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법원행정처 “피해자들 일본 상대 손배소 각하나 기각”

지침 담은 문건 작성 드러나

박근혜 정부 ‘12·28 합의’ 직후 추진

정의기억연대 “철저한 수사·처벌 촉구”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도 개입하려 한 정황이 발견됐다. 검찰은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관련 문건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30일 한겨레 신문 보도에 따르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2016년 1월 작성된 ‘위안부 손배판결 관련 보고’ 등 문건을 확보해 수사 중이다. 이 문건에는 위안부 피해생존자 12명이 2013년 8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하겠다고 예고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분석하고, 각하나 기각으로 끝내는 게 마땅하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앞서 이옥선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생존자 12명은 2013년 8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인당 1억원을 요구하는 손해배상 청구 조정을 신청했다. 일본 정부가 약 2년간 한국 법원이 보낸 사건 서류 등을 거듭 반송하고, 두 차례 조정기일에도 응하지 않자 이들은 2014년 10월과 2015년 12월 24일 두 차례에 걸쳐 “조정을 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고, 정식 재판을 개시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한 결과를 발표하며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다. 이틀 뒤 서울중앙지법은 피해생존자들이 낸 소송에 ‘조정 불성립’ 결정을 내리고 민사합의부로 사건을 넘겼다. 

이를 두고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의 외교 정책 기조에 발맞춰 조정 절차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하급심 재판에 개입해 각하 또는 기각 결론을 끌어내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행정처 기조실이 작성한 문건에는 1심 재판에 대해 “국가면제이론으로 소를 각하하는 게 마땅하다” 또는 “소멸시효나 대일협정상 청구권 소멸로 기각하는 게 상당하다”는 지침이 담겼다. ‘외국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을 담당할 수 없다’는 논리,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피해자 개인이 손해배상을 낼 수 있는 권한이 없어졌고 민사소송의 소멸시효도 지났다’는 논리를 펼쳤다. 

12명의 피해생존자들은 2016년 1월 28일 정식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심리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채 약 3년째 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 사이 6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후 2016년 8월 강일출·김복동 할머니 등 피해생존자 10명이 국가를 상대로 1인당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지만, 지난 6월 15일 패소했다. 

한편, 정의기억연대(구 정대협)는 이번 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이들은 30일 성명을 내고 “일본군성노예 피해자들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고 인권을 보호해야 할 최후의 보루 법원이 2015한일합의 발표 직후 ‘위안부 손배 판결 관련 보고(대외비)’ 문건을 만들었다”며 “‘양승태 사법농단’에 대해 검찰은 빠짐없이 수사하고 명확한 진상을 밝혀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28년간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며 일본정부의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이 이루어질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일본군성노예 생존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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