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서울시 인터넷 시민감시단
이상돈 서울시 인터넷 시민감시단
지난 7월 7일, 서울 남산 자락에 위치한 ‘문학의집·서울’에서 성폭력 음란물 등 불법·유해 정보 감시‧신고 활동가 대상에 힐링 프로그램(길을 묻다)이 있어 필자도 함께 했다.

필자는 지난 6년간 서울시 인터넷 시민감시단, 2017년 8월부터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시민홍보대사, 2018년 3월부터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 미디어지킴이단, 과거 십대여성인권센터 전문위원, 경기도 인터넷 시민감시단, 정보통신윤리위원회(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이버패트롤 등으로 활동하며 성폭력, 성매매 없는 세상을 위해 힘을 보태온 커밍아웃 남성 페미니스트다.

필자가 활동 중인 서울시 인터넷 시민감시단 등을 비롯해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는 누리캅스 등을 포함해 활동가 대상에 힐링 프로그램은 처음이었다. 건의, 불편 사항들을 청취해 반영했던 간담회 정도만 간혹 있었을 뿐이다.

필자는 처음부터 성폭력 음란물에 대한 심각성에 관심과 동의로 활동해온 건 아니었다. 2010년 한 공공기관에서 내부 공익제보로 직장을 떠나야했고, 사회적 격려만큼이나 여러 폄하를 받기 일쑤였다. 소수자일 수밖에 없는 내부 공익제보자로서 여러 폄하를 이겨내려는 몸부림 속에서 성폭력 음란물 감시·신고 활동과 보이 보이스(여성과 연대해 목소리를 내는 남성들의 활동) 활동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성폭력 음란물 감시·신고라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누가 뭐래도 나는 정의롭다”라는 못된(?) 자존심으로 내부 공익제보 만큼이나 갈 길 먼 척박한 활동에 뛰어 든 셈이었다.

이후 필자는 성폭력 음란물을 감시·신고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성폭력 음란물을 찾아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조금씩 활동이 알려지면서 남성 사회에 침묵의 카르텔은 공연히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였고, 각종 악성코드로 컴퓨터도 망가져 갔다. 무엇보다 성폭력 음란물은 감시·신고해도 계속 양산·유포돼 줄지 않는다는 통계는 심신까지 지치게 만들었다.

「본좌」

성폭력 음란물 헤비 업로더를 떠받드는 은어다. 체포된 헤비 업로더가 받는 처벌은 즉결심판이나 소액의 벌금형이 대부분이다. 은어와 처벌수위에서 알 수 있듯 성폭력 음란물에 대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관대함은 여전하다.

필자가 지켜본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적은 신고 건수라도 꾸준히 활동하고 싶어 하는 자신과 생업(또는 학업)에나 충실하며 보다 여유롭고 평온한 일상을 꿈꾸는 자신과 대치됐다. 또한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절실함, 감시·신고한들 성폭력 음란물은 줄지 않는다며 회의적으로 변해가는 모습도 마주했다.

힐링 프로그램은 이 같은 두 가지 모습의 자신에게 길을 묻고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성폭력 음란물에 대한 우려·비판과 한편에선 성폭력 음란물 헤비 업로더를 ‘본좌’라 떠받드는 관대함과 마주한 사회, 자원봉사 시간의 취득, 스스로에게 감시·신고 이벤트 참여를 독려하는 자신과 보상을 바라고 활동하는 건 아니니 여유를 갖고 활동하라는 서로 다른 자신과 마주한 활동가, 소수자로 아파하는 자신과 “누가 뭐래도 나는 여전히 정의롭다”고 독백 중인 서로 다른 자신과 마주한 필자….

활동가도, 성폭력 음란물을 대하는 우리 사회도 대치 중인 서로 다른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하는 한 자신에게 길을 묻고 찾아가는 힐링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계속되길 응원해 본다. 힐링하며 지속해 활동하다보면 이 싸움도 언젠가는 전세(?)가 역전될 그날이 오지 않겠는가?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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