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랑 그로잉맘(가운데) 대표가 팀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다랑 그로잉맘(가운데) 대표가 팀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부모성장 교육 모임 삐삐앤루팡

경력단절여성 아닌 ‘경력보유여성’

용어 교체, 관점 달리한 위커넥트

채용 시 엄마 경력 인정하는 그로잉맘

엄마들의 새 판짜기는 ‘현재진행형’

10년 경력의 마케팅·홍보 전문가도, 대학원을 졸업해 전문자격증을 보유한 심리상담사도 출산과 육아의 문턱 앞에선 어김없이 ‘경력단절여성’이라 불린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로서의 경험이 그 자체로 인정받고, 스펙이 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부모성장 교육 모임 삐삐앤루팡, 직원 채용 시 엄마도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그로잉맘, ‘경력단절여성’이라는 표현 대신 ‘경력보유여성’이라는 용어로 관점을 달리한 일자리 플랫폼 위커넥트의 이야기다. 이들은 ‘엄마로 보낸 세월은 왜 경력이 되지 못하는가?’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실천했다. 이른바 엄마들의 새 판짜기다.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과 사회적 자아 상실, 자신감 부족 등으로 떨어진 엄마의 자존감과 양육방식은 아이에게 전달되고 가정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쳐요. 엄마인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자기효능감을 찾은 뒤 자신의 일을 시작하면 자녀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사회공동체 전반의 행복도가 상승할 수 있다고 봤어요.”

박지연 대표의 말처럼 삐삐앤루팡은 ‘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한 엄마들의 자존감 회복과 이들의 사회적 연결을 위해 다양한 부모교육을 하고 있다. 엄마들이 양육의 세계로 들어서면서 겪는 어려움을 그림책·영화·사진을 활용한 참여형 예술 워크숍으로 해결해준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모임은 올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2018 사회적기업가 육성창업’의 창업준비팀으로 선정돼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메인 프로그램인 ‘어쩌다부모’는 기존 아이 중심의 부모교육과 달리, 부모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준다.

삐삐앤루팡은 경력단절을 경험한 세 명의 엄마가 만들었다. 이들은 2016년 말 ‘와우북클럽’이라는 청소년 책 읽기 모임에서 만났다. 20년간 홍보·마케팅 업무를 해 온 박지연 대표가 주축이 됐다. 오랜 시간 그림책 콘텐츠를 개발해 온 김수민 팀장이 어쩌다부모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고, 조희진 팀장은 엄마들 사회복귀를 돕는 프로그램인 ‘어쩌면학교’ 운영과 회계를 담당한다.

박지연 삐삐앤루팡 대표는 “보통 엄마들이 겪는 문제는 대부분 구조화된 것들이다. 또한 여전히 유급노동이 노동 위계 상 가장 상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다른 형태의 대안적인 일을 고민하는 엄마들도 굉장히 많다”며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엄마들에게 내면의 힘을 기르는 동시에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삐삐앤루팡의 부모교육 어쩌다부모 시즌1이 진행되고 있다.
삐삐앤루팡의 부모교육 '어쩌다부모 시즌1'이 진행되고 있다. ⓒ삐삐앤루팡

위커넥트 “경력보유 관점서 역량 중심 평가 필요”

위커넥트는 올 초부터 ‘경력단절여성’ 대신 ‘경력보유여성’으로 모든 용어를 대체해 사용하고 있다.

위커넥트는 경력보유여성의 지속가능한 경제활동과 역량강화를 돕는 소셜벤처다. 전문가 채용이 시급한 스타트업에 출산 및 육아로 경력단절 상태지만 전문성을 갖춘 여성을 추천·연결·교육·관리하는 ‘리쿠르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커넥트의 구성원 또한 총 4명으로 모두 여성이다.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는 “경력단절여성이라는 용어는 기업 중심, 즉 일자리 공급자 중심의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단절’이라는 관점보다는 경력보유의 관점에서 이들이 가진 역량 중심의 평가가 필요하다는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경력단절여성을 떠올렸을 땐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이미지가 생각난다. 반면 경력보유라고 했을 땐 확실히 조금 더 능동적이고 준비되어 있는 프로페셔널한 느낌이다. 같은 사람이지만 관점의 차이”라며 “우리가 만나는 경력자 여성 대부분이 적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다. 이들에겐 다른 후보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을, 채용 기업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현재 위커넥트는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경력보유여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경력단절에 내포된 상징성이 있어 완전히 안 쓰긴 어려워 혼용할 때도 있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그로잉맘 팀원과 아이들. ⓒ그로잉맘
그로잉맘 팀원과 아이들. ⓒ그로잉맘

그로잉맘 “엄마라는 직업, 이력서서 공란되지 않길”

부모교육 전문기업 그로잉맘은 채용 시 출산·육아 등의 ‘엄마’ 경험을 경력으로 인정해준다.

실제로 그로잉맘에선 엄마라는 경력을 가장 큰 스펙으로 생각한다. 첫 직원채용 공고에는 ‘육아경험이 있는 경력단절여성 우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구성원 5명 또한 모두 심리 또는 교육 관련 업무를 해왔지만 경력단절을 겪은 엄마들이다. 짧게는 2~3년부터 길게는 8년 넘게 경력이 단절되거나 반복적으로 끊어져 왔다.

그로잉맘은 온라인서비스, 콘텐츠 기획, 강의 및 프로그램 운영, 컨설팅 업무 등을 주로 하고 있다. 주 2~3회만 출근해 온라인 시스템과 다양한 업무툴을 이용한 유연근무제도를 시행 중이다. 오후 3시 이전 자녀 하원을 위해 퇴근하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일한다.   

이다랑 그로잉맘 대표는 “엄마로 보낸 시간도 우리에겐 경력이다. 엄마라는 역할이 개발시킨 능력이 참 많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이를 엄마경력 기간으로 부른다. 아직은 사회가 이를 같은 선 위에 두지 않지만 그렇게 부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로잉맘은 하반기 부모교육에서 나아가 출산 후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재취업을 돕는 ‘리턴십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이 대표는 “엄마라는 직업으로 살았던 시간이 이력서에 공란으로 되지 않는, 공란이어도 문제가 없는 세상을 꿈꾼다”며 “그로잉맘 또한 그러한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나씩 시도해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혜린 그로잉맘 부대표는 본인의 책 『엄마의 속도로 일하고 있습니다』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육아를 여전히 스펙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믿고 있다. 세상 수많은 경험 중에서, 어쩌면 세계일주보다도 더 많은 경험과 견문을 쌓아가는 과정이 바로 육아라는 것을. 그 작고 치열한 세계 속에서 우리들의 하루하루는 흘러가는 시간만큼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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