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안녕 나의 꿈~ 그리고 나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미혼한부모인식개선 포럼 ‘휴먼라이브러리’가 진행 중이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20일 서울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안녕 나의 꿈~ 그리고 나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미혼한부모인식개선 포럼 ‘휴먼라이브러리’가 진행 중이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꿈을 향해 도전하는 미혼한부모들 

힘들었을 때 받은 도움 돌려주고파 

“학생 때 아이를 가진 뒤로는 꿈을 포기하고, 아이를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미용 전문자격증을 따고, 공무원 준비도 해봤죠. 다행히 CJ나눔재단의 청소년 미혼한부모 지원사업 ‘헬로 드림’을 통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간호학과에 진학했어요. 20년 후 수간호사가 돼 의료봉사도 나가고,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20일 ‘청소년미혼한부모’ 3명이 스스로 책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안녕 나의 꿈~ 그리고 나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미혼한부모인식개선 포럼 ‘휴먼라이브러리’를 통해서다. 2000년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시작된 휴먼라이브러리는 눈앞에서 사람의 책을 넘기며 편견과 차별의 벽을 낮추는 것이 목적이다. 이날 오후 서울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된 포럼은 CJ나눔재단이 주최하고,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가 주관했다.

올해 7살의 딸을 키우고 있는 김효은(24·가명)씨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당일 태몽을 꿨다. 너무 생생해 테스트를 확인해보니 두 줄이 나왔다. 당시 남자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임신 8개월까지 학교에 다녔다. 미혼모 공동시설에서 생활하던 김씨는 독립해 딸과 함께 살고 있다. 현재 간호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딸을 재운 깊은 밤에야 공부할 수 있다”고 했다. 이같은 환경에도 김씨는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사라씨는(22·가명) 대학 재학 중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평소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다음 해 학과 부회장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던 때였다. 이씨는 “당시 내 꿈이 다 무너져 내린 듯한 느낌이라 정말 무서웠다”며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이미 5주째였다. 아이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부정적인 생각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이씨의 꿈은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이다. “아이가 생긴 뒤 휴학한 뒤로는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차피 평생 해야 한다면 원하는 일을 하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교육과정도 길고, 아이가 있어 교육 지원을 받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CJ나눔재단을 만나 수제화 작업을 배울 수 있게 됐습니다. 디자이너가 돼서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손서연(21·가명)씨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정작 덤덤했던 본인과 달리 출산 결정에 부정적인 주변 반응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손씨는 “아이를 낳았다고 내 인생은 끝난 게 아닌데 계속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걱정해주니 속상했다. 부정적인 말을 계속 들으니 인생에 대한 회의감도 들기도 했다”고 밝혔다.

손씨는 아이 때문에 잠시 포기했던 꿈에 다시 도전했다. “다른 미혼한부모들이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종사하는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고 열심히 직업교육을 받고 있어요. 뮤지컬 공연을 해보기도 했고, 휴먼라이브러리 덕분에 원고도 써보고 이렇게 많은 분 앞에서 말도 할 수 있게 됐죠. 20년 후에도 여전히 미혼한부모가 있을 텐데, 그들이 인생이 가로막혔다는 생각이 들 때 저라는 사람을 떠올리고 연락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꿈을 찾아 긴 여정을 시작한 이들과 달리 보통의 청소년미혼한부모에게 ‘꿈’은 사치처럼 여겨진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부모와 사이가 틀어지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상대방 때문에 오롯이 혼자 아이의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이를 양육하며 가장 힘든 점으로 아플 때 드는 경제적 비용과 부족한 육아 정보,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꼽았다.

김씨는 “어머니가 학생 때 돌아가셔서 아이가 아프거나 울 때면 물어볼 사람이 없어 포털 사이트에서 관련 지식을 얻었다”며 “특히 제가 아플 때면 아이는 방치됐다. 병원비 등 경제적인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깨 쪽 염증이 생긴 상태였는데 아이를 항상 안아줘야 했다. 참다 못해 병원을 갔더니 병원비가 만만치 않더라.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보조금이 얼마 되지 않아 병원비로 모두 사용했다”고 전했다.

사람들의 편견 또한 이들에겐 상처다. 손씨는 “만 19세 전에 임신한 상태였고, 직업훈련을 위해 만삭 상태에서 버스에 교통카드를 찍었는데 ‘학생입니다’ 소리에 버스 기사분이 큰 소리로 ‘아기도 있으면 양심적으로 살아야지’ 말하더라”며 “승객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데 정말 당황스러웠다. 학생은 당연히 아이가 없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힘들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 때문에 걱정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친구들이 ‘엄마가 왜 이렇게 젊냐’ ‘아빠는 어디 있어’ 등에 대해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잘 대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지금도 유치원에 가면 친구들이 엄마가 왜 이렇게 젊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혹시라도 아이가 어려 대처를 잘못해 왕따를 당하진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관중들은 소감을 묻는 사회자 최광기씨의 질문에 청소년미혼한부모들에 대한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목소리를 전했다. 중학교 3학년이라는 한 학생은 “엄마가 된 사실을 알았을 때 꿈이 무너져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가장 슬프게 들렸다”며 “3명의 멋진 꿈을 응원한다”고 했다. 딸과 함께 포럼을 찾은 40대 남성은 “일상 속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부분도 ‘차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혼한부모에 대한 편견에 대해 더욱 세심하게 신경써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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