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도의적 사과’

하면서도 의존과 착취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발자·반문자에 대해

역공격을 시작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희정과 탁현민. ‘페미니스트 대통령’ 시대에 성폭력과 성차별 성희롱 전력으로 비판과 논란에 놓인 두 진보 남성 인사다. 진보, 개혁, (촛불)혁명은 평등한 인간들의 사회적 연대를 기반으로 한 것일 터임에도, 안희정과 탁현민의 행위를 살펴보면 유독 성별적, 성적 존재방식에서는 의존에 기반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그 의존은 상호적 의존이었을까, 아니면 착취였을까.

 

안희정 사건 공판 증인심문에 따르면 안희정은 4년 넘게 곁에서 일한 홍보영상담당 남성 직원의 이름을 모르고, 여자 직원은 자주 쳐다보고 이름을 부르고, 안희정의 심기가 불편할 때는 남자직원이 여자직원에게 “네가 (대신) 이야기 해 줘” 라고 의사전달을 의존했다고 한다. 안희정은 밤이나 어느 시간대나 비서를 대기시키고 불렀고, 반찬 리필부터 기호품 수발까지 직접 하지 못해서 단어 단어를 폰으로 비서에게 전송했다. 평소와 다름 없던 어떤 의존에서는 상대가 원치 않았던 성적 행동까지 이어졌다.

탁현민은 공저인 『말할 수록 자유로워지다』에서 웬만한 남자애들은 공유하던 여중생이 있었다고 떠들었다. 탁현민이 분한 캐릭터는 특정 여중생과 자신의 관계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그’ 여중생을 거론하며, 많은 남학생이 그녀와 ‘하기’ 위해 순서를 다퉜으며, 그녀들은 대개 쿨하게 받아들였고, 이런 경우는 매우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추억담이 된 이 성적 의존은 어떤가? 탁현민은 ‘그녀는 쿨했다’며 상호적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그 상호적이었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게 바로 문제의 지점이다. 두 사람은 비판이 거세졌을 때 ‘도의적 사과’를 한 바 있지만, 의존과 착취를 돌아보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착취였다고 피해자가 안희정을 고발했다. 누군가가 탁현민의 ‘그 여중생’이 쿨했던 것이 아닐 수 있다고 글을 썼다. 두 인물은 고발자와 반문자에 대해 역공격을 시작했다.

안희정은 자신에 대한 성폭력 고발이 사실과 다르다면 본인 스스로 입증해야 할 터인데, 이 과정마저도 의존과 착취에 기대고 있다. 스스로 하는 것은 없다. 자신이 쓰던 핸드폰은 폐기하고 피해자가 수사협조한 피해자 핸드폰 내역을 자료로 쓰고, 7명의 공개증인을 내보내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평가를 만드는데 열을 올렸다. 부인은 또 다른 ‘피해자’로 등장해 피해자 공격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의존과 착취가 고발되자, 의존과 착취를 더 크게 동원하여 그것을 보호하려 한다.

탁현민은 ‘그 여중생’에 대한 성적 의존이 폭력이고 착취일 수 있음을 알리는 글을 실은 여성신문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과거의 경솔했던 시간을 반성한다고 했지만, 정작 무엇이 문제였는지 구체적으로 말했을 때는 소송으로 응대한다.

안희정과 탁현민의 공통점이 있다면 “내가 강간범은 아니지 않는가?” 라고 극렬히 반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무하던 공공기관에서 반성폭력 교육은 의무였을 것이고, 여전히 모르겠다면 본인 스스로 고민하고 탐구할 문제다. 안희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3월부터 현재까지 25차 넘는 회의를 진행해왔고 7차의 성명서, 2차례 기자회견을 해오고 있다. 이 의존과 착취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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