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성평등’ 만들어가는 사람들

초등 남아 성교육서 펴낸 김서화 작가

20일 서울 YWCA 주최 강연

“초등학생 성교육? 결코 이르지 않아

여아만 성폭력 예방교육? 남아도 필수

당돌한 질문 피하기보단 내 편견 돌아보고

담담하게 대화해나가야“

“보이루~!” “보이루!” 길을 건너던 남자 초등학생 5~6명이 서로를 발견하고 외쳤다. ‘녹색어머니회’ 교통봉사 중이던 김서화 작가와 엄마들은 당황했다. 조사 결과, 아이들 대부분은 그 말이 “그냥 형들이 쓰는 말”이라고 했다. ‘보이루’가 여성혐오 표현으로 비판받고 있다는 걸 아는 아이는 1명뿐이었다.

10대 남성들 간 혐오·차별 ‘놀이’ 문화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초등 남학생이 ‘엄마 몰카’ 영상을 올리는 시대다. ‘요즘 남자애들 왜 그러냐’ ‘엄마들이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이유다.

김 작가는 반문했다. “너무 표피적인 질문 아닐까요? 멀리서 봅시다. 왜 아빠는 ‘보이루’를 쓰는 아이를 발견하지 못하죠? 왜 아이 성교육은 엄마 몫이죠? 왜 아직도 녹색어머니회가 존재하죠?”

그는 초등학생 아들을 둔 페미니스트 엄마다. 서울대 여성학협동 박사과정 중이며, 올해 초 양육자를 위한 초등 남아 성교육서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일다)를 펴냈고, 지난 20일 서울YWCA에서 같은 주제로 강연했다. YWCA에서 5월부터 매달 진행하는 성평등 인문 강좌·여성 영화 상영회인 ‘오픈살롱 제니(Gen.E)’의 하나로 마련된 자리였다. 비슷한 고민을 지닌 여성들 10여 명이 참석했다.

 

양육자를 위한 초등 남아 성교육서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를 펴낸 김서화 작가가 지난 20일 서울YWCA에서 강연하고 있다. ⓒ서울YWCA 제공
양육자를 위한 초등 남아 성교육서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를 펴낸 김서화 작가가 지난 20일 서울YWCA에서 강연하고 있다. ⓒ서울YWCA 제공

“초등학생한테 성교육? 너무 이른 거 아닌가?” 김 작가가 초등학생 아들의 성교육을 이야기하면 자주 나오는 반응이다. “엄마들은 ‘성’이라는 주제 앞에서 겁먹는 경향이 있어요. 조기교육에 열심이면서도 ‘얘는 (성 인식 발달이) 정말 느려’ ‘얘는 남자라 어쩔 수 없다’는 편리한 결론을 내리곤 하죠. 그러나 요즘 초등 저학년만 돼도 야동을 접한다는 거, 아이들이 저절로 왜곡되지 않은 성 인식을 갖게 되기 어렵다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회피와 무시가 해결책은 아니죠. 초등학생 아들과도 성에 관해 터놓고 대화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해요.”

그는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성교육을 소개했다. 일단 ‘여자는~’ ‘남자는~’ 이라고 말하지 않기다. “사람의 성별을 지칭하지 않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그의 행동에 대해 말할 수 있어요.”

아이들의 당돌한 질문을 외면하거나 얼버무리려 들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김 작가는 “아이에 대한 편견과 스스로가 지닌 성적 편견을 깨자”고 제안했다. “아이가 ‘남자 성기가 거기 들어가요?’처럼 거침없이 질문하면 당황스럽죠. 그때가 내 안의 편견을 마주하는 순간이에요.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정말 답하기 곤란한 질문인가? 내 성적 금기를 건드려서 그런 건 아닐까? 아이에게는 담담하게 설명하세요. ‘생리가 뭐야?’ ‘여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피를 흘리는데....’ ‘정자랑 난자가 어떻게 만나?’ ‘엄마 성기에 아빠 성기가 들어와서....’”

이 모든 과정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초등 저학년 때부터 그림 등을 통해서 성관계 과정을 가르치는 게 중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나중에 포르노 등을 통해 왜곡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어요.”

아이가 어른들의 성관계 장면을 봤다면? 아이의 자위행위를 목격했다면? “수치스럽게 여기지 마시고 대화로 풀어나가세요. 행위 자체보다 아이가 뭘 봤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중요해요. 만약 딸이 자위했다면 ‘열심히 네 몸을 탐구하라’고 하세요. 여성들은 스스로 쾌락을 배울 기회가 없잖아요. 다만 나를 탐색하는 일과 타인과의 관계 맺기는 다르다고 선을 그어야죠.”

유튜브 등 온라인 콘텐츠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무조건 접근을 막기보다는, 아이와 대화해 콘텐츠 수용의 ‘기준점’을 만들라고 했다. “차단, 삭제는 답이 아니에요. 궁금증만 유발할 뿐이죠. 자꾸 대화하세요. 콘텐츠 내용을 확인하시고요. 그래야 아이에게 그게 왜 나쁜지 설명할 수 있어요. ‘이건 여성 비하 표현이니 따라 쓰지 않으면 좋겠어’라고 하면 아이도 수긍해요. ‘성관계에서 동의의 의미-차(tea)로 이해하기’ 등 젠더 관점의 영상물을 보여주세요. 자연스레 ‘합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거예요.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싫어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몰입식’ 성교육도 좋다. △일상을 젠더 문제로 바라보고 고민하기 △계속 질문하기 △상황을 설정해 몰입하기 △실제 경험에서 문제 찾기 △사람들의 다양한 조건과 문화 이해하기 △반복하기 △외울 건 외우기 등이다. “거부당하는 연습도 중요해요. ‘너는 걔한테 뽀뽀하고 싶은데 걔는 싫대. 어떻게 할 거야?’ 처럼요.”

 

 

양육자를 위한 초등 남아 성교육서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를 펴낸 김서화 작가가 지난 20일 서울YWCA에서 강연하고 있다. ⓒ서울YWCA 제공
양육자를 위한 초등 남아 성교육서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를 펴낸 김서화 작가가 지난 20일 서울YWCA에서 강연하고 있다. ⓒ서울YWCA 제공

물론 가정교육만으론 풀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공교육은 속수무책이다. 학생의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학교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적은 없다. 김 작가는 “오늘날에도 학교 성교육은 지나치게 섹슈얼리티 교육과 여성 교육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을 폭력이나 위험과 연결 지어 얘기하거나, ‘개인의 행위’로만 보게 해 단편적이고 얄팍한 성 관념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집중한 현 교육은 남성의 성에 대해 말하지 않고, 남성들이 부정확하거나 부적절한 ‘B급 정보’를 얻게 한다”고 그는 말했다. “교육은 여성해방의 수단이었지만 여성을 통제하려는 교육도 많이 시행됐어요. 1980~1990년대까지도 학교에선 ‘순결교육’이 이뤄졌죠. ‘빨간 마후라’ 사건 등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교육은 심화됐죠. 지금도 성교육은 남녀 이분법적 젠더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생물학 교육’에 더 가깝죠. 학생들의 교육 피로도는 높아졌고, 남성들의 ‘역차별 감성’만 키우고 있어요.”

‘문제적 성 인식을 지닌 10대 남성’들을 두고 ‘엄마 탓’ 하는 사회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많은 아들 교육 서적이 ‘엄마가 아들을 잘 보살펴야 ‘진짜 남자’로 자란다’고 해요. 남성은 독립적·합리적 존재라면서, 남아는 덜렁대고 학습도 느려서 엄마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고 하죠. 왜 애를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엄마여야만 하나요?”

“왜 아빠들은 그런 복잡한 고민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느냐”고 김 작가는 물었다. “아빠의 서툰 육아는 ‘아빠에게 아이를 맡기면 안되는 이유’로 희화화되고, 엄마가 기저귀 하나 잘못 버리면 ‘맘충’이 되죠. 어린이집·학교에서도 아빠보다 엄마나 할머니 등 여성 보호자에게 연락하길 선호해요. 함께 사는 우리, 성평등한가요?”

‘가족 내 젠더 문제 발굴’도 중요한 성교육인 이유다. “제가 시댁에 가면 부엌에 오래 머무르는데, 첫째가 ‘엄마 왜 부엌에만 있어? 언제부터 부엌에만 있었어?’라고 하는 거예요. 아이들은 보는 대로 말해요. 일상의 ‘디테일’을 바꿔나가야 할 이유죠. 아무리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고 ‘No’는 ‘No’야‘라고 가르친대도, 아빠가 고압적인 가부장인 가정에서 자란다면 그 아이가 성평등을 이해할까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