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 모습(참고사진)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 모습(참고사진)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무처가 단독 결정 후 여가위원장에 통보

“국회 행정 파트가 국회의원들 무시...

여가위 소속 의원들 여성·초선이어서”

미투운동 일어난 해, 입법부는 여성 무시

국제의원연맹은 2012 성평등 의회 강령 채택

2002 여가위 설립, 여성운동·여야 의원들 결실

 

국회가 지난 상반기에 제대로 열리지 못하면서 미투(#Metoo) 관련 법안이 국회에 산적해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법안을 심의·의결해야 하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회의장 폐쇄 계획안이 만들어져 충격을 줬다. 논란이 되자 국회사무처는 계획을 슬그머니 백지화했지만 입법부의 성차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는 게 중론이다. 특히 미투운동이 일어난 해에 입법부의 역할 모색은커녕 여성의 목소리를 위축 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대한 이번 조치는 여러 가지 상징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실상 상임위원회에서 특별위원회로 격하시키는 셈이고, 위상의 축소로 이어져 국회 내 취약성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또 여성운동이 주도하고 여·야 여성 국회의원들이 연대해 만들어진 여성가족위원회의 역사가 우리나라의 성평등정책 추진체계 확립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또 국제의원연맹에서도 각국의 입법부 차원에서 성인지적 의정활동을 요구하고 있으나 거꾸로 가는 행태다.

여성가족위원회 회의장 폐쇄는 지난 11일 국회사무처의 관리국장이 만든 보고안으로 촉발됐다. 국회 17개 상임위원회 중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분리되면서 신설된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여가위가 쓰던 공간 6개실을 그대로 사용하고, 여가위는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킨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동할 공간에는 전체회의장이 없어 사실상 폐지 방침인 셈이다. 여가위와 같은 겸임위원회로는 정보위원회와 운영위원회도 있지만 여가위만을 지목해 방을 빼라고 한 것이다.

이같은 방침의 문제는 국회법에 의해 운영되는 상임위원회에 대해 행정을 보는 사무처가 여가위와 사전 논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취급하고 결정해 통보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사무처는 여가위의 활동 실적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투 국면에 이어 불법촬영 범죄, 성차별·성희롱 방지 등 성평등 대책을 모색하고 강화해야 할 여가위의 위상이 입법부에서 오히려 축소되는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여러 특별위원회와 회의장을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하면서 사실상 상설 상임위원회가 특별위원회 수준으로 격하되는 모양새가 됐다.

국회 후반기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여·야 간사인 정춘숙·송희경·윤소하 의원은 긴급하게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을 찾아가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여성가족위원회, 그냥 넘어가면 안 돼”

그 동안 취약했던 여성가족위원회의 국회 내 위상이 이번 사건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전부 초선이고 위원장도 재선급인데다, 여성이 대다수라는 점에서 이런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국회 관계자는 “의원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이렇게 일을 진행하는 것은 국회 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정부부처 중 일반 상임위가 아닌 겸임 상임위는 여가위가 유일하다. 여가위는 특히 각 부처별 성주류화정책을 심의해야 하지만 사실상 여성가족부만의 정책을 다루는 것으로 한정되면서 게토화됐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은 성평등 문제를 각 부처가 고유 업무로 인식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국회는 오히려 반대로 움직인 셈이다. 또한 성평등 조직이 여러 기관에 걸쳐 확산되려는 상황에서 국회만 역행하고 있다는 점도 반성할 대목이다. 경찰청, 대검찰청, 서울시, 제주도가 성평등(정책)담당관을 신설했거나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사무처의 경우 지난해 성추행 사건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인권센터 설립을 슬그머니 중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가위의 전신인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을 했던 김정숙 전 국회의원은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벌어진 이번 일은 우리사회에서 여성이 놓인 위상이 그대로 드러난 것으로, 여성 국회의원들은 물론 우리 사회 여성들을 무시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회의장 폐쇄계획이 없던 일이 됐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 여성가족위원회 위원들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국회 안에서 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평등 의회를 위한 국제의원연맹(IPU) 차원의 움직임도 있다. 지난 2012년 의회의 모든 영역에서 성인지적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촉구를 담은 행동강령을 채택한 바 있다, ‘성인지 의회를 위한 행동강령’으로 의회의 구성과 조직, 운영, 방법 및 활동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의 이해와 욕구에 부응하는 의회로서 여성의 완전한 참여를 가로막는 실질적이고 구조적·문화적 장애물이 없는 의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지 의회 강령은 의회 의원을 비롯한 의회 직원들도 의회의 조직과 운영, 활동 등에 대한 남녀 동등한 참여와 더불어 성인지적 관점의 반영과 실천을 촉구한다. 즉 의회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욕구와 이해를 반영한 입법과 정책을 만들고 조직을 운영하는 성주류화를 요구하고 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국회는 성평등정책추진의 책무를 행정부에만 촉구할 게 아니라 입법부 차원에서도 입법성별영향평가 및 성인지예산의 적극적인 실시 등 성인지적 의정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기구의 설립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1996년 국회 여성특별위원회 ⓒ국회
1996년 국회 여성특별위원회 ⓒ국회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여성운동·여야 여성의원들의 결실

여성가족위원회의 전신으로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설립이 추진된 국회 여성특별위원회는 여성운동이 주도하고 여야 여성 국회의원들이 연대해 만들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회에 성평등 관련 위원회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은 여성단체의 건의에서 시작됐다. 1993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상임위인 여성위원회 설치를, 한국여성정치연구소는 여성특별위원회를, 한국여성단체협의회도 여성특별위원회 신설을 제시하고 여성인사들이 잇따라 관련 청원서를 제출했다. 국회에서도 여야 여성 의원들이 특위 구성을 공동추진키로 합의했다. 국회제도개선위원회는 1994년 제출한 보고서에서 ‘여성문제의 중요성과 특수성을 감안하여 국회 내에 여성문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도록’ 권고했다. 이에 따라 1994년 6월 여·야총무회담에서 국회에 여성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합의했다. 이후 2002년 상임위원회로 여성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격상될 때까지 활동을 이어나갔다.

2001년 1월 정부 조직 개편으로 여성부가 신설돼 여성부를 소관으로 하는 상임위원회로서 여성위원회가 신설될 때까지 국회 여성특별위원회는 7년 9개월 동안 상설 특별위원회로 위원회에 회부된 여성 관련 법률안 및 청원 등의 안건을 심사한 후 의견을 소관 상임위에 제시해 여성의 복지와 권익 향상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특별위원회는 상임위원회와 달리 행정부 내에 소관부처가 없어 법률안 심사권 및 법률안 제안권, 국정감사권 및 예산결산 예비심사권이 없었다.

결국 특위 소속 위원 20명이 1998년 여성특별위원회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상임위원회로 개편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아 법안을 공동발의 하는가 하면 건의서를 제출했고 16대 국회 당시인 2002년 마침내 변화가 이루어졌다.

<참고자료>

『한국의 여성정치를 보다』(한국여성의정 저)

‘국가성평등 추진체계 혁신을 위한 정책토론회’ (정의당 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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