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연 유니버셜발레단 부감독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유지연 유니버셜발레단 부감독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터뷰] 유지연 유니버설발레단 부예술감독

세계 최정상급 마린스키발레단(구 키로프발레단) 최초의 외국인 단원으로 16년간 무대에 오르며 대한민국 문화예술인의 긍지를 높인 유지연 유니버설발레단 부예술감독이 올해의 ‘미즈머츄어’ 인물로 선정됐다. 미즈머츄어는 사랑·소통·융합·배려·겸손 등 5가지의 덕목을 기준으로 외면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겸비한 이 시대의 ‘오드리햅번’을 찾아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40대 이후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여성 롤 모델을 선정해 시상한다. 올해는 문화·예술·교육 등 각계각층에 종사하는 15명이 수상했다. 미즈머츄어 행사는 지난 6월 28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개최됐다.

유지연 유니버설발레단 부예술감독(유 부감독)은 국내 발레 역사에서도 숱한 ‘최초’ 타이틀을 거머쥔 인물이다. 다섯 살 때 발레를 시작한 유 부감독은 국내 예원학교에 재학 중이던 만 14살 러시아 ‘바가노바 아카데미’에서 온 선생님 눈에 띄어 꿈에 그리던 러시아 유학길에 올랐다. 바가노바 아카데미는 마린스키발레단의 부속 발레학교다. 바가노바 아카데미 최연소, 최초의 동양인이었던 그는 수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피나는 노력 끝에 1995년 이 아카데미를 전 과목 만점으로 수석 졸업했다. 같은 해 무용수만 300명이 넘는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한 그는, 2003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1903~2003 발레 역사사전’에 한국인 최초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09년엔 마린스키 솔리스트 중 수석 캐릭터 무용수로 당당히 올라섰다.

2010년 모든 발레리나의 꿈인 ‘빈사의 백조’를 끝으로 무대에서 내려온 그는 은퇴 후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부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며 후학양성과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체계화된 러시아 마린스키의 발레 교육 시스템을 한국 발레 교육에 접목한 것. 유 부감독은 지난 20~22일 진행된 ‘돈키호테’의 총연출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돈키호테는 오는 8월에도 성남아트센터 공연을 앞두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육아를 병행하고 있다는 그는 “개인적으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살면서도 완벽한 예술인으로 평가받고 싶다”며 “유니버설발레단이 전 세계 최고의 무용수들이 들어오고 싶은 단체가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올해의 ‘미즈머츄어’에 선정된 소감은.

꿈을 위해 1991년도 러시아로 떠난 뒤 쉼 없이 달려왔다. 20년 무용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고 국내에 돌아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뒤로도 발레단의 부예술감독으로 쳇바퀴처럼 앞만 보고 굴러갔다. 그런 내게 이 상은 나의 인생을 뒤돌아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줬다. 앞으로의 남은 인생 또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은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친정어머님이 신부전증을 앓으셨는데 만기였다. 아이를 낳고 몇 개월 안 됐을 때라 회복이 덜 된 상태였는데 어머니께 신장을 이식해 드렸다. 큰 수술이었지만 한 달 정도 쉬고 바로 나와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인데도 컨트롤이 잘 안 되더라. 정말 이러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

아이 둘의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낸 뒤 그때부터 나갈 준비를 한다. 무용수들은 오전 11시부터 몸을 푸는데, 보통 오후 12시 반부터 6시까지 리허설을 진행한다. 전체적인 안무를 점검하고, 무용수들이 더욱 정교하게 안무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일이다. 다이아몬드를 닦을수록 빛나듯,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고 조정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 도착한 뒤부턴 아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스킨십하려 한다.

- 발레 돈키호테의 하이라이트는?

주인공인 키트리와 이발사 바질이 피날레를 장식하는 3막의 ‘그랑 파드되’다. 다른 작품에 비해 테크닉이 많이 몰려있다. 남녀 주역 모두에게 고난도의 현란한 기교가 필요한데, 32회전 푸에테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점프 동작이 특히 인상적이다. 보시는 분들은 재미있을 것이다. 또 돈키호테 자체가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보니 스페인 춤의 성향이 가미된 동작이 많다. 캐스터네츠를 손에 든 남녀가 함께 추는 귀족춤 판당고(Fandango)라든지 플라멩코(Flamenco), 빠른 템포의 춤인 세기딜야(Seguidilla)까지 스페인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굉장히 화려하다.

돈키호테에도 다양한 역할이 있다. 무용수는 각자 맡은 역할을 잘 해석해야 한다. 자칫 감정표현이 없는 채로 화려한 동작만 되풀이하면 관객들도 알아챈다. 주역인 키트리를 맡았다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 사람이 정말 키트리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테크닉과 연기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역할에 대한 분석과 사전 공부가 필수다. 단순히 동작, 순서를 외웠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내 역할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무대에서도 감정표현이 더 풍부해진다.

 

유지연 유니버설발레단 부예술감독이 공연 연습 중인 단원에게 직접 동작을 시범해 보여주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유지연 유니버설발레단 부예술감독이 공연 연습 중인 단원에게 직접 동작을 시범해 보여주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 유니버설발레단은 한국 무용의 세계화를 위해 ‘춘향’과 ‘발레뮤지컬 심청’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무용, 음악, 의상 등 한국의 미를 모두 담았다. 우리나라밖에 시도할 수 없는 작품이다. 특히 춘향과 심청은 전 세계에 알리고 싶은 작품이다. 전 세계 어느 발레단의 공연과 비교해도 견줄 만하다. 춘향은 이번에 현대 기술을 접목해 LED 조명으로 배경을 바꿨다. 매번 변화를 시도하면서 점점 완성도가 짙어져 간다. 클래식 발레를 기본으로 한 창작 발레로서는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웃고 울게 만든다. 다만 모든 발레에 다 맞는 방식은 아니다. 베토벤 교향곡은 백 년이 지난 뒤 들어도 소름이 끼치지 않나. 변화 없는 클래식의 위대함이 있다.

- 한국 발레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럽, 러시아와 달리 우리나라는 이제 막 발레를 즐기는 느낌이다. 관객들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국내에서도 발레가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다만 클래식 발레를 어려운 예술로 봐주시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전문가들은 발레가 어떤 스포츠보다도 가장 어려운 예술이라고 말한다. 정상적인 사람의 근육을 다 반대로 바꿔놓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무용수는 먹는 것부터 쉬는 것까지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 예중·예고를 나온 아이들은 방학도 없다. 가슴이 커질까 봐 밴드로 감고 자는 아이들도 많다. 그럼에도 주역은 한 명이다. 딸에게 발레를 시킬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취미로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유다.

러시아에선 키로프발레단의 단원이라고 하면 택시기사가 공짜로 택시를 태워준다. 그만큼 러시아에선 발레가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예술이다. 공장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일주일 동안 돈을 모아 주말에 발레를 보러 가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낙이다. 공연장에 들어갈 땐 코트를 벗고 더러운 신발은 비닐에 넣는다. 공연 보러 가는 날만큼은 가장 아끼는 옷을 입는 것이다. 그런 관객들이 너무 고마웠다. 하루 이틀이 아닌 300년이 넘는 역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 한국 발레 꿈나무 양성을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은퇴할 때 단장님께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유지연한테 감사해야 한다. 지연이는 러시아 발레의 한 부분을 한국에 떼어간다’라고 말씀하시더라.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말하자면, 20년 간 러시아에서 받아온 전통 클래식 발레 교육을 최대한 전수하고 싶다. 한국에서 매번 1등만 하던 내가 러시아에 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게 기본기였다. 이런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다. 나아가 한국 발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러시아에 가게 된 것을 ‘기적’이라 부른다. 이런 내게 주어진 소명을 무시하고 한국에 돌아와 내가 편한 생활을 하는 것은 죄처럼 느껴진다. ‘오늘을 마지막처럼’ 한국 발레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유지연 유니버설발레단 부예술감독

△1976년생 △1991년 예원학교 재학 중 러시아 국립 키로프 발레단 부속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 입학 △1995년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 수석 졸업, 마린스키(구 키로프) 발레단 입단, 솔리스트 무용수로 활약 △2003년 ‘러시아 페테부르크 발레 역사사전’에 등재 △2011년 국립발레단 지도위원으로 활동 △2015년 유니버설발레단 부예술감독으로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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