월21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들이 외친 “우리를 직접 고용하라. 정규직 전환 약속을 지켜라” 라는 구호가 현실로 이뤄진 순간이다. 철도공사는 해고 승무원 중 철도공사 자회사에 취업한 경력이 있는 이들을 빼고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180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이 중 33명이 오는 11월30일 일반사무직으로 먼저 복직한다(1500호, 2018년7월21일자).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은 “13년만에 공기업이 시행한 최초의 대량 해고 문제를 풀게 됐다”며 “‘싸워봤자 안 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이것을 붙잡고 있는 너희들이 멍청하다’는 얘기 많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피해자고 우리가 옳기에 이렇게 끝낼 수 없다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 그 믿음을 많은 국민이 응원해주셔서 이런 자리가 마련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KTX 열차승무원 업무로 돌아가기까지 과제는 남아 있다. 직접고용에 합의했지만, 현재 철도공사는 KTX 승무업무를 자회사에 맡긴다. 노사는 정규직화를 놓고 따로 노사전문가협의회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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