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여성 지원 민간 기관인 채송화의꿈 박선영 센터장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북한이탈여성 지원 민간 기관인 채송화의꿈 박선영 센터장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제주 탈북여성들 지원 민간 시설

교육·상담 통해 경제 자립, 사회 적응, 안정 도모

탈북민 임씨 “북한서 ‘썩고병든자본주의’ 세뇌받아

누가 나를 도와주는 것 상상도 못했는데“

 

남한으로 넘어온 북한이탈주민들이 3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중 70% 이상이 여성이다. 북한 체제와 전혀 다른 남한 사회에서 경제적·사회적·심리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은 남성이나 여성 모두 어려운 일이지만 여성의 인권이 침해될 위험은 더욱 크다.

제주시에 위치한 ‘채송화의꿈’은 이러한 북한 이탈 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 시설로 2016년 5월 23일 개소해 2년 넘게 운영되고 있다. 채송화는 흙을 별로 가리지 않고 아무 땅에서나 가지를 잘라 꽂아도 곧잘 뿌리를 내려 자란다는 점에서 북한 이탈 여성들이 채송화처럼 남한 땅에 정착하라는 염원을 담았다. 여성자원봉사단체인 국제소롭티미스트한국협회(총재 임정미) 제주클럽(회장 박선영)이 운영하고 있다.

지난 7월 초 채송화의꿈 사무실에서 박선영 센터장과 북한 이탈 여성 임모씨와 백모씨를 만났다. 사무실에는 15평 남짓한 공간에 학원처럼 컴퓨터가 10대 정도 일렬로 놓여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학습용 컴퓨터다.

박 센터장은 채송화의꿈의 설립 취지에 대해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탈북 여성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 제주 정착에 도움을 주고 있다. 교육과 상담을 통해 경제적 자립, 사회문화 적응, 정서적 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소개했다. 남북 합창단, 요리교실, 기본적인 IT교육, 화장법, 심리상담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는 북한이탈여성은 300여명 정도다. 이중 채송화의꿈에 참여하는 이들은 50명 남짓. 북한 특유의 폐쇄성과 자신의 신분 노출을 우려해 단체 활동에 나서는 경우는 여전히 많지 않다고 임씨와 백씨는 말했다.

채송화의꿈과 소롭티미스트는 이들에게 교육 지원뿐만 아니라 경제적 후원에도 적극적이다. 임씨의 경우 채송화의꿈에서 새 삶을 찾게 된 극적인 사례다. 아들과 함께 겨우 탈북해서 정착을 준비하던 차에 희귀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으로 생사를 넘나들던 순간에 치료비를 지원받았다. 서울의 한 유명 대학병원에서는 낫는다는 보장도 없는 임상실험 단계의 항암제 치료에 2천만원이 든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 그의 수중에는 백만원도 없었다. 목숨을 끊을 결심을 한 순간 탈북 과정에서 중국에서 잃어버렸던 딸이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경찰로부터 받았다. 그 무렵 소롭티미스트와 여러 기관에서 지원을 받았고 치료를 받아 나았다. 또 아들은 교육비를 지원받아 공부를 했고 서울대학교에 정시 입학하는 경사를 맞았다. 자본주의사회를 불신했던 임씨는 생각이 바뀌었다.

“북한에서는 그냥 자본주의가 아니라 ‘썩고병든자본주의’라고 말을 해요. 세뇌교육을 처절하게 받았어요. 저는 나만 믿고 내가 단단해야 한다고 각오하고 한국에 왔어요. 내 삶이니까 누구에게 불평할 것도 없고 누가 나를 지원한다는 생각을 한번도 안했으니 울타리를 치고 있었어요. 누가 나를 도와준다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그래서 소롭티미스트의 지원이 너무 고마웠어요. 소롭티미스트를 통해서 새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단체는 임씨의 계좌로 아들의 교육비를 지급하려고 했으나 임씨는 아들 명의의 통장으로 입금해줄 것을 요청했다. 아들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은 사실을 알고 갚아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중국에서 미혼모가 돼 아기를 안고 한국에 온 딸도 지원을 받고 있다.

소롭티미스트 차원에서의 북한이탈주민 지원사업은 두 번째다. 박 센터장이 몇 년 전 대구클럽에서 활동하던 당시 북한이탈 여성이 이끄는 ‘남북하나통일예술단’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게 돼 3천만원 가량 지원했다. 이것이 밑거름이 돼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본격적으로 탈북 여성 지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출범한 채송화의꿈은 어느덧 2년을 넘겼다. 박 센터장은 보람도 크지만 어려움도 많다고 털어놨다. 탈북주민들의 경계심뿐만 아니라 남에게 휘둘린다는 생각도 있고 스스로 일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지원받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고. “여러가지 몰랐던 사정들로 인해 고생도 많이 하고 아직도 자리잡아가는 중이고 북한과 한국 사이에서 시행착오도 계속 겪으면서 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채송화의꿈에서 운영 중인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자랑하는 것이 ‘채송화 합창단’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이들을 상대로 단원 모집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북한이탈여성들과 제주도민 회원이 자연스럽게 단합하고 소통하는데 효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또 탈북인 백씨는 “개인의 문화활동 차원으로 그치지 않고 도내 양로원, 고아원 등에 공연 봉사활동을 다니며 사회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박 센터장은 올해 회원 수를 최소 100명으로 늘리고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탈북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요리 교실이다. 기본적인 요리 외에도 야생귤 껍질째 귤잼을 만들고 로컬푸드를 이용한 지역 특색을 살린 식품을 만들고 있다. 백씨는 북한에 살던 당시 도토리주를 굉장히 잘 빚었다. 특기를 살려 양조 사업을 창업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이 채송화의 목표 중 하나다. 앞으로 천연염색 교육도 준비하고 있고, 정리·수납이 인기있는 만큼 수납사 자격 교육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박 센터장의 진짜 꿈은 따로 있다.

“장차 도내 모든 북한이탈여성들이 회원으로 등록해 ‘채송화의꿈‘을 자신들의 공간으로 활용하길 바랍니다. 제주 채송화의꿈이 성공적으로 운영돼서 전국에 제2, 제3의 채송화의꿈이 개설돼 향후 통일에 그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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