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시선] 강간하는 사회, 한국
[정재훈의 시선] 강간하는 사회, 한국
  •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8.08.08 05:36
  • 수정 2018-08-13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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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아니다(Nein heißt nein)”는 독일에서도 그리 오래된 형법의 원칙이 아니다. 강간 여부를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서 완력에 대해 완력으로 저항했느냐를 2016년부터 법정에서 적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완력으로 성행위를 강요할 때, 역시 완력으로 저항했느냐가 한국 형법상 강간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죽을 힘’은 아니더라도 나름 힘을 써서 저항하지 않았다면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게다가 피해여성이 짧은 치마와 헐렁한 상의라도 입었으면 강간은 수만년 전 고대어가 되어 버린다. 아직도 한국 사법체계는 “오빠, 안~돼요, 돼요, 돼요, 돼요”라는 농담 아닌 농담에 익숙한 세대가 주결정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런 표현을 농담으로 묘사한 것과 관련해 청년 독자에게 미리 사과의 말을 전한다. “이런 걸 어떻게 농담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반응이 이미 눈에 선하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서 진짜 웃곤 하는 기성세대가 사회 곳곳에서 결정권을 갖고 있다. 남자 입장에서 나름 사랑을 표현하고자 할 때 여자가 “안돼요”라고 말하면 수줍고 수동적인 여자가 ‘아직은’ 안된다고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능동적인 남자 입장에서 나름 ‘사랑의 진도’를 빼고자 하는 마음에 “안돼요”를 무시하고 그야말로 밀어부쳤다. 일단 여자와의 일이 성공하면 내 여자가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게 강간이라고 배우질 못했다. 강간과 존중하는 사랑의 차이를 배우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았다.

그러다보니 나와 성행위를 한 여자들은 모두 나를 사랑한, 아님 내가 사랑한 여자로만 받아들인다. 결혼은 책임지는 가부장의 모습이고 외도는 남성다움의 상징인 이중도덕의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내가 사랑한(?) 여자는 곧 남성다움의 증거이자 전리품이다. 남성 중 남성으로서 인정받으려면 여자를 전리품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만이 중요하다. 돼지 발정제이든 여자사용 설명서이든 남자들끼리 주고받는 정보가 그래서 소중하다. 그리고 남자들의 이런 은밀한 켄넥션에 문제제기를 하는 여자들이 불손해 보인다. 말로만 안된다면서 ‘나중에 딴소리를 하는’ 여자들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은 남자들의 천국이다. 상대가 아니라고 말해도 힘으로써 저항하지 않으면 되는 것으로 알고 진도를 나가도 된다. 여자를 그렇게 사용해야 정석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런 사회에서 “안돼요”를 “돼요”로 받아들이고 살았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남자 자체가 여자에게 ‘돼요’를 강요하는 존재권력임을 모르고 살았다.

“아니면 아니다”의 또 다른 형태를 스웨덴에서 찾아보자. 위키리스크를 통해 추악한 국가권력의 모습을 폭로한 줄리앙 어싼지(Julian Assange)가 성추행범으로 스웨덴 경찰의 추적을 받았다. 여자친구와 관계를 맺는 동안 콘돔이 찢어졌는데, 이를 무시하고 계속 진도를 나갔기 때문이다. 오케이 했던 전제조건으로서 콘돔이 사라졌을 때 여자친구는 멈추길 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싼지는 멈추지 않았다. 이게 스웨덴 형법으로는 성추행 내지 강간이 된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해 사용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일한 형법이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가 말로 아니라고 해도 한국사회에서 강간이 아니다. 그래서 대다수 ‘선남’이 말로 아니라고 하는 ‘선녀’를 강간하는 사회가 된다. 이러한 강간을 손쉽게 도와주고자 ‘여자사용 설명서’까지도 용납된다. 그래서 한국의 남성에게 묻는다. 설명서대로 강간하면서 파트너를 만날 것인가? 혹은 존중하는 사랑을 하면서 파트너를 만날 것인가? 선택의 시간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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