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질문으로 시작될 때 가능하다”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질문으로 시작될 때 가능하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8.07 01:31
  • 수정 2018-08-08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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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휴머니스트 출판사 사옥에서 열린 책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북토크 현장. ⓒ휴머니스트 제공
7월 26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휴머니스트 출판사 사옥에서 열린 책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북토크 현장. ⓒ휴머니스트 제공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 젠더이슈 분석해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펴낸 연구자들

“지금 필요한 건 타인과 소통하는 언어

함께 토론하고 서로 지지하며

집단 정치로서의 페미니즘으로 나아가야”

페미니즘을 접하는 여성들이 늘수록 질문도 늘어난다. 일상을 겹겹이 옥죄는 젠더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어떤 대안을 논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제 분노를 넘어서 불평등한 사회를 더 깊이 들여다보자. 페미니스트들의 토론과 연대는 큰 힘이 된다’고 강조하는 이들이 모였다. 26일 저녁 서울 마포구 연남동 휴머니스트 사옥에서 열린 책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휴머니스트) 북토크엔 저자인 여성학자 김은실, 권김현영, 김애라, 김주희, 민가영, 서정애, 이해응, 정희진 씨가 참석했다. 1995년부터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에 몸담아온 김은실 교수와 그 제자들로, 한국 페미니즘 이슈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논쟁해 온 페미니스트들이다.

 

이들이 최근 펴낸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젠더 이슈를 심층 분석한 글모음이다. 지난해 3월부터 페미니스트 지식공동체 ‘픽트(FICT, feminist intellectual community for trans)’의 이름으로 여성신문에 연재한 ‘여성과 세계’ 칼럼을 모아 엮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 봤을 문제들이다.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의 젠더 체계에 미치는 영향도 들여다본다. 권김현영은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는 태도가 “고통을 증명하라는 함정에 빠지게” 한다고 비판한다. ‘여성은 모두 잠재적 피해자’라는 논리는 “집단적 말하기의 힘을 부수고 개별 피해자들의 고통 경쟁으로 변질”될 우려가 높다며, 결국 중요한 것은 고통이 만들어진 상황과 조건을 개선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정희진은 ‘여성이 군대 가면 평등해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양성평등 차원에서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주장은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 사회의 젠더와 계급 차이를 은폐하고 있으며, 조국을 지키는 일을 ‘남성성’과 연결해 여성을 차별하는 남성중심적 사고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여성들에게 상징적으로는 성평등을 주장하면서 구조적으로는 육체를 통한 정체성과 성공만을 ‘선택지’랍시고 쥐어주”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순수한 소녀’ 이미지로 인기를 얻은 여성 아이돌이 그 이미지와 배치되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여성과 남성 대중 모두에게 비난받는 현상을 분석하고(김신현경), 10대 여성들이 거의 온종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면서 걸그룹처럼 찍은 셀카, 패션·뷰티 상품 후기, 패션·뷰티와 연애 정보 등 ‘소녀성’을 강화하는 콘텐츠에 둘러싸이는 시대,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외모와 평판을 자원 삼아 스스로 소비시장의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생산자가 되어가는지”를 분석하기도 한다(김애라).

또 성매매 여성의 외모 관리 소비는 ‘몸 팔아 명품가방 사는’ 사치가 아니라, 남성들이 요구하는 이미지를 갖춘 여성이 되기 위한 연출 비용이라는 분석(김주희), 10대 가출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성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되기’를 하나의 자기 보호 전략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분석(민가영), 모든 외국인의 이름을 영문으로 표기하게 하는 시스템, 차별을 피하려고 한국 이름으로 개명하는 이주여성 등 이주여성의 이름 문제를 통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외부인을 타자화하는지 분석(이해응)하는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7월 26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휴머니스트 출판사 사옥에서 열린 책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북토크 현장. ⓒ휴머니스트 제공
7월 26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휴머니스트 출판사 사옥에서 열린 책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북토크 현장. ⓒ휴머니스트 제공

이들은 젠더 정치에 대한 기존 사유 방식과 문제제기의 틀을 바꾸자고 말한다. 김은실 교수는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질문으로 시작될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적·남성중심적 세계에선 풀 수 없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이들은 ‘말해봐, 들어줄게’라며 일방적으로 나올 수 있는 ‘너’와 ‘나’의 관계 자체를 바꾸고 싶어하죠. 그러려면 우리가 지닌 인식의 끝에 다다라 새로운 질문을 할 힘이 필요해요.”

질문하고 토론하고 상상하는 힘은 어떻게 기를까. 저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공부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지식공동체가 ‘페미니스트 크리틱’ 능력을 갈고닦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우린 억압받았어, 기존의 언어는 우릴 설명하지 못해’를 넘어서,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해요. 왜 여성에게 살 만한 삶은 주어지지 않느냐며 분노하고 좌절하곤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질문을 통해서 완전히 다른 것, 이 폭력을 가능케 한 규칙을 부인하는 주체성이 탄생했으면 좋겠어요. 집단적 정치로서의 페미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멈춰 버려서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될 거예요.” (권김현영)

“여성이 더 나은 언어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미소지니(misogyny, 여성혐오)죠. (...) 어렵다는 게 무조건 현학적인 것, 엘리트주의적인 것은 아니라고 봐요. 여성주의 지식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이 책을 엮었습니다.”(정희진)

“한국 사회에서 여성 지식인의 지위는 굉장히 낮습니다. 사회가 그리 빨리 변하지도 않더라고요. 서로 지지하고 백업해주는 인정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합니다. (...) 머리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사유의 세계가 열리고 질문이 떠오르기 시작할 때, 그렇지만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을 땐 우리는 외로워요. 그런데 그 ‘개별성’을 깨닫는 것이 시작이거든요. 일종의 간극, 차이, 독립심을 가지고 가면서도 같이 머리를 열고 토론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드세요.” (김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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