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개혁위원장을 지낸 박재승 변호사. 경찰도 국민주권 시대의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기에 동참해서 국민을 최고의 가치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찰개혁위원장을 지낸 박재승 변호사. 경찰도 국민주권 시대의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기에 동참해서 '국민'을 최고의 가치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1년 반 동안 경찰에서는 개혁위원회가 구성돼 강도 높은 경찰 개혁이 진행됐다.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대한 경찰청장의 공식 사과를 시작으로 경찰개혁위원회는 총 30건의 권고안을 경찰에 제시했다. 그 중에는 ‘경찰조직 내 성평등 제고 방안’, ‘여성폭력 대응체계 개선’, ‘성매매 피해 여성 보호방안’이 들어 있다.

‘조직 내 성평등 제고 방안’ 권고에 따라 경찰대, 간부후보생의 성별제한이 우선 폐지돼 2020년부터 통합모집에 들어간다. 또 여성관리자 확대목표제 도입 등과 함께 경찰은 중앙행정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조직 내부에 성평등담당관실을 설치하고 성평등 제고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경찰개혁위원회는 정부부처 최초로 외부전문가 중심으로 발족됐다(2017년 6월 16일). 이후 1년 반 동안 전체회의 28회, 분과 소위원회 119회, 간담회 28회, 현장방문 12회를 실시하면서 권고한 30건을 발표하는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총 16명의 위원들은 치열한 토론을 거듭하며 경찰개혁을 추진해나갔다. 이 열정적인 위원회를 이끌면서 중심을 잡아나간 원로가 박재승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장이다. 짙은 감색 양복에 밝은 퍼플색 넥타이를 맨 ‘유니폼’ 패션으로 회의를 주재했다. 꼭 필요한 진행 발언 이외에는 말을 아끼는 과묵한 위원장이었지만, 토론이 격렬해질 때나 새로운 방향 모색이 필요할 때는 결정타를 날려 해결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갈등을 해결하는 박재승 위원장의 멘트는 길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법 철학에 충실한 ‘촌철살인’ 멘트는 경찰 개혁의 정신과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었다.

경찰개혁위원회는 이철성 전 경찰청장의 퇴임으로 마무리됐다. 경찰개혁 단장을 맡았던 민갑룡 차장은 신임경찰청장이 됐다. 민 청장은 개혁위원회 차장을 맡았을 때 경찰개혁의 실무를 총괄했으며 성평등 정책에서도 합리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는 점에서 향후 경찰이 개혁적 노선을 견지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박재승 위원장을 만나 경찰개혁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경찰 개혁 위원장으로서 경찰개혁의 의미는 무엇인가?

“주권재민의 헌법정신에 따라 지향점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경찰은 세계적인 수준의 치안을 유지하지만 정권의 하수인의 위치에서 공권력을 남용해왔다는 문제점을 노출해왔다. ‘촛불’의 힘으로 시작된 국민주권시대에 맞게 경찰도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1년간의 경찰개혁위원회가 마무리 됐다. 위원장으로서의 소회는?

“먼저 위원들의 열정적인 활동이 감동적이었음을 전하고 싶다.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스스로 찾아다니면서 활동을 했다. 회의시간에도 논리 정연한 발언들로 뜨거운 논쟁을 이어나갔다. 난 주로 들었고 많이 배웠다. 어디에도 이런 위원회 없을 것이다. 위원회의 공식적인 활동은 끝났지만 개혁과제들이 잘 수행되도록 점검하고 추가 논의를 해나갈 것이다.”

-주요 권고안 내용을 설명해주신다면?

“경찰개혁위원회는 경찰권 행사의 원칙을 치안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드는 데에 집중해왔다. 무엇보다 과거 잘못된 공권력 행사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밝히고 깊은 반성과 성찰을 거친 뒤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을 함께 하고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설치를 최우선으로 권고했다. 아울러 △경찰 인권·감찰 옴부즈만 △개방직 인권정책관 등 경찰권 남용 방지를 위한 민주적 통제방안을 마련했다.

경찰권 남용과 인권침해 지적을 가장 많이 받았던 수사·경비 분야에서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경찰권 행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집회 시위의 자유 보장 방안 △피의자 보호 및 변호인 참여권 실질화 △피해자 보호 △체포·구속 최소화 △유치인 인권보장 강화 등의 궤적 대안을 마련했다. 경찰 내부의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경찰의 노동기본권 보장 △경찰 내 성평등 제고 방안도 제시했다.

미래 경찰의 발전 모델을 찾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국가 수사체제를 국민의 인권과 권익을 위해 재설계해야 한다는 공감대 하에 경찰과 검찰 양 기관이 상호 견제·협력하는 수사·기소 분리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지방자치시대에 맞춰 중앙집권적인 경찰체제를 지방분권적인 체제로 발전시켜 나가고 경찰활동의 민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여 주민친화적인 경찰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광역단위 자치경찰제를 도입하고 기존 국가경찰의 사무와 권한을 자치경찰에 대폭 이양하는 논의를 진전시켰다.”

-향후 과제는?

“경찰이 창립 72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경찰개혁 논의가 시작됐다. 앞으로 100년을 지속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리는 시도로 개혁위원회 활동이 기억되길 바란다. 개혁은 끝없는 과정이다. 진정한 국민의 경찰이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리라 믿는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최고의 경찰이 되길 바란다.”

 

경찰개혁위원회 박재승 위원장

“법대로 하는 ’촌놈의 힘‘으로 살아왔어요.”

박재승 위원장은 법조계에서  신념을 굽히지 않는 개혁적인 행보로 존경받는 원로다. 군사정권 시절 당시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패배한 정치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건의 배석판사로 참여했다가 판결문을 미리 보여 달라는 법원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사건이 유명하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기소를 한 사건이었죠. 선고 하루 전날 법원장실에 불려가니 정보부요원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판결문을 먼저 보여 달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거절 했어요. 그 다음 날 부장판사와 다른 배석판사들이 출근하지않아서 그 사건은 끝내 선고를 못 내렸어요. 그 사건 이후로 제주도로 좌천 가서 거의 3년을 있었어요.”

박재승 판사가 서울로 복귀한 것은 1981년 영등포 지원이었다. 전두환 반대 데모를 한 서울대 학생들의 집시법 위반 사건을 맡아야 했다. “죄없는 아이들한테 판결을 내려야 했어요. 최소 형량이었만 참 슬픈 판결이었어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사표를 딱 내고 나와서 변호사 개업을 했습니다.”

변호사 시절 대한변호사협회의 인권위원장으로 활동하고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되었다. 대한변협 임원단 미국 연수에서 국무부 등 관공서와 기업체의 법무담당관 제도를 연구하고 그 도입을 건의하는 보고서를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다. 

조용하면서도 ‘겁없이’ 절대 권력에 맞섰던 법조인 박재승 위원장은 모든 것을 한마디로 “촌놈이라 그렇다”고 말한다. 호남의 남단 강진이 고향인 박재승위원장은 고향 자랑이자, 가문의 영광이었던 자랑스런 ‘판사’ 아들이었다. 그런 판사직을 홀연히 사임할 수 있었던 것도, 판결문을 보여 달라는 권력의 요구를 거스를 수 있었던 것도 ‘촌놈의 힘’이라는 것이다.

“판사가 법대로 하는 게 정상이지요. 별생각 없이 그렇게 했어요. 촌놈이라서 그래요.”

 

*박재승 경찰개혁위원장

전남 강진 출신으로 광주고, 연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서울형사지법과 민사지법, 수원지법과 서울남부지원 판사를 지냈다. 1981년 공직에서 나온 이후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사법개혁추진위원회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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