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기업인] 술에 빠진 공학도, 전통주 명맥 잇는다
[기업, 기업인] 술에 빠진 공학도, 전통주 명맥 잇는다
  •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8.08.06 18:28
  • 수정 2018-08-09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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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호 모월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원호 모월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터뷰] 김원호 모월 대표 

주세령·양곡관리법 등으로 

한국 전통주 명맥 끊어져 

쌀, 누룩, 물로만 빚은 모월로 

전통주 명맥 다시 잇고 싶어  

“모월은 단순히 전통적 방식을 재현한 증류식 소주를 넘어 동시대를 사는 우리의 정신을 담아낸 술입니다.” 병풍처럼 둘러진 치악산 아래 위치한 원주는 예로부터 텃세가 없고 정이 많은 곳이라 누구라도 살기 좋은 고장으로 치악산과 원주를 ‘모월산’ 또는 ‘모월’이라 불렀다. 협동조합 주담은 그러한 어머니와 달 같은 따뜻한 이미지의 이름을 따라 ‘모월’이라는 우리 술을 빚고 있다.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십년 넘게 술 공부를 해온 김원호 대표는 5년 전 협동조합 주담을 설립했다. 우리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담아내는 전통주를 만들어 끊어진 맥을 잇자는 것이 김 대표의 목표이자 협동조합 주담의 설립 이유다. 여기에 뜻을 함께한 사람들이 산 높고, 물 맑은 강원도 원주에 자리 잡은 전통주 양조장에 모였다. 8명의 조합원 모두 강원도 원주 사람들이다.

사실 그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사회생활은 대기업에서 전자 엔지니어로 십수 년 동안 근무한 공학도 출신이다. 특히 여러 번의 출장, 여행 경험을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술맛을 익혀나갔다. 국내에 수제 맥주가 들어오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에는 역삼동과 홍대, 신촌을 일대로 큰 규모의 수제 맥줏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맥주를 좋아한 김 대표는 이때부턴 직접 맥줏집을 찾아다니며 맥주 만드는 법을 배웠다.

“회사 들어가서 출장을 많이 다녔는데, 외국 사람들한테 한국 대표 술이 소주라고 말하곤 했어요. 값이 싸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술이라 한땐 한국인의 문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정신이 깃든 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우리 땅에서 자라는 농산물 원재료로 술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특히 전통주 등 오랜 시간 집집마다 만들어 온 술들의 명맥이 끊어졌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실시한 주세령 때문이다. 일본은 1916년 주세령을 실시하면서 주세 부과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우리 술 문화와 관련 산업은 지각 변동을 겪게 됐다. 과거 조선은 동네마다 지역 특유의 가양주가 존재했다. 제사와 손님 접대 등에 쓰는 술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었고, 주막 등 음식점도 술을 직접 빚어서 파는 가양주 문화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주세령으로 인해 가양주 문화는 사라지고, 일본에 협조하는 기업화된 양조장만이 술 산업을 이끌어나가게 됐다. 특히 72%의 높은 주세율은 우리 민족의 주요한 수탈 수단이 됐다. 1930년 조선총독부 조세수입의 30% 정도가 주세 수입이었다. 해방 이후 1965년엔 정부가 ‘양곡관리법’(쌀 수요 억제)을 발표하며 쌀 막걸리를 비롯한 기존 소주의 증류를 금지했다. 이때부턴 소주의 표준이 쌀을 안 써도 되는 희석식 소주가 됐다. 주세령, 양곡관리법 등 두 번의 정책으로 전통주의 명맥이 끊기자 국내 소비자들은 오로지 대량생산된 소주만을 먹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당시 국내 소비자들은 술 선택의 폭이 좁았다고 했다. “어떤 식당에 들어가서 술을 먹으려고 하면 소주하고 맥주밖에 없었어요. 이마저도 종류가 몇 개 안 됐어요. 강원도 사람들은 경월, 서울·경기 사람들은 진로를 먹었죠. 막걸리를 술집에서 판 지가 15년, 20년도 채 되지 않았거든요.”

김 대표는 모월을 통해 전통주의 명맥을 다시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모월은 오직 쌀, 누룩, 물로만 빚은 우리 술이다. 모월의 대표 제품은 ‘인’과 ‘연’이다. 도수 41%인 모월 ‘인’은 전통 방식의 증류식 소주다. 모월 ‘연’은 전통 방식의 프리미엄 약주다. 쌀과 물, 누룩만으로 두 번 담금해 100일 이상 발효와 숙성의 시간을 지나며 달지 않고 상큼한 맛이 난다. 두 제품을 합쳐 부르면 인연이라는 말이 된다.

김 대표는 “모월은 어떠한 첨가물도 없어 드신 후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의 깔끔함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모월은 증류식 소주 특유의 누룩 향이 강하지 않아 부드러운 목 넘김이 좋다. 맛이 깔끔하고 깊은 향을 만들어 주는 동증류기를 설비해 상압 방식으로 증류 한 방울 한 방울씩 정성으로 내린다. 깊고 진한 맛은 오크통에서 숙성한 보리, 밀로 증류한 위스키와는 또 다른 향과 맛이다.

김 대표는 농부인 아버지를 보며 우리 쌀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 실제로 모월 또한 김 대표의 부모님이 직접 지은 원주 지역의 청정 쌀 ‘토토미’를 사용해 만든다. 쌀의 품종은 ‘추청’이다. 김 대표는 “맛있는 술의 근본은 ‘쌀’이다. 원주는 맑은 물에서 키운 쌀 토토미가 있다. 서늘한 기온의 치악산의 기운은 저온 장기 발효와 숙성에 적합하다. 여기에 정성이 더해져 몇 달의 발효, 증류, 몇 달 이상의 숙성과정을 거치면 모월이 탄생한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올해 상반기부터 모월 술병 디자인에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싣기 시작했다. 라벨 2000장씩 한 작품을 싣는 식이다. “우리 술과 함께 예술을 즐겼던 선조들의 전통을 새기는 것뿐 아니라 모월과 함께 동시대를 사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했어요. 술이 많이 팔리면 신진 작가를 지원하고, 현대미술을 후원해줄 수 있습니다. 술을 한 잔 먹음으로써 미술품을 보는 효과도 있어요.”

강원도에 위치한 모월 양조장은 더 나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하반기 공사를 마무리하고 내년 초쯤 입주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우리 지역 농지에서 나오는 쌀로 만든 전통주의 대중화를 통해 쌀 소비촉진이 이뤄지면 우리 농민들도 살고, 소비문화도 좋아진다”며 “일반 소비자들이 전통주에 대해 흥미를 갖도록 주담 조합원들과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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