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층 아래 마그마처럼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그 면면을 다 볼 순 없는

퀴어 페미니스트들

 

 

 

노유다 / 출판사 ‘움직씨’ 공동대표·작가 ⓒ이정실 사진기자
노유다 / 출판사 ‘움직씨’ 공동대표·작가 ⓒ이정실 사진기자

날씨 폭탄(meteorological bomb). 장마가 끝나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무더위가 서울 도심을 맹공격한다. 7월의 날씨 뉴스는 51도까지 치솟은 사하라의 기록적인 더위를, 아라비아 반도 어촌마을의 열대야 기록을, 티베트 열풍으로 인한 한반도 전역의 폭염경보와 폭염주의보를 연일 보도했다.

 

지난 14일 토요일에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는 그 폭탄 같은 열기의 한가운데에 존재했다. 올해의 축제 슬로건인 퀴어라운드(Queeround), ‘우리 주변(Around)에는 항상 성소수자인 퀴어(Queer)가 있다’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기 위해 모인 6∼10만 여명의 사람들이 걷고 춤추고 노래하며 차별과 혐오와 무더위에 정면으로 맞서 기세등등하게 타올랐다.

레즈비언 부부인 우리, 퀴어 페미니즘 출판사 움직씨의 공동 설립자들 또한 그 뜨거운 역사의 궤적 안에 서 있었다. 움직씨는 작년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처음으로 여성 퀴어 서점 형식의 축제 부스를 운영한 이래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시작된 1회 부산퀴어문화축제와 제주퀴어문화축제, 전주퀴어문화축제까지 모든 퀴어 축제에 참가했다. 그렇게 일 년을 돌고 돌아 국내 최고 규모 성소수자 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 안에 여성 퀴어 당사자가 이끄는 출판 라운드 중 하나로 당당하게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출판 라운드 안에는 어린이책 작가 출신인 나와 편집자 출신인 동성 배우자뿐 아니라 읽고 쓰고 일하는 퀴어가 항상 존재해 왔다. 이를 증명하듯 올해 상반기 한국 문학 키워드로 ‘페미니즘’과 ‘퀴어’가 나란히 꼽히기도 했다. 이러한 쟁점은 문학뿐 아니라 문화계와 사회 영역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지층 아래 마그마처럼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그 면면을 다 볼 순 없는 퀴어 페미니스트들이 끓어오를 순간을 기다리며 뜨겁게 움직여 온 결과가 아닐까 싶다.

퀴어 페미니즘 출판사 움직씨는 아마도 그 보이지 않는 손들의 힘으로 시작되었고 서울퀴어문화축제 안까지 힘껏 움직였을 터였다. 많은 눈과 손들이 끓어오르는 광장 안에서 움직씨의 책들을 살펴 주셨고, 신간인 슬로베니아 그림책 『첫사랑』은 서너 시간 만에 후원 구매로 동이 났다. 마포의 퀴어프렌들리 서점 북스피리언스와 책방서로, 책방사춘기 세 곳과 책방 이웃 빵꽃잠에서 이 숨 가쁜 움직임을 거들어 주셨다. 영화 ‘런던 프라이드’의 1984년 파업 광부와 퀴어 연대 서사가 부럽지 않은 여성 퀴어 출판인과 작은 서점인, 소상공인 간 연대가 즉흥에서 만들어졌다.

보수 기독 언론에서는 여전히 혐오하고 악마화하는, 어느 세계에서는 더럽고 음란한 축제로 매도하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는 사실상 우리에겐 매일의 생존권과 관계된, 절실한 하루였음을 떠올리곤 세계의 절반 혹은 일부에 대한 유감으로 매우 복잡한 심경이 된다. 아직은 경찰 병력과 철제 펜스의 보호를 받아 유지되는 축제의 장 안에서 안과 밖의 다른 온도를 감당하는 것 또한 성소수자인 우리 자신의 온전한 몫이 될 것이다.

축제가 끝나고 나는 심한 열병을 앓았다. 광장으로 나와 굳이 무거운 책들을 제 가방 안에 밀어 넣으며 후원금을 내밀던 퀴어 독자들을 생각했고 퀴어 퍼레이드 선두에 선 바이커 페미니스트들 레인보우라이더스의 새 움직임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 열병은 어쩌면 지나가는 사랑의 증상일지도 모른다. 그림책 『첫사랑』에서도 사랑은 정말 사소한 순간에 발견되지 않는가? 산책 중에 뒤처지면 손을 잡아끌어 주던 그 아이. 그 하루 분의 기억에 반해 우리는 다시 읽고 사랑하며 내일의 축제를 향해 움직인다. 

 

 

퀴어 그림책 『첫사랑』(브라네 모제티치 지음, 움직씨 펴냄)
퀴어 그림책 『첫사랑』(브라네 모제티치 지음, 움직씨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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