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칼럼] 나의 차별 행동을 어쩔 것인가
[정진경 칼럼] 나의 차별 행동을 어쩔 것인가
  •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승인 2018.08.06 12:41
  • 수정 2018-08-14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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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고

차별적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자각에서부터 차별은 사라진다

유학 가서 대학원 다닐 때, 저녁 먹고 나면 다시 심리학과 연구실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것이 일과였다. 겨울에는 해가 짧아서 캄캄한 밤에 꽁꽁 싸매고 차가운 겨울바람 속을 걸어갔다. 건물 문을 열고 들어가 어두운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탔다. 문이 닫히고 있는데 누가 급히 쿵쿵 뛰어오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다시 열리면서 미식축구 선수만한 몸집의 흑인 남자가 성큼 뛰어 들었다. 겨울 파카의 모자를 뒤집어써서 눈언저리만 보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놀랐다기보다는 일순간 공포에 휩싸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공포는 아마 얼굴에 조금이라도 나타났을 테고, 그는 그걸 보았을 것이다. 처음 몇 초가 지나고 나는 정신을 수습했다. 이 남자가 강간범일 확률은 천분의 일도 안 될 텐데, 십중팔구 나처럼 밤에 공부하러 온 학생일 텐데. 나의 반응을 보고 얼마나 황당하고 속상했을까. 나는 “어휴, 바깥 날씨 너무 춥죠”하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같이 귀여운 표정으로 “그러게, 진짜 얼어붙겠어요”하고 받았다.

이 기억은 내게 오래 남아있다. 내가 보인 공포반응은 그가 남자라는 것, 몸집이 산만 했다는 것 이외에도 그가 흑인이라는 것에 대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편견이 있었고, 차별을 했다. 나로서는 얼른 정신 차리고 최대한의 교양을 끌어 올려 수습했으나, 그는 이미 차별을 겪은 후였다. 나는 왜 그것 밖에 안 되는 사람일까 하고 미안했다.

사회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편견과 고정관념, 차별은 나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 중심에는 늘 성차별 문제가 있었다. 편견은 부모나 학교, 미디어 등 사회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고, 쉽고 빠르게 정보처리를 하려는 우리의 인지적 특성도 원인이 된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집단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지게 된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집단 간에도 편견이 생길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일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그들에 대한 갖은 편견을 만들게 된다. 성격적으로 편견에 빠지기 쉬운 사람도 있다. 권위주의적 성격인 사람은 성차별, 계급차별, 인종차별의 배경이 되는 갖은 편견을 가지고 있기 쉽다. 한번 형성된 편견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연결되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럼 변화의 희망은 없을까? 심리학에서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연구해 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수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고 차별적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자각이다. 우리는 단순한 정보처리와 자동반사적 반응을 자각하여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누르고, 무심코 했을 때는 그 순간에 얼른 알아차리고 바로 잡을 수 있다. 어쩌다 갖게 된 편견을 없앨 수 있고 무심코 한 차별 행동을 고칠 수 있다. 이런 성찰력은 성숙의 결과라 할 수도 있고, 사람의 품격이라 할 수도 있다.

그 엘리베이터 사례 후 수 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나는 만약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순간적으로 또 놀라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살면서 노력한 보람이 있다면, 조금 덜 놀라고, 놀란 것을 덜 들키고, 조금 더 빨리 웃으면서 말을 걸 수는 있으리라. 예멘 난민들이 집단적으로 잠재적 강간범 취급을 당하고 고난을 겪는 것을 보면서, 옛날 그 청년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되살아난다.

 

정진경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 한국사회심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성역할, 고정관념, 문화간 접촉과 문화적응 등 다양한 주제의 연구를 해왔다. 또 하나의 문화 동인이며 ‘일상의 일들과 우리 사회의 문제를 페미니즘과 심리학의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주제로 칼럼을 게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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